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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금융] 금융 패러다임 바꿔야 한국경제 산다

바닥경기 ‘마중물’ 역할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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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01호 도기천 기자⁄ 2018.08.20 10:32:43

서울 태평로의 한 시중은행 입구에 주택 전세자금대출 홍보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전세자금대출은 집주인의 질권설정을 통해 대출이 이뤄지므로 은행입장에서는 안전한 영업이다. 기업대출을 줄이고 이런류의 안전한 대출에 치중하면서 ‘전당포식 이자장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① 역대급 실적에도 고용·사회공헌 뒷전 “왜”

 

(CNB저널 = 도기천 기자) “은행산업이 신뢰회복을 위해 쓸모 있고 도움 되는 금융을 해달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23일 ‘은행장과의 만찬 간담회’에서 강조한 말이다. ‘쓸모 있고 도움 되는’이라는 표현에 참석자들은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 말의 의미를 두고 한동안 금융권에서는 묘한 파장이 일었다. 뒤집어 보면 은행산업이 그동안 쓸모없었고 도움도 되지 않아 신뢰할 수 없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만지작거리고 있는 각종 규제카드가 속도를 내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도 더해졌다.  


윤 원장이 발언의 진의를 따로 말하진 않았지만 그는 당일 “생산적인 분야로 자금이 원활히 배분될 수 있도록 자금중개기능을 활성화해달라”는 말로 대신했다. 앞뒤를 연결해보면 생산적인 분야인 기업대출을 줄이고 주택담보대출 등 손쉬운 영업에 안주하고 있는 현 실태를 꼬집은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은행의 총 여신(원화대출금) 1526조원 중 기업여신은 817조원으로 전체 여신의 54.2%에 불과했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의 67.9%에 비해 큰 폭 감소한 것으로, 최근 10년간 가계대출 증가율(연평균 6.2%)이 기업대출 증가율(5.4%)을 꾸준히 상회한 결과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왼쪽)이 지난달 23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의 안내로 시중은행장들과의 첫 상견례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런 추세가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담보대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 개인은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담보를 제공하기가 간단하고 손쉽다. 등기부등본에 별다른 하자가 없으면 쉽게 주택담보대출이 이뤄진다. 


반면 기업은 신용등급과 부동산·건물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대출을 시행하다보니 절차가 복잡하고 리스크 관리도 쉽지 않다. 


또 가계대출은 통상 수익률이 기업대출보다 높고 연체 관리도 쉽다. 스스로 위험 선별기능을 키우기보다는 주택담보대출 등 손쉬운 영업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은행이 담보가 있고 신용등급이 높은 우량 중소기업들만 상대하다보니 나머지 기업들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고 있다. 이는 혁신·성장부문에 대한 자본의 공급·중개 역할을 그만큼 소홀히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년 전에 비해 당기순이익과 이자이익이 크게 늘었다. 출처 = 은행별 실적자료 (단위: 억원, %)

은행들의 이런 행태를 두고 ‘전당포 영업’이란 말이 나온다. 강명재 한국외대 겸임교수(경영학부)는 CNB에 “선진국 은행들은 사업가능성, 미래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대출금리를 결정하는 투자은행(investment bank) 개념이지만, 우리나라는 오직 담보물과 현재 신용상태만을 기준으로 금리를 정하는 후진적인 상업은행(commercial bank)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러다보니 소호·벤처기업들은 자금조달이 어려워 대기업에 의존하게 되고, 대기업은 이들을 발아래에 두고 기술력을 가져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은 여기에 더해 대출금리는 빠르게 올리고 예금금리는 그보다 천천히 올려 예대마진(예금-대출간 발생이익)을 확대하고 있다. 수신금리와 대출금리간 차이는 지난해 4분기 2.30%포인트에서 올 2분기 2.35%포인트로 확대됐다. 이는 2014년 11월(2.36%) 이래 최대 수준이다. 예대금리 차가 갈수록 벌어지면서 시중에는 “예금이자는 그대로인데 대출이자만 오르고 있다”는 소비자 불만이 팽배한 상황이다.  

 

서민 상대 이자놀이로 외국인 배당잔치


이같은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 덕분에 은행들은 해마다 사상최대 실적을 갱신하고 있다. 


지난달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의 상반기 이자이익은 모두 10조758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1.3%(1조950억원)나 증가했다.


국민은행이 2조9675억원으로 가장 많은 이자이익을 올렸다. 이어 신한은행 2조7137억원, 하나은행 2조5825억원, 우리은행 2조4946억원 순이었다.  


이자부문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둔 덕분에 은행들은 상반기에 ‘역대급’ 실적을 달성했다. 당기순이익이 국민은행 1조3533억원, 신한은행 1조2718억원, 우리은행 1조2369억원, 하나은행 1조1933억원으로 모두 1조원을 넘어섰다. 


