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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문제적 공연장’ 남산예술센터에 오르는 ‘문제적 공연들’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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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19.01.24 17:45:55

1월 23일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린 ‘남산예술센터 2019 시즌 프로그램 발표’ 간담회 현장.(사진=서울문화재단)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김종휘)은 3~11월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르는 시즌 프로그램 6편을 2공개했다. 매년 동시대 이슈를 주목해온 남산예술센터의 올해 가장 큰 화두는 ‘극장을 지켜라’이다.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은 1월 23일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린 ‘남산예술센터 2019 시즌 프로그램 발표’ 간담회에서 “2015년 늦가을 극장장으로 남산예술센터로 왔을 때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가장 논쟁적인 극장이 됐으면 한다’고 했고, 실제로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블랙리스트 정국 당시 다른 공공 극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남산예술센터는 세월호, 검열 등 긴장감 있는 작품을 올렸고, 지난해엔 미투 관련 공연을 다루려는 시도도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처럼 공격적이고 논쟁적인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극장으로 자리매김해 온 남산예술센터 자체가 올해 시즌에서는 주인공이 됐다. 남산예술센터는 1962년 유치진(1905~1974)이 세운 드라마센터를 2009년 서울시에서 임대해 서울문화재단을 통해 위탁 운영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이 가운데 지난해 서울예술대학(학교법인 동랑예술원)이 10여 년 동안 드라마센터(현 남산예술센터)를 임차해 운영해 온 서울시에 문화 사업 계약 종료를 요청해 남산예술센터 존속 여부가 흔들리면서 공공성과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연극인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또한 같은 해 서울재단은 독립 본부로 존재하던 남산예술센터와 삼일로 창고극장을 지역문화본부 산하 극장 운영팀으로 배치하는 조직 개편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극장의 총괄 운영 및 결정 권한이 지역문화본부장에게 일임되면서 남산예술센터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침해받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기존 극장장의 직제와 권한은 없어지고, 극장장은 남산예술센터 공동제작 작품의 예술감독 보직만 담당하게 됐다.

 

질문에 답하고 있는 김종휘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사진=서울문화재단)

이에 김종휘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남산예술센터와 삼일로 창고극장을 조직상 독립된 단위로 분리할 수 있도록 올해 안에 관련된 절차를 마무리하겠다. 다만 행정 및 인사권은 계속 지역문화본부에 둘 것”이라며 “동숭아트센터 등 관리할 공간이 계속 생길 예정이어서 큰 단위로 통합하고자 시스템을 정비한 것이다. 극장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킬 수 있도록 재단 시스템을 혁신 개선해달라는 연극계 요청은 앞으로 함께 논의했으면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 가운데 연극계는 김 대표의 약속이 미봉책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구자혜 연출은 “남산예술센터는 누군가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극장을 운영해 온 직원들의 자율적 의지로 동시대 연극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작품을 올려 왔다”며 “연극과 극장에 주어진 한계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며 긍정적인 긴장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작업자들에게도 남산예술센터가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대의나 행정 절차라는 미명 아래 지금까지 남산예술센터가 해온 일들이 순식간에 삭제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우연 극장장 또한 “올해 논쟁의 주제어는 우리 극장이 돼버린 것 같다. 극장 안팎으로 지닌 문제가 많다. 공공극장으로서의 주체성과 드라마센터의 주인은 누구인가 등 논쟁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이 극장의 운명과 정체성을 다시 만들어가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 시즌의 또 다른 수식어로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이다. 극장 문제를 비롯해 사회에 수많은 참사가 벌어지는데 진상 조사라는 단어가 언론에 많이 등장하지만 정작 진상 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연극은 사건의 빠른 종결을 원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문제를 이야기하고 논쟁을 벌이며 잊지 않기 위해 올해 시즌 프로그램도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산예술센터 주제 ‘드라마센타’ 비롯해
세월호·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 소환

 

이양구 극작가는 남산예술센터를 둘러싼 현재진행형 이슈와 쟁점을 다루는 ‘드라마센타, 드라마/센타(가제)’(작 이양구/연출 류주연, 9월 18~29일)를 올릴 예정이다.(사진=서울문화재단)

극장의 정체성과 관련된 작품으로는 ‘드라마센타, 드라마/센타(가제)’(작 이양구/연출 류주연, 9월 18~29일)가 눈길을 끈다. 극장을 둘러싼 현재진행형 이슈와 쟁점을 정면으로 다루고, 현장 연극인들과 협업과 연대를 강화하기로 했다. 역사적 사료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드라마센터의 근본적인 과거사 바로잡기와 동시에, 동시대 공공극장의 존재 의미에 질문을 던진다.

