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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삼성·현대차·LG·한화…재계 ‘333조 플랜’의 두 얼굴

재벌개혁·투자 ‘두 마리 토끼’ 잡는 방법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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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03호 도기천 기자⁄ 2018.09.03 10:22:26

(왼쪽부터) 삼성, 현대차, LG, 한화 사옥.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자료사진

(CNB저널 = 도기천 기자) 삼성과 한화 등 대기업들이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장밋빛 플랜이 제대로 실현 되려면 산업 생태계 전반에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거 정권에서도 매머드급 투자계획이 자주 발표됐지만 용두사미로 끝나는 등 매번 이벤트 성격에 그쳤다는 점에서다. 이번에는 꽁꽁 언 한국경제에 마중물이 될까. 


작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지금까지 투자고용계획을 발표한 대기업은 모두 6곳이다. 재계 1위인 삼성을 비롯해 2위 현대차, 3위 SK, 4위 LG, 8위 한화, 11위 신세계다. 이들이 발표한 투자액은 333조원, 고용 계획 인원은 19만명에 이른다. 지난해 정부 예산(400조 7천억원)의 80%를 넘는 엄청난 규모다. 


삼성그룹은 지난 8일 AI·5G·바이오·전장부품 등 4대 미래성장사업을 중심으로 향후 3년간 180조원(국내 투자 13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4만명 규모의 신규 고용을 추진한다.  


이 플랜은 삼성전자에 주로 집중돼 있어 투입 자금도 대부분 삼성전자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최근 분기당 15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다. 매달 5조원 가량을 벌어들이는 셈으로, 올해 전체 영업이익은 60~65조원에 달할 것으로 증권가는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180조원을 투자한다는 것은 현재대로라면 3년간 번 돈 전부를 쏟아 붓는 셈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올해 초, 5년간 차량전동화, 스마트카(자율주행·커넥티드카), 로봇·인공지능, 미래에너지, 스타트업 육성 등 5대 신사업에 23조원을 투자하고 4만5000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SK그룹은 향후 3년간 80조원을 투자하고 이 중 올해만 27조원5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또 2만8000명을 3년에 걸쳐 신규 채용하고 반도체·소재, 에너지, 차세대 ICT, 미래 모빌리티, 헬스케어 등 5대 신사업을 집중 육성할 방침이다.  


LG그룹은 작년 말 19조원의 신규 투자와 1만명을 신규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신성장동력인 전기차 부품, 자율 주행 센서, 카메라 모듈, 바이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화학 등에 중점 투자한다는 플랜이다.    


신세계는 3년간 9조원을 투자해 온라인 사업, 복합쇼핑몰 및 면세점 확대, 백화점 점포 효율화, 전통시장·벤처·창업기업과의 상품 발굴 및 판로 확대 등에 나선다.


가장 최근에 대형 투자를 선언한 곳은 한화그룹이다. 앞으로 5년간 22조원을 핵심 사업 및 신사업에 투자하고, 3만50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지난 13일 선언했다. 한 해 평균 4조4천억원에 달하는 규모로, 최근 3년 평균 투자액(3조2천억원)보다 37%나 많다. 항공기 부품 및 방위 산업, 석유화학 부문, 고용창출 효과가 큰 신규 리조트와 복합쇼핑몰 개발 등 투자 분야도 다양하다. 


재계에서는 서열 5위인 롯데와 7위인 GS 등도 조만간 깜짝 플랜을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유통, 서비스, 건설 등에 있어 집중 투자가 점쳐진다. 최근 수장이 바뀐 포스코 역시 최정우 신임 회장이 조만간 매머드급 투자 계획을 내놓을 것이라는 얘기가 돈다.  


특히 기업들이 과거와 달리 고용·상생에 투자의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은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과 맞물려 눈길을 끌고 있다.    


현대차는 5300여개에 달하는 1∼3차 협력사와의 동반성장에 수조원의 예산을 사용할 계획이다. 신기술 공동개발, 전문기술 교육, 현장경영 지도, 현대기아차가 보유한 특허 개방 등 24개 R&D 동반성장 프로그램이다.  