이런 호실적은 성과 잔치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1분기 4대 은행의 직원 1인당 평균 보수는 2680만원으로, 지난해 1분기(2580만원)에 비해 4%가량 올랐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올해 평균 연봉은 1억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대규모 보너스도 눈에 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말 기본급의 200%에 해당하는 연말 특별 보로금을 지급했고, 올해 1월에도 기본급의 100%를 추가로 지급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말 기본급 20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으며, 우리은행은 연봉의 11.1%를 줬다.


외국인투자자 배당 규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금감원 공시에 따르면 하나금융지주,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우리은행그룹 등 4대 금융그룹이 주주들에게 나눠준 배당금은 지난해 1조8478억원, 2016년 1조3999억원에 달한다. 


올해 실적이 크게 향상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 2조원 넘는 배당이 예상되는데, 이중 절반 이상을 외국인들이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지분은 하나금융이 71%, 신한금융과 KB금융은 각각 69%, 우리은행그룹은 26% 가량이다. 이런 점에서 금융시민단체들은 “서민을 상대로 한 이자놀이로 외국인들을 배불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공헌 여전히 인색


반면 고용창출과 기부 등 사회적 기여에는 인색한 모습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작년 은행권 사회공헌 금액은 7417억원으로 전년(4002억원) 대비 85.3% 증가했다. 하지만 이 금액의 34.5%(2563억원)는 휴면 자기앞수표 발행 대금이었다. 청구되지 않은 자기앞수표 발행 대금을 서민금융 지원 사업에 기부토록 하는 내용의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금액이 대폭 늘어난 것. 이를 제외한 사회공헌 금액은 4854억원으로 2006~2016년 평균(5042억원)보다 190억원가량 적었다. 


일자리도 결과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은행들은 매년 신규고용을 창출한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소리 소문 없이 이뤄지는 구조조정 폭이 훨씬 더 크다보니 전체 직원수는 되레 줄고 있다.  


올해 3월말 기준 일반은행과 특수은행 등 19개 국내은행의 총임직원 수는 10만9989명으로 3년 전인 2015년 3월의 11만7342명 대비 7353명 줄었다. 한해에 2451개의 일자리가 없어진 셈이다. 


영업점 역시 빠른 속도로 줄이고 있다. 2012년 12월 기준으로 7835개에 달했던 국내은행의 점포는 올해 3월말 기준 6964개로 871개가 사라졌다. 여기에는 인터넷·모바일뱅킹 등으로 달라진 금융환경이 구실이 되고 있다. 


금융노조의 한 관계자는 CNB에 “인력 감축은 여러 사회문제와 연관된 만큼 최후수단이 되어야 하지만 효용성만을 내세워 선제적으로 감원에 나서고 있다”며 “퇴직금을 넉넉히 챙겨주는 명예퇴직의 형태지만 일자리를 줄인 대가로 은행들은 더 큰 수익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은행들은 인력감원과 안전한 대출, 예대마진 폭 확대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정부로부터 면허를 받아 국민을 상대로 이자 이익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공헌 규모를 늘리고 일자리 창출과 기업투자에 나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지만, 여전히 은행들은 묵묵부답이다. 

 

 

② ‘땅 짚고 헤엄치는’ 이자장사 그만

 

은행들의 이 같은 실적행진은 구성원들의 주머니를 두둑이 채워주고 있다. 직원들이 평균적으로 억대 연봉에 육박한다면 은행장들은 평균 10억원대의 연봉자다.


위성호 신한은행장은 지난해 신한카드 사장 시절 받은 14억4600만원에 은행장으로 받은 6억7400만원을 더해 총 21억2천만원을 받았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지주 회장과 KB국민은행장을 겸임했기에 양쪽에서 각 9억2600만원, 7억7600만원씩을 받아 총연봉이 17억200만원에 달했다.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의 연봉은 9억3900만원이었고, 지난해 채용비리 의혹으로 사퇴한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총 9억3600만원을 받아갔다.


높은 성과가 높은 연봉으로 연결되는 건 자본시장에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서울 시내 한 은행 영업점 모습.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돈을 받아 갈 정도로 은행들이 경영 혁신을 통한 성과 창출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자연스럽다. 


은행들의 수익이 기업 투자와 자영업에 대한 대출지원, 서민금융 활성화 등 경기 선순환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부동산 열풍에 편승해 주택담보대출을 늘리고, 금리 인상기에 대출금리를 예금보다 더 빠르게 올리는 방식으로 얻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은행들의 전체 이익에서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80%가 넘는다. 안정적인 이자수익에만 의존해도 대규모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구조를 스스로 만든 것이다. 


