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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의 재미있는 법률이야기] 안마사 자격과 직업 선택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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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83호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2018.04.16 09:27:49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어쩌다 보니 필자는 미용업계와 연이 닿아, 몇 년 째 관련 업종의 자문을 해오고 있습니다. 가끔 미용박람회에 참가도 하고, 관련 강의를 듣기도 하고, 유관 협회에서 임원으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련 산업에 대해 나름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 여러 문제들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안마’입니다. 안마가 왜 문제냐고요? 아무나 영리 목적으로 안마를 하면 의료법 위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마가 의료법에 규정되어 있다”고 하면 깜짝 놀라는 분들이 많습니다. 

 

안마 자격은 맹인만 취득할 수 있다?


우리 의료법 제88조는 “안마사의 자격인정을 받지 아니하고 영리를 목적으로 안마를 한 자”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타당한 규정으로 보입니다. 안마사 자격 없이 돈을 받고 안마를 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니, 안마사 자격을 취득해서 안마를 하면 의료법 위반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마사 자격은 아무나 취득할 수 없습니다. 이 자격증은 특수학교를 졸업하거나 보건복지부장관이 지정하는 안마 수련 기관에서 수련 과정을 마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즉 맹인만이 취득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맹인만이 돈을 받고 안마라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됩니다. 


그러면 어떤 행위를 우리 법에서 안마라고 보고 있을까요? 우리 대법원은 안마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① 손이나 특수한 기구로 몸을 주무르거나, 누르거나, 잡아당기거나 두드리는 안마, 마사지, 지압 등의 수기요법(手技療法)


② 전기 기구의 사용, 그 밖의 자극요법에 의하여 인체에 대한 물리적 시술을 하여 혈액의 순환을 촉진시킴으로써 뭉쳐진 근육을 풀어주는 행위

대한 안마사협회 회원들이 무자격자 안마 영업 단속 강화를 촉구하는 시위 중이다. 사진 = 대한안마사협회

둘 중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는 모두 안마입니다. 손으로 하든 기계의 도움을 받아 하든, 사람의 몸을 주무르고, 누르고, 잡아당겨 근육을 풀면 모두 안마에 해당합니다. 마사지, 스파 등등 어떤 이름을 갖다 붙여도 우리 의료법에 규정하는 안마입니다.

 

타이 마사지? 스파? 알고 보면 모두 의료법 위반


“그럼 내가 어제 받은 타이 마사지는 의료법 위반 행위인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 업소는 분명 시내 한복판에 멀쩡히 간판을 달고, 사업자등록증이 있으며, 세금을 내면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타이 마사지가 의료법 위반일까요? 네, 의료법 위반이 맞습니다. 


타이 마사지는 ‘마사지’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지만, 근육을 손으로 눌러 풀어주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 타이 마사지도 우리 법에서 안마사 자격이 없으면 할 수 없도록 규정된 안마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길을 가다보면, 타이 마사지 외에도 중국 마사지, 에스테틱, 스파, 스포츠 마사지 등의 간판을 단 업소가 많이 보입니다. 이 업소들의 공통점은 ‘근육을 풀어주는 수기요법’이 시행된다는 점입니다. 이런 업소에서 받는 마사지도 모두 의료법상 안마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의료법 위반을 문제 삼아 처벌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대한 안마사협회 회원들이 불법마사지와 관련해 제주도의 한 호텔을 항의 방문, 시위하고 있다. 사진 = 대한안마사협회

그런데 왜 보건당국은 이런 업소를 적극적으로 단속해서 없애지 않는 것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왜 이런 규정이 생겼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제도가 생긴 이유는 물론 시작장애인의 생계 보호입니다. 안마사라는 자격을 시각장애인만 취득할 수 있게 한 것은 일제 강점기부터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특히 시각장애인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매우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맹인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자격 제도가 생겼고, 현재까지 이어온 것입니다. 


안마사 자격을 맹인이 독점하는 제도를 개선하려는 시도는 수차례 있었습니다. 이 제도는 이미 한 차례 위헌 결정을 받기도 했고, 여러 차례 법령 개정 시도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해관계자들의 격렬한 반발로 인해 법은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역차별 문제 있어 일본은 오래 전에 폐지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맹인이 아닌 사람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입니다. 맹인이 아닌 사람들은 아무리 오랜 교육을 받고,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안마사라는 직업을 합법적으로 가질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와 같은 규정을 가지고 있던 일본은 맹인의 안마사 독점 제도를 오래 전에 폐지했습니다.


사실 사람의 몸을 누르고 두드리는 안마 행위는 가장 원초적인 스킨십입니다. 건강을 위해서 혹은 미용을 위해서 꼭 필요한 행위 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것들은 아무리 규제해도, 언젠가는 터져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미 한국에는 맹인이 아닌데도 안마를 업으로 삼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수가 너무 많아지다 보니 보건 당국도 무조건 단속하고 처벌만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사실상 눈을 감아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시각장애인은 당연히 보호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안마 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 또한 중요합니다. 관련 산업의 발전 측면에서도 이 문제는 더 이상 묵혀 놓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건 당국이 적극적으로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정리 = 윤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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