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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작가 – 이동기] 아토마우스-추상화 시리즈 넘어 '절충주의'까지

피비갤러리서 개인전 ‘이동기: 2015~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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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15호 김금영⁄ 2018.11.22 09:40:23

이동기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일본과 미국의 유명 캐릭터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섞어 만든 ‘아토마우스’. 1993년 이동기 작가가 내놓은 아토마우스는 작가의 작업을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하며, 이동기를 팝아트 작가라 불리게 한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익숙함과 신선함이 공존하는 아토마우스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고, 2016년엔 롯데와의 아트 컬래버레이션으로 초콜릿으로도 제작돼 화제가 됐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이동기 = 아토마우스’ 공식에서 벗어난다. 피비갤러리에서 내년 1월 19일까지 열리는 ‘이동기: 2015~2018’전은 작가의 피비갤러리 전속을 기념하는 전시이자 2015~2018년 작가가 제작한 대표작들을 전시하는 자리다.

그런데 여기의 중심에 아토마우스가 아닌 스누피, 핑크팬더 캐릭터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이미지가 중첩된 추상적 이미지가 자리한다. 작가는 이를 "절충주의"라 설명했다. 피비갤러리 측 또한 “작가의 작업 세계 중 절충주의가 가장 잘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이 2015~2018년 사이라 이 부분에 주목하며 전시명을 정했다”며 “전시는 일관되게 30여 년 동안 대중문화와 예술의 관계를 탐구해 온 이동기의 작업세계에 주목한다”고 밝혔다.

 

이동기 작가의 전시가 열리는 전시장 전경.(사진=김금영 기자)

하지만 작가의 대표적 상징인 아토마우스에 대한 설명 또한 잊지 않았다. 작가는 대학 시절부터 대중적인 이미지를 작업에 끌어오는 데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만화 캐릭터에 관심이 많았다. 작가는 “왜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섞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TV, 인쇄매체에서 반복적으로 봐 왔던 것이 무의식 속에 남아 있었고, 어느 순간 두 이미지를 섞었다”고 말했다.

아토마우스가 첫 등장했을 당시 우리나라 상황을 풍자하는 이미지라는 해석도 있었다. 1967년생인 작가는 “실제로 내가 성장해오던 시기엔 우리나라 문화가 일본과 미국 문화의 영향을 굉장히 강력하게 받았다. 그 상황을 비판적으로 통찰하는 캐릭터라는 해석들이 있었다. 물론 그런 해석도 가능하다”며 “아토마우스는 사회적인 맥락을 포함하면서도 내 개인적인 이야기가 동시에 들어간 복합적인 캐릭터”라고 말했다.

이밖에 작가의 작업은 크게 여섯 가지 시리즈로 구분된다. 먼저 강박적인 자기모방을 통해 분화되고 변이돼 온 아토마우스가 있다. 여기엔 수많은 아토마우스로 뒤덮인 버블, 스모킹, 도기독, 에이맨 등 캐릭터 위주의 작품들이 포함된다. 사람들에게 가장 흔하게 인식된 작가의 시리즈이기도 하다.

 

이동기, ‘날 정상에 데려다 줘(Take Me to the Top)’. 캔버스에 아크릴릭, 150 x 90cm. 2017.(사진=피비갤러리)

'더블비전’은 화면을 두 개로 나눠 한쪽엔 아토마우스, 다른 한쪽엔 색면 추상을 연상시키는 추상회화를 담은 시리즈다. 이때부터 점차 추상 작업이 전개되는 걸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추상 그리고 구체적 이미지의 영역을 동시에 다루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시리즈”라며 “현대미술에서 추상의 영역과 구체적인 영역을 상반된 것이라 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는 추상의 영역이 현실을 초월한, 현실 바깥에 있는 다른 세계를 그리는 것으로, 추상의 영역 또한 여타 분야들과 같은 베이스를 가졌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추상적 요소와 표현주의적 요소를 섞은 ‘추상화’ 시리즈는 2008년 이후 꾸준히 지속해 왔다. 앞선 ‘더블비전’에서도 추상적인 영역을 다뤘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이를 다루기 시작한 게 추상화 시리즈다.

아무 상관 없는 이미지들과 함께 놓인 핑크팬더와 스누피

 

이동기, ‘핑크 팬더(Pink Panther)’.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 x 222cm. 2015.(사진=피비갤러리)

해외에 소개된 한국 드라마의 장면을 캡처한 뒤 다시 그림으로 그린 ‘소프 오페라’ 시리즈도 있다. 작가는 흥미를 끄는 이미지가 있으면 수집해 놓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인터넷상에서 한국 드라마의 장면을 발견하고 이를 갖고 있다가 작품에 옮겼다. 본래의 이미지는 작가의 손길을 통해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스타일이 바뀌었다.

지난해부터는 이미지뿐 아니라 텍스트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작가가 평소 적었던 메모, 또는 인쇄물 등에서 추출한 단어들을 재배치해 추상화시킨 ‘낱말들’ 시리즈를 작업했다. 그리고 이것은 이번 전시의 중심을 이루는 절충주의 시리즈와 연관되기도 한다.

