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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 남북정상회담 ‘전경련 왕따’ 왜?…또 체면구긴 허창수 회장

닻 올린 남북경제협력시대…‘재계 맏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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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06-607합본호(추석) 도기천 기자⁄ 2018.09.27 10:34:56

‘2018남북정상회담평양’의 첫날인 9월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과 동행한 대규모 경제인 방북단에 전경련은 포함되지 않았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도기천 기자) 남북 정상이 평양에서 11년 만에 손을 맞잡으면서 남북 간 경제협력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이번에도 재계 맏형격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문재인 정부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방북단에 대기업 총수와 경제계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지만 전경련의 흔적은 없었다. 재계 일각에서는 북한 핵문제를 놓고 강대국들 사이에 ‘밀당’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국제무대 경험이 풍부한 전경련을 정부가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20일 평양에서 열린 3차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큰 특징은 재계 핵심 인사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동행했다는 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김용환 현대자동차 부회장 등 4대 그룹 대표들을 비롯,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신한용 개성공단기업 협회장, 이동걸 한국산업은행 총재,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 등 역대 남북정상회담 중 가장 많은 17명의 경제인이 특별수행원으로 참석했다. 


특별수행원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시민사회 등 각계각층 인사 52명으로 구성됐는데 이중 기업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초대받지 못했다. 


특히 2~3세 기업 총수들이 눈에 띈다. 이재용 부회장은 투병 중인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그룹을 이끌고 있는데, 삼성 총수로는 이번이 첫 북한 방문이다. 고 구본무 회장의 타계로 지난 6월 취임한 구광모 LG 회장은 올해 40세로 방북 기업인 중 최연소다. 구 회장이 그동안 공식석장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평양 방문을 대외 무대 데뷔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동행한 주요 기업인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김용환 현대자동차 부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 사진 = 연합뉴스

최근 그룹 총괄 수석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경영 전면에 등장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은 자동차 관세 문제 등 대처해야 할 주요 현안 때문에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 등과의 미팅이 잡혀 있어 김용환 부회장이 대신 방북했다.


문 대통령은 앞서 두 차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밝힌 바 있다. 3대 벨트(동해권 에너지·자원벨트, 서해안 산업·물류·교통벨트, DMZ 환경·관광벨트) 구축을 통해 한반도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중국·러시아와 연계한 신(新)북방경제를 추진하는 것이 핵심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총 27곳(중앙급 5곳·지방급 22곳)에서 경제특구를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선군정치’에서 ‘경제건설’로 정책을 수정한 만큼, UN과 미국이 대북 제재를 해제하면 북한이 중국·베트남처럼 개방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재계는 북한 내 도로·항만·통신 등 기반시설(SOC) 건설, 광물자원 공동개발, 개성공단 2단계 사업을 포함한 경제특구 개발, 2007년 10·4선언에 기반한 각종 교류 확대 등을 기대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아산이 가진 북한 7대사업 독점권을 다른 기업들과 공유하는 방안을, SK는 북한 내 에너지와 건설 인프라 구축을, 삼성은 전자·IT분야를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보다 구체화활 것으로 전망된다. 또 북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주축이 될 공기업(한국전력·가스공사·도로공사·LH 등), 주요 건설사(삼성물산·현대건설·대림산업·대우건설·GS건설 등)도 이번 회담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여권의 한 중진 의원은 CNB에 “북한 핵문제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우리정부가 북측에 한반도 경제개발에 관한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이런 취지에서 기업인들 뿐 아니라 코레일, 한국관광공사 등 남북경협과 관련된 공기업 대표들까지 (이번 정상회담에) 동행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표 남북경협 코드는 ‘대한상의’


이처럼 시기적으로 기업의 역할이 중요해졌지만 정부는 여전히 전경련을 ‘패싱’하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 국빈 방문 때 경제사절단 선정을 전경련이 아닌 대상상의에 일임했으며, 이번 경제사절단 구성도 대한상의와 논의했다. 전경련은 문 대통령이 매일 상황판을 체크한다는 ‘일자리위원회’에서도 제외됐으며, 장·차관들은 과거와 달리 전경련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재계 맏형’이라는 수식어는 옛말이 된지 오래다.