여기에 일부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조작한 일이 최근 드러나 공분을 사고 있다. 금감원 검사 결과, 일부 은행들이 대출금리 산정 때 소득금액과 담보물 등을 임의대로 입력해 기준보다 높은 이자를 책정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지주 회장이나 은행장이 바뀔 때마다 정치권 외압과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는 점도 고질병이다. 시중은행들의 외국인 지분이 평균 절반을 넘는데다 국민연금·예금보험공사 등 정부 지분이 높다보니 사실상 ‘주인 없는 기업’으로 인식된 탓이다.    

 

금감원이 10개 시중은행을 검사한 결과, 경남은행·씨티은행·KEB하나은행에서 대출금리 산정 오류가 발견되면서 대출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 = CNB포토뱅크, 연합뉴스

이에 일부 금융지주 회장들은 본인과 측근들로 구성된 회장추천위원회(회추위)에서 자신을 추천하는 등 일명 ‘셀프 연임’으로 맞서기도 한다. 작년말~올해초에 윤종규 KB금융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각각 금융당국과 갈등을 빚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금융당국, 규제카드 만지작


이런 구조적 문제들을 손보기 위한 여러 방안들이 정부와 국회, 시민단체와 노동계에서 추진되고 있다. 


우선 ‘노동이사제’가 눈길을 끈다. 이는 기업 이사회에 근로자대표들이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중요한 의사결정에 노동자들이 함께 하라는 취지다. 


정부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켰으며, 국회에는 관련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금융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것을 금융위원회에 이미 권고한 상태다. 또 공공기관이 아닌 KEB하나은행·KB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한국씨티은행·SC제일은행·NH농협은행 등 민간금융회사에게도 이해관계자간 논의를 통해 도입을 적극 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경영권 침해 및 주주권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민간은행의 경우 외국 투자자의 지분이 절반을 넘는 현실에서 외국인들이 이 제도를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CNB에 “공공기관은 정부가 대주주이므로 법안 통과 즉시 (노동이사제를) 시행하면 되지만, 민간금융사의 경우 노동이사(근로자대표) 선임절차의 투명성 확보, 이사회가 비대해짐으로써 주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 등을 어떻게 주주들에게 설득시키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이사제가 경영혁신과 관련된 제도라면, 소비자 차원에서는 ‘금리견제권’이 논의되고 있다.

 

은행들이 담보대출 위주의 영업 방식에서 벗어나 소호·벤처·중소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등 경기를 순환시키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중앙서민금융 통합지원센터에서 한 시민과 상담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금리견제권은 금융소비자가 자신이 받은 대출의 금리가 산출되는 과정에 대한 정보를 은행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지금까지는 대출금리라는 최종결과물만 받아봤지만 앞으로는 자신의 낼 이자가 산출되는 과정을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금융소비자는 이를 토대로 이자 산정이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 금감원은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대출금리 체계 개선방안’을 마련해 시중은행들과 조율 중이다. 


특히 금융당국은 그동안 은행들이 임의대로 정해온 가산금리 체계를 손볼 계획이다. 가산금리는 한국은행 기준금리 외에 은행이 자체적으로 정한 우대금리(조정금리), 업무원가, 목표이익률, 위험프리미엄 등을 통해 적용되는 금리다. 기준이 모호해 ‘고무줄 금리’로 불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대출금리 인하 요인이 발생했음에도 수년간 고정된 수치를 적용하거나, 은행 자체 내규를 적용해 최고금리를 부과하는 등 여러 금융불평등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금감원 검사 때마다 가산금리를 이용해 부당하게 대출이자를 올린 사례들이 적발돼 왔다. 

 

‘상업은행→투자은행’ 전환해야


이와 함께 은행들의 과도한 ‘이자장사’를 규제하는 방안도 시행을 앞두고 있다. 


현재 금융당국은 은행의 예대율(예금잔액 대비 대출금잔액 비율)을 100% 이내로 관리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0년부터 가계대출 가중치를 15% 높이고 기업대출 가중치는 15% 낮춰 예대율을 산정할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가계대출을 많이 시행한 은행은 그만큼 ‘예대율 100% 이하’ 기준을 맞추기가 힘들어진다. 이전보다 가계대출 비중을 줄이거나 예금을 더 늘려야 한다. 이는 과도하게 벌어진 예대금리 차를 일정부분 안정시키는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명재 한국외대 겸임교수(경영학부)는 CNB에 “작년부터 미국의 정책금리가 상승세를 그리자 한국의 시중은행들은 예금금리는 그대로 두고 대출금리만 올리는 식으로 막대한 이자이익을 챙기고 있다”며 “이런 식의 수익구조는 서민들의 경제난을 가중시켜 내수경기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금리구조를 투명하게 하려는 시도에 머물게 아니라, 소호·벤처·중소상공인에 대한 지원과 투자를 대폭 늘려 바닥경기를 순환시키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을 벗어나 ‘한국경제’라는 큰 그림을 보며 패러다임을 전환하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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