SK는 지난해부터 기업이윤과 사회적 책무를 결합한 실험적인 프로젝트들을 내놓고 있다. SK에너지의 전국 주유소 3600여 곳을 택배 집하 등 물류기지로 활용해 청년들의 창업 지원, 실버 택배 등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최태원 회장의 ‘기업 자산 공유 인프라’ 구상이 대표적이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CJ대한통운과 사업추진 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투자 이행을 강제할 수단이 없는데다, 기업 입장에서는 어디에 어떤 식으로 예산을 집행했는지를 밝힐 의무가 없어 생색내기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공존한다. 

 

이번에도 외압에 마지못해?  


실제로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기업들은 앞 다퉈 투자계획을 내놨는데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흐지부지 되거나 재탕삼탕 중복 발표가 나오는 등 제대로 검증된 바 없다. 가령, SK하이닉스가 최근 발표한 15조원 규모의 이천 신공장 투자 계획은 알고 보니 박근혜 정부 때 SK그룹이 발표한 41조 투자 계획안에 포함된 것이었다. 

 

SK는 최근 15조원 규모의 이천 신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경기도 이천시에 소재한 SK하이닉스 M14 반도체 공장 전경. 사진 = SK하이닉스

특히 과거 박근혜 정부는 지역인재 육성, 창업·벤처기업 지원, 서민경제 활성화라는 3대 목표 하에 한 개의 대기업이 한 지역을 전담하는 식으로 전국 17곳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립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현재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당시 대구·경북은 삼성이, 광주는 현대차그룹이, LG는 충북, KT는 경기, 두산은 경남, 롯데는 부산, 효성은 전북, SK는 대전, 한화는 충남, GS는 전남, CJ는 서울, 한진은 인천, 현대중공업은 울산, 네이버는 강원, 다음카카오는 제주에 각각 거점을 마련했다. 이 시기를 전후해 기업들이 내놓은 대규모 투자계획은 용두사미가 됐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대기업 현장 순회에 나서자 기업들이 잇따라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식의 투자는 경기회복에 도움이 못된다고 지적한다. 지난 14일 서울 청량리시장을 방문한 김 부총리. 사진 =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또한 관(官) 주도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발표된 기업들의 투자계획이 대부분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대기업 현장 순회를 계기로 나왔다는 점에서다. 김 부총리가 현장에서 기업 총수들을 만나고 나면 어김없이 대규모 투자 플랜이 발표된 것. 


삼성의 경우 김 부총리가 평택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직후에 180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내놨다. 현대차 또한 김 부총리가 경기도 용인 현대자동차그룹 환경기술연구소를 방문해 정의선 부회장 등 주요 경영진과 만나는 자리에서 수십조 단위 청사진을 발표했다. 심지어 김 부총리 본인이 직접 기업의 투자계획을 해당기업보다 먼저 언론에 흘려 관치 논란을 빚기까지 했다. 

 

“중소·벤처 살리는 투자가 돼야”


엄청난 규모의 투자 선언에도 주식시장이 무덤덤한 점은 이런 분위기를 반증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CNB에 “투자계획이 대부분 장기플랜인데다 과거 사례를 볼때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우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요구에 의해 기업투자가 이뤄지는 것은 더 큰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외대 강명재 겸임교수(경영학부)는 CNB에 “기업은 철저히 실리를 추구하는 집단이다. 정부가 투자를 기업으로부터 받는 선물로 인식하는 것은 큰 오산”이라며 “현재 대기업 투자는 제품생산, 시설설비, 연구개발 등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바닥경기를 순환시키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대기업이 중소협력업체들과 성장의 열매를 골고루 나눌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조성하는 쪽으로 정책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숫자(투자금액)가 중요한 게 아니라 투자의 흐름이 중소·벤처기업에게 이어져야 경제가 선순환 될 수 있단 얘기다. 


재벌개혁과 규제완화를 동시에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인하대 정세현 겸임교수(경영학)는 CNB에 “삼성반도체 공장을 삼성물산이 짓고, 롯데쇼핑몰에 롯데씨네마가 입점하는 것을 일감몰아주기라고 비판한다면 누가 선뜻 투자에 나설 수 있겠느냐”며 “을(하청·가맹점)에 대한 갑질과 재벌 과세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되, 투자를 가로막는 제도들은 과감히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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