이렇게 된 원인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비롯됐다.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 전경. 사진 = 연합뉴스

전경련은 삼성 현대차 SK LG 포스코 롯데 GS 한화 KT LS CJ 두산 한진 금호아시아나 대림 신세계 아모레퍼시픽 부영 등 대기업들로부터 774억원을 걷어 최순실씨가 실소유주인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했는데, 이로 인해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청산’ 대상으로 지목됐다. 또 ‘박근혜 청와대’ 지시로 수십억원을 ‘아스팔트 우파’로 꼽히는 어버이연합·엄마부대·고엽제전우회 등에 지원한 것이 알려져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정경유착 근절과 운영 투명화 등 혁신안을 내걸었지만 정부와 국민, 기업 모두가 외면했다. 차기 회장 선출을 위한 정기총회에서 10대 그룹 회장이 모두 고사해, 허 회장이 ‘셀프 연임’을 결정했으며 조직의 몸집이 크게 줄었다.  


전경련의 역할은 대한상의가 대신하고 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지난 4월 1차 남북정상회담 때 재계 인사로는 유일하게 판문점 행사에 초대됐으며, 이번 평양정상회담을 앞두고는 경제사절단 구성 문제를 놓고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과 머리를 맞댄 것으로 알려졌다. 


각종 대북 사업도 활발하게 준비 중이다. 대한상의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국제상업회의소(ICC)를 매개로, 북한 조선상업회의소와 직·간접 접촉을 해온 경험이 있다. 대한상의는 UN의 대북 제재가 완화될 경우, ICC를 통해 북한기업과의 접촉을 재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또 정책자문단 산하 남북경협분과 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과거 폐지했던 남북경협위원회를 조만간 부활할 것으로 알려졌다.  


개성공단의 경우에서 보듯, 남북경협이 중소기업들에게 유리한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17만 회원사를 갖고 있는 대한상의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전경련이 가진 풍부한 글로벌 인맥을 북한과 미국 간의 협상 채널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북경협은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가 전제돼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북미 협상이 먼저 돌파구를 찾아야하며, 이 과정에서 미국 재계와 오랜 친분을 쌓아온 전경련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이런 주장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력 경제인들을 정치적 기반으로 둔 기업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재계 “손 내밀 때 되지 않았나?” 


전경련 사정에 밝은 한 대기업 임원은 CNB에 “북미 간 핵협상이 단순히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전경련 만의 강점인 풍부한 국제행사 경험과 글로벌 연구활동을 외교적 차원에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경련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다른 경제단체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다. 올해에만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기업인자문회의(ABAC) 총회 참석, 대만국제경제합작협회(CIECA)와 ‘한·대만 경제협력위원회’ 개최, 미국상공회의소 및 일본 경단련과 ‘한·미·일 경제계 전략회의’ 개최, ‘한·중 CEO 라운드 테이블’ 개최,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2018 아시아 비즈니스 서밋’ 참석 등 10여건이 넘는 굵직한 국제회의를 주최하거나 참석했다.

 

전경련을 대신해 대한상의가 남북경협의 구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왼쪽)이 4월 남북정상회담 환영 만찬에서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단장(가운데), 가수 조용필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박용만 회장 페이스북

대한상의도 ‘한·터키 비즈니스 포럼’, ‘한·일·중 비즈니스 서밋’ 등 여러 국제행사를 개최했지만 대부분 정부 지원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또 재계를 대표하는 창구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참여가 선행돼야 하지만, 대부분 주요 그룹들은 대한상의 활동에 시큰둥한 표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CNB에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이 주를 이루는 대한상의에 참여하기에는 모양새가 좀 그렇고, 그렇다고 정부 눈 밖에 난 전경련을 지원할 수도 없어 지금은 몸을 사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는 투트랩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남북경협포럼 이승재 사무처장은 CNB에 “과거 전경련의 북한경제 개발 마스터플랜을 보면 평양사무소 개설까지 포함돼 있을 정도로 전경련 또한 남북 경제교류에 관심이 높다”며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북한의 경제개발에 대한 민간 차원의 국제적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역할은 전경련이 맡고, 국내 기업들과 북한 당국·기업을 실질적으로 연결 짓는 일은 대한상의가 담당하는 등 안팎으로 역할을 나눌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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