(CNB저널 = 김금영 기자) 신체를 아름답게 가꾸는 뷰티·바디케어 제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전시장. 그런데 전시장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이 제품들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제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작업들이 전시됐고, 이 제품들이 붙은 채 각각 독특한 자세로 전시장을 지키는 마네킹도 보인다. 특히 마네킹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전시장에 배치됐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정금형 작가의 개인전 ‘스파 & 뷰티 서울’이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5월 29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앞서 2016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개인소장품’전을 선보인 바 있다. ‘스파 & 뷰티 서울’전이 뷰티·바디케어 제품에 집중했다면 ‘개인소장품’전에는 연필, 멜로디언, 마네킹, 심폐소생술 인형, 진공청소기 등 더 다양한 사물들이 전시장을 채웠다. 그럼에도 공통점이 있다. 신체와 사물 사이 관계를 탐구한다는 것.
작가는 사물을 대하는 방식이 특별하다. 사물을 그냥 도구가 아닌, 함께 호흡하는 상대 배우로 여기고 대한다. 연극과 무용을 전공한 작가의 작업 특징이다. 공연 예술가로서 무대 위에서 공연을 펼쳐온 작가는 인간과 접촉이 많은 사물을 이용하는 공연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작업 초창기 때는 전시장에서 전시를 선보이는 방식보다는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는 작업 형태가 작가에게 더 익숙했다. 서울변방연극제에서 선보인 ‘유압진동기’(2008)는 진공청소기를 이용한 공연이었다. 진공청소기의 호스 끝에 인간 얼굴의 모형을 붙이고, 작가는 청소기를 어루만지며 마치 청소기가 살아있는 것처럼 표현했다. 평소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사물이 공연에서 생명을 얻어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상황, 이 간극에 작가는 흥미를 느껴 파고들었다.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선보인 ‘휘트니스 가이드’(2011)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운동기구들을 등장시킨 공연이었다. 벨트 마사지 운동기구 위에 뇌가 드러난 남자 마네킹의 얼굴을 부착했고, 작가는 퍼포먼스의 일부로 이 마네킹 앞에 섰다. 벨트의 진동으로 마네킹과 작가의 몸이 함께 떨렸고,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이렇듯 작가는 사물과 신체를 연결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킨다.
사물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작가는 사물에 대한 정보를 철저하게 숙지하고 제대로 된 활용법을 공부한다. 사물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잘 모른 채 그냥 짐작만으로 작업을 진행한다면 사물의 제대로 된 특징을 살릴 수 없고, 작가 또한 사물에 어울리는 퍼포먼스를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 ‘심폐소생술 연습’(2013) 작업을 위해서 심폐소생술 자격증을 취득했고, ‘휘트니스 가이드’를 준비할 때 운동기구 관련 서적들을 탐독하기도 했다.
퍼포먼스 위주로 공연 형태의 작업을 선보였던 작가는 2015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 이후 자신의 퍼포먼스를 전시장에 풀어놓는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의 첫 개인전 ‘개인소장품’전에 자신이 퍼포먼스에 이용했던 사물들을 모두 모아 마치 박물관처럼 공간을 구성하는 시도를 한다.
정적인 사물이 의인화되고
작가의 퍼포먼스로 능동적인 주체로 전환
이번엔 ‘스파 & 뷰티 서울’전에 뷰티·바디케어 제품이 모였다. 일상 사물에 관심을 갖고 관찰해 온 작가는 더 아름다워지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으로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생산되는 뷰티·바디케어 제품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다.
특히 뷰티 제품은 인간의 몸과 직접 접촉하는 특성이 있는데, 작가는 여기서 사용자와의 은밀한 관계가 형성된다고 느꼈다. 작가는 2017년 10월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 ‘테이트 리브: 정금형’전에서 이 뷰티 제품들에 집중한 신작 ‘스파 & 뷰티’를 선보였고, 이번엔 한국의 송은 아트스페이스 공간에 맞춰 전시를 새롭게 구성했다.
2층 전시장에서는 유리 진열대 위에 전시된 브러쉬들을 볼 수 있다. 손과 손톱, 발에 사용하는 제품들이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인 뷰티·바디케어 제품의 가공 없는 본연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몸을 깨끗하게 닦아주는 바디 브러쉬가 다 똑같은 게 아니라 털의 질감, 색상, 어느 부위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이렇게까지 수많은 종류가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진열된 브러쉬와 함께 작가가 수집한 제품 광고 영상 및 사용 팁도 살필 수 있다.
3층 전시장은 뷰티용품 중 수염 컬렉션을 다룬다. 수염용 발모제, 수염을 더욱 풍성하게 관리해주는 제품과 수염 파우더, 다양한 색상과 크기 그리고 질감을 지닌 분장용 수염 등이 전시된다. 특히 수염 이식 전후를 볼 수 있는 마네킹을 설치해 뷰티용품으로써 수염이 지닌 효과도 느낄 수 있다. 더 안쪽 공간으로 들어가면 브러쉬 제조 과정을 담은 영상이 설치됐다. 직접 손으로 만드는 브러쉬, 그리고 공장에서 기계로 생산되는 브러쉬까지 제작 과정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음을 살필 수 있다. 브러쉬의 근원을 알려주는 공간이다.
2층과 3층 전시장이 뷰티제품 본연의 기능을 자세히 알려주는 데 집중한다면, 4층 전시장엔 작가가 이전 공연과 전시를 통해서도 꾸준히 보여준 사물의 의인화 작업들이 설치됐다. 사물과 마네킹이 결합된 형태다. 본래 턱수염과 가슴털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손과 손톱 전용 브러쉬가 박힌 마네킹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또한 얼굴이 달린 욕조의 가슴팍에는 가슴털 대신 발 브러쉬가 박혔고, 샤워볼과 스펀지도 마네킹의 가슴과 다리에 박혔다. 이렇듯 뷰티용품들은 마네킹 위에 각자 자리를 잡고 의인화되며 재탄생됐다.
작가는 이 의인화된 사물들과 사람 사이애 생성되는 관계를 형상화하는 퍼포먼스를 4월 5~7일 2층 전시장에서 선보인다. 전시장에 정적으로 전시돼 있는 사물들에 작가의 퍼포먼스가 어우러지면서 사물들은 수동적인 형태에서 능동적인 주체로 전환하는 과정을 겪는다. 생명력을 부여받은 사물들이 작가의 신체와 함께 형성하는 일련의 내러티브는 관람객에게 무한한 상상의 여지를 열어 둔다. 바로 주위의 사물에 손길을 뻗는 것만으로도 예술이 시작될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