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도산대로의 다양한 건물을 검토했는데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건물은 없었다.”
건축가 듀오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뫼롱이 직언을 던졌다. 스위스 바젤에 본사를 두고 런던 뉴욕, 홍콩, 베를린에 지사를 두며 전 세계에서 활동해 온 헤르조그 앤 드 뫼롱(HdM)이 삼탄&송은문화재단 신사옥 건립 프로젝트를 맡아 국내를 찾았다.
신사옥은 2021년 6월 완공 예정으로, 약 600억 원의 건축비가 들어간다. 송은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송은아트스페이스, 송은아트큐브, 송은수장고를 비롯해 삼탄 본사가 신사옥에 입주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 신사옥을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 서펜타인갤러리 미술관 건축가로 알려진 HdM이 맡았다. 신사옥은 HdM이 설계한 국내 최초의 건물이 될 예정이다.
24일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HdM은 신사옥 프로젝트를 준비한 과정과 주안점을 밝혔다. 이들은 “서울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상업지구를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청담동 도산대로는 굉장히 상업적인 곳으로, 이곳에서 오히려 비상업적인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다양한 전시를 열고 한국의 재능 있는 신진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제공하는 등 문화 예술적 성격을 지닌 송은문화재단의 신사옥이 여기에 부합하다고 느꼈다.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서울에 문화적인 허브를 만드는 프로젝트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프로젝트에 들어갈 때는 항상 주변 환경을 면밀하게 검토한다. 가로등, 건물 크기, 디자인 등 도산대로의 다양한 건물들을 살펴봤다. 현대적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은 건물들은 많지만 사이즈, 높이 등이 모두 각양각색으로 일관성이 전혀 없더라. 부지마다 다른 건축법이 적용돼서 이런 양상을 보인 것”이라고 밝혔다.
신사옥 또한 토지사용제한법 아래 가져갈 수 있는 최대 건물 높이와 면적이 있었다. 대지면적 1179㎡에 지상 11층(지하 5층)의 건물이 들어선다. 전시공간은 4개층, 사무공간은 6개층, 공공공간은 1개층, 주차장은 3개층으로 구성되며, 건물 길이는 29m, 폭은 22m, 높이는 59m다.
HdM은 “주어진 조건 아래 도산대로의 다른 건물과는 차별화를 두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영감을 받았던 것은 ‘숨겨진 소나무’라는 뜻을 지닌 송은(松隱)이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굉장히 시적인 이름이라 느꼈다. 콘크리트를 사용하되 소나무 나무결을 건물 전체에 입히는 방식으로 이 특징을 살리려 한다”고 밝혔다.
이날 신사옥의 조감도도 공개됐다. 현재 전시가 활발히 열리고 있는 송은아트스페이스가 깨끗한 흰 벽에 창문이 많은 사각형 형태라면, 신사옥은 옆에서 봤을 때 삼각형 모양의 파사드 형태를 취했다. 또한 창문은 최소화 시키고, 소나무의 나무결을 살려 외관은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갈색 톤을 띨 예정이다.
개방적인 건물이 많이 지어지고 있는 트렌드 가운데 창문을 최소화시킨 이유에 대해 HdM은 “상단과 하단에 큰 두 개의 창문이 나 있다. 굉장히 정교한 위치로 여기서 도로를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건물은 궁극적으로 많은 사람을 유입해야 한다”며 “기타 대로변과의 차별점을 생각했을 때 랜턴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밝을 때뿐 아니라 해가 졌을 때 건물 이미지도 고려했는데, 어두워지면 창문으로 빛이 나오며 마치 건물이 랜턴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미 많은 투명한 건축물보다는 시적인 감성을 살려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찾아올 만한 건물을 짓고 싶었다. 여기에 단일 소재를 사용한 건물이 굉장한 파워풀한 느낌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도록 고려한다는 계획이다. 큰 길을 마주하는 신사옥의 높은 정면의 파사드는 도시 환경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며, 주택가와 인접한 후면의 경우 점점 높이가 낮아져 근처 주거 시설과 별다른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도록 설계됐다. 1층의 양 측면에는 보행자와 자동차의 출입을 위한 오목한 입구가 각각 하나씩 마련된다.
지붕으로 덮인 통로는 중심가에서부터 건물 입구를 연결하고, 입구로 들어오면 벽면으로 둘러싸인 정원이 대중에게 상시 개방된다. 입구 로비엔 대형 글라스월이 설치되는데, 특별한 행사가 있을 경우 유리를 열어젖혀 로비 공간이 정원과 이어진다. 입구 맞은편에 위치한 경사로는 방문자가 편히 앉아 영상을 관람하거나 2층 전시공간으로 연결되는 계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문화 예술을 위한 건물이라는 취지를 살려 전시 공간도 운영될 예정이다. 로비에서 나선형 계단을 통해 2층 전시 공간에 입장하면 중간 크기의 전시실과 길쭉한 형태의 리딩룸으로 들어갈 수 있다. 리딩룸에는 정원을 볼 수 있는 큰 창문이 하나 있고, 작은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진입하면 큰 전시실과 작은 전시실이 각각 위치한다. 전시실에서 긴 유리창으로 도산대로를 조망할 수 있다.
HdM은 “한국에서 실질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는 있었는데, 구현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는 스위스를 비롯해 다른 나라들을 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접했다. 문화 차이를 경험하는 것이 신난다”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이 우리의 일상에 영감을 던진다는 건 불변의 진리다. 경험이 다를 수는 있지만 열정과 가치는 똑같다고 생각한다. 이 점이 신사옥에 드러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