절충주의는 작가가 만든 말이라고 한다. 연관성 없는 이미지를 결합시키고 이로 인해 파생되는 비합리적이고, 우연적인 효과를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시리즈다. 작가는 “쉽게 말하자면 여러 내용이 뒤섞여 절충돼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동기, ‘스누피(Snoopy)’. 캔버스에 아크릴릭, 240 x 410cm. 2018.(사진=피비갤러리)

이번 전시에서는 ‘핑크 팬더’와 ‘스누피’, 그리고 ‘해쉬태그’가 이 시리즈의 대표작들로 선보인다. 핑크 팬더와 스누피에서는 가장 먼저 사람들에게 친숙한 핑크 팬더와 스누피 캐릭터가 눈에 띈다. 하지만 그 외엔 이 캐릭터들과 상관없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화면 여기저기에 쌓여 있다. 1970~80년대 한국 만화에서 가져온 이미지도 있고, 작가가 만들어낸 추상적·기하학적인 패턴도 있으며, 작가가 손으로 마구 끄적거린 선 모양 낙서를 확대한 이미지도 있다.

이 이미지들이 모인 연유에 대해 작가는 “특별한 이유로 어떤 기준을 갖고 특정 이미지를 선택해 조합한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화면에 넣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잘 정돈된 일관성 있는 화면이 아니라, 파편화되고 분산됐으며 비합리적인 화면”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식적 측면에서 화면을 분석하지 말고 감정을 중심으로 작품을 바라보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다. 작가는 “작품의 의미를 일관성 있게 한 가지 의미로만 규정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내 작업에서 어떤 부분은 굉장히 의도적 배치로 이뤄지는 경우도 있지만, 또 다른 부분에서는 완전히 즉흥적으로 이야기가 결정되는 부분이 있고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 있다”고 말했다.

 

이동기, ‘해쉬태그(Hashtag)’.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 x 222cm. 2015.(사진=피비갤러리)

그는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작품의 콘셉트를 중요하게 여겨 작품 제작 전후에 논리적으로 의미를 체계화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난 그런 식의 현대미술에 의문을 갖고 있다. 이미 과거 초현실주의자 등은 인간의 무의식의 영역, 비합리적인 영역에 주목했다. 난 그런 요소들을 내 작품에 많이 담고 싶었다”며 “전체 작품을 명확하게 파악하긴 어렵겠지만 관객들이 각자의 경험이나 지식, 입장에 따라 작품 안에서 연결고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관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작업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래서 작가의 작업에선 작품명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작품명은 대개 작품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유추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이 큰데, 이 또한 관객의 자발적 판단에 맡기는 셈. 앞서 언급된 ‘낱말들’ 시리즈는 중첩되는 대상을 이미지에서 텍스트로 바꾼 것인데 이 시리즈 중 하나인 ‘예수는 정말 괜찮아’ 또한 제목에 큰 의미가 없다. 화면 속 등장하는 여러 말들 중 그냥 하나를 선택했다고 한다. 작가는 “제목이 작품 전체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일부분만을 설명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작가의 작업을 쭉 살펴보다보니 작가의 모든 작업들은 경계를 깨부수고 싶어 한 마음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느껴졌다. 대표작인 아토마우스는 만화와 순수미술 사이의 벽을 뛰어넘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에서 비롯됐다. 작가는 “당시 순수미술은 예술계에서 하이 아트, 즉 고급미술 그리고 만화는 하위 문화로 여기는 측면이 컸다. 만화적인 이미지를 순수미술에서 다루는 것이 마치 금기처럼 여겨졌다. 처음 아토마우스 작업을 갖고 나왔을 때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전시장 안쪽의 또 다른 공간엔 작가의 대표 시리즈인 아토마우스 시리즈 작품들이 걸려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그런가 하면 ‘추상화’ 시리즈의 하나인 ‘북치는 작은 소년’에서는 그래피티 작가들이 사용하는 스프레이 페인트로 추상 작업을 시도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추상 작업은 예술에서 하이아트, 즉 고급미술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이 하이아트를 거리에서 사용된 재료로 표현하며 경계를 허물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꾸준히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시도해온 건 그의 작업에 흥미를 보이고 지지해준 사람들이 있어서다. 홍익대 미대 출신인 작가는 대학생 시절 현재 단색화의 대가인 박서보, 하종현, 이대원, 정상화 작가의 수업을 들으며 많은 걸 느꼈다고 한다.

작가는 “당시 선생님들이 항상 스스로 작가라는 걸 강조하면서 하루에 12시간씩 작업한다고, 너희도 열심히 하라고 말했다”며 “대학 다닐 때도 만화 이미지를 화면에 들여오는 실험을 전개하고 있었다. 선생님들한테 많이 혼나진 않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1960~70년대에 이미 굉장히 실험적인 작업을 전개했던 분들이어서 내 작품도 호의적으로 보며 ‘재미있는 걸, 새로운 걸 더 많이 시도해보라’는 조언을 해줬다”고 말했다. 캐릭터에서 시작된 작가의 화면은 추상적 요소가 가미된 절충주의에까지 이르렀으며 현재도 변화를 반갑게 맞이할 준비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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