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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작가 5인이 꾸린 비밀스런 ‘기적의 안뜰’

배은아 큐레이터, 두산갤러리 서울서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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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16-617합본호 김금영⁄ 2018.11.28 16:54:34

‘기적의 안뜰’전이 열린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파리의 뒷골목을 가리키는 ‘기적의 안뜰’. 낮에는 불구 행세를 하던 걸인들이 밤이면 이곳으로 돌아와 정상이 된다고 해 생겨난 표현이다. 어찌 보면 불구 행세를 했던 ‘거짓’이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또 다르게 보면 이면에 숨기고 있었던 정상이라는 ‘진실’이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쉽게 드러낼 수 없었던 진실을 펼치는 공간.

이 ‘기적의 안뜰’이 작가 5인(박승원, 박종호, 정소영, 조은지, 홍승혜)에 의해 두산갤러리 서울에 펼쳐진다. 두산갤러리 서울은 2018 전시기획 공모로 선정된 배은아 큐레이터의 ‘기적의 안뜰’전을 12월 19일까지 연다. 두산갤러리는 2011년부터 두산 큐레이터 워크숍 프로그램을 통해 매해 세 명의 신진 큐레이터를 지원해 왔다. 올해엔 큐레이터에 대한 지원을 확장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공모를 통해 한 명의 기획을 선정했다. 이 프로그램은 격년 공모를 통해 진행될 계획이다.

올해엔 배은아 큐레이터가 선정됐다. 지난해 배 큐레이터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운영하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11기 입주 작가의 기획전 ‘무단결석(덤불학교, Ecole Buissonniere)’전을 선보인 바 있다. Ecole Buissonniere는 프랑스어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덤불에 숨어서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를 지녔다.

 

박승원, ‘호흡’. 단채널 비디오, 12분. 2018.(사진=두산갤러리)

이 덤불학교를 배 큐레이터는 제도 바깥에서 자유롭게 상상의 시간을 지니는 창조의 공간으로 해석해 전시에 펼쳤다. 그리고 이 개념은 이번 ‘기적의 안뜰’전으로 이어진다. 덤불학교에서 기적의 안뜰로 경계를 넘어 온 작가 5인은 사회에서 자신을 억누르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고, 솔직한 내면을 창조 활동으로 드러낸다.

배 큐레이터는 각기 다른 시기에 다른 상황에 처해 있던 작가 5인을 만났다. 이들은 스스로 지니고 있었던 심리적, 물리적, 정치적 그리고 윤리적 경계를 이야기하며 이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를 한다. 그리고 ‘기적의 안뜰’전을 통해 관람객들은 이들이 감추고 있었던 비밀, 즉 진실한 내면을 마주하게 된다.

박승원과 박종호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업들을 풀어낸다. 박승원의 작업은 극한 상황에 치달아 있다. ‘호흡’에서는 한 남자가 가짜 깃털이 꽂힌 비닐을 얼굴에 뒤집어 쓴 채 숨을 겨우 헐떡헐떡 쉬고 있다. 숨을 쉴 때마다 까만 깃털이 흔들리는 게 마치 검은 숨이 터져 나오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야심한 밤 건물 외벽 위 올라가 절뚝절뚝 제자리 뛰기를 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숨이 막힐 때까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변기를 향해 애써 오줌을 참으며 찔끔찔끔 흘린다. 이 영상에 등장하는 남자는 모두 작가 본인이다.

 

박종호 작가의 그림이 설치된 모습. 허공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개와 어른인지 아이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인물을 통해 작가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질문을 던진다.(사진=김금영 기자)

배 큐레이터는 “한국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독일에 유학 갔을 때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고독한 상황을 마주했다. 당시 동물원에 갔는데 우리 속 원숭이의 무언의 행위가 자신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퍼포먼스를 시작한 작가는 원숭이탈을 쓰고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자신이 겪은 히스테리적 상황을 예술로 표현한 시도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작가는 극한 상황에 몰릴 때마다 때로는 아무리 애써도 다다르지 못할 수 있는 것도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삶의 결여의 순간 또한 느꼈다. 이를 인정한 작가는 사물로 놀듯이 작업하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본질적으로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때로는 억압 없이는 살 수 없는 이중적인 존재라는 고백을 하며 여기서 생기는 고독을 풀어놓는다”고 덧붙였다.

박종호의 화면엔 경계심이 가득하다. 아이인지 어른인지 소년인지 소녀인지 모를 인물이 등장하고, 허공을 향해 매섭게 짖는 두 마리의 개가 눈에 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소년들은 작가의 두 아들로, 박종호는 아들의 얼굴에 자신의 유년기 트라우마를 중첩시킨다. 이로 인해 작가의 과거, 그리고 아들의 현재가 뒤섞이는 모호한 경계가 만들어진다.

배 큐레이터는 “작가는 어린 시절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여러 상황을 겪었다고 한다. 유년기 트라우마는 작가가 여태껏 구축해 온 자신의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기르던 개’에서 허공을 향해 짖는 개는 결국 작가가 스스로를 향해 부르짖고 있는 상황으로, 인위적으로 구축된 정체성을 거부하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착하고 순종적인 반려견이 아닌 매섭게 짖는 개, 그리고 번듯한 얼굴로 어른인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불편함을 솔직히 드러내는 듯한 인물의 초상. 박종호의 초상들은 가슴 속 어딘가 꾹꾹 숨겨놓은 미세하고 잔혹한 감정들을 살아가게 하는 동시에 억압된 본능을 드러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기적의 안뜰은 누구에게나 있다

 

정소영, ‘텍토닉 메모리 3장. 여행’. 영상설치, 반복재생. 2018.(사진=두산갤러리)

정소영과 조은지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가치들에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진다. 정소영은 우리를 둘러싼 자연적, 인위적인 것들에 눈을 돌린다. 땅 속 지층의 결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작업을 선보이는 그는, 우리가 현재 스스로의 정체성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결국은 어느 하나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자연적, 인위적인 것들이 뒤엉켜 형성됐음을 이야기한다.

두 개의 구 설치물 중 하나는 파편이 모인 것처럼 열린 형태, 또 다른 구는 시멘트로 단단하게 빚어 대조적인 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다. 배 큐레이터는 “하나는 가볍게 다른 하나는 무겁게 상대를 대응하는 두 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갈지, 마치 구를 굴리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그려지는 흔적의 전개도처럼 정소영의 이야기는 여러 이야기로 증식된다”고 말했다.

 

조은지의 ‘머드 블러썸’이 전시장 벽면에 크게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조은지 또한 반대로 여겨졌던 가치관들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머드 블러썸’은 독일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의 방산충이라는 단세포 해양생물의 기하학적 형태를 바탕으로 시작된 작품이다. 방산충은 본래 박멸돼야 하는 기생충으로, 그 이미지 또한 부정적으로 인식돼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 박멸해야 할 대상을 아름다운 꽃의 형태로 도식화했다. 즉 아름다움과 그렇지 않은 것이라 여겨진, 극단적 양쪽이 함께 존재하는 상황을 만들며 다름이 만들어낼 수 있는 화합을 보여준 것.

이밖에 박테리아와 이스트가 공존하는 설치물이 전시장에서 어떻게 변형돼 가는지도 보여준다. 배 큐레이터는 “사람들은 좋다, 나쁘다의 기준을 세워 원래 몸 안에 있었던 좋은 균마저 몰아내고 있다. 하지만 균에서 채취한 것들이 화학 옷감을 대체하는 용도로 쓰이는 등 각 존재에는 나름의 가치가 있다”며 “조은지는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완전히 단절시키려는 태도에 질문을 던지며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의 순환 구조를 파악하고 바라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홍승혜, ‘서치라이트’. 플래시 애니메이션, 4분 12초 루프, 음악 홍승혜 틱톡송. 2018,(사진=두산갤러리)

마지막으로 홍승혜는 ‘기적의 안뜰’에 소리를 울려 퍼지게 한다. 비물질적 요소로 공간에 깊은 울림을 채우는 작업을 전개해 온 그는, 전시장의 입구부터 가장 깊은 안쪽까지 울리는 두 개의 소리를 통해 관람객들로 하여금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바닥에는 동그란 형태의 빛으로 이뤄진 ‘서치라이트’가 서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 사이를 천천히 이동한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는 개별적으로 이뤄져 있던 작가들의 작품이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이끈다. 마치 개인의 삶이 전적으로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삶의 모순처럼.

배 큐레이터는 “시대가 변할 때마다 수많은 형태의 ‘기적의 안뜰’이 존재해 왔다. 우리나라에도 시대상을 반영한 ‘미아리 고개’ ‘아리랑 고개’ 등 무수한 고개가 있었고, 해외에서도 ‘기적의 안뜰’뿐 아니라 ‘마법의 안뜰’ 등 진실을 담고 있는 공간들이 여러 이름으로 불려 왔다”며 “진실이 살아 있고, 언제든 들어가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곳, 진실을 창피하지 않게 나눌 수 있는 공간은 누구에게도 ‘기적의 안뜰’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소박한 진실이라도 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는 자체가 기적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적의 안뜰’전에 모인 박승원, 박종호, 정소영, 조은지, 홍승혜 작가는 각기 다른 시기와 다른 상황에서 대면했던 현실에 대해 느낀 바를 솔직하게 작품에 풀어낸다.(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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