이양구 작가는 “행정기구든 지방자치든 극장은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연극계에는 이미 블랙리스트로 인한 상처가 있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는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보다도 다음 세대들과 대화를 나누는 작업을 하고 싶다. 우리가 어떤 참사에 대해 엄격하게 해석하고 다뤄왔는지, 아니면 적당히 해석하고 넘어갔는지 질문을 던질 생각”이라고 밝혔다. 류주연 연출은 “드라마센터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잘 알까? 아마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연극인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무대화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몇몇 문화예술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좋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2019년 시즌 프로그램의 막을 올리는 ‘7번국도’(작 배해률/연출 구자혜, 4월 17~28일)는 남산예술센터 상시투고시스템 ‘초고를 부탁해’를 통해 발굴된 작품으로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을 다룬다. 서치라이트(Searchwright)에서 낭독 공연으로 관객들과 먼저 만났고 이어 시즌 프로그램까지 단계별 제작 시스템을 거쳤다.

지난 낭독공연에 이어 구자혜 연출이 함께 해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들을 연극이 어떻게 직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젊은 극작가 배해률의 첫 장막희곡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배해률 작가는 “막을 수 있었으나 막지 못한 부당한 죽음을 끌어안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라고 미루고 살지는 않았는지, 사회적 참사 이후 피해자들이 사회적 영웅으로 부상하기를 우리는 은연중 기대하지 않았는지 그에 대한 고민 속에서 작품이 출발했다”며 “피해자들이 부당한 현실과 싸우거나, 또는 싸우지 않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이 더 치열할 수도 있었겠다고 느꼈다. 피해자의 전형 바깥의 이야기를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극단 코끼리만보와 공동 제작하는 ‘명왕성에서’(작/연출 박상현, 5월 15~26일)는 세월호 당시의 실제 증언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성 작품이다. 동시에 사회적 참사로 희생된 망자들과 남겨진 이들을 다시 불러내어 그동안 유보시켜 온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진혼(鎭魂)을 시도하는 씻김굿의 의도를 지녔다. 작품은 세월호 참사 5주기를 기억하며, 지금은 우리 곁에 없는 망자들이 함께 있다는 각성을 하게 만든다.

박상현 작/연출은 “5년 전 세월호 유가족이 대학로 작은 소극장에 찾아왔다. 당시 정부는 세월호 참사 수습에 비협조적이었고 언론이 왜곡된 보도들을 내보내면서 유가족이 직접 시민을 찾아 나선 것이었다. 그때 유가족에게 ‘절대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며 세월호 이야기로 작품을 쓰겠다고 했다”며 “이후 촛불 시위가 있었고 정부가 바뀌면서 세월호 사건의 진상 규명을 기대했다. 배는 바다에서 올라왔지만 배만 올라왔을 뿐 진상 규명은 멈춰 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작품을 썼다. 이별의 형식이라는 낭독을 빌어 죽음과 이별의 고통을 응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작품에 함께하는 손원정 드라마터그는 “아이들의 말, 어머니들의 말, 시신을 수습했던 분들의 말을 빌려 세월호의 기억을 극장으로 소환한다. 아이들은 남아 있는 우리에게 이제 자신들은 없으니 잊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잊으라는 말이 얼마나 잊을 수 없는 것인지, 망각과 기억이 얼마나 가깝게 붙어 있는지 관객과 함께 감각해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남산예술센터 ‘2019 시즌 프로그램’ 공식 포스터.(사진=서울문화재단)

‘휴먼 푸가(Human Fuga)’(원작 한강/공동창작/연출 배요섭, 11월 6~17일)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대 위로 끌어낸다. 한강의 장편소설 ‘소설이 온다’를 푸가(Fuga)라는 음악적 형식으로 풀어낸다. 극장 공간에 들어서면 도처에 80년 광주를 모티브로 한 설치 작업물이 있고, 소설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과 기억, 행동들은 극의 재료로 변주돼 새롭게 해체, 조립된다.

배요섭 연출은 “‘소설이 온다’를 읽을 때 너무 아파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 ‘두개골이 함몰될 정도로 내리칠 수 있는 인간의 악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런 사회적 고통이 개인의 몸에 어떻게 각인될 수 있는가?’ 이런 궁금증이 생겼고, 인간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고 조금이라도 더 껴안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무대를 생각했다”며 “공연은 소설 속 사건들을 바탕으로 이 이야기들이 퍼포머의 몸이나 오브제 등을 통해 어떻게 새롭게 변주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연극계의 각종 상을 휩쓸며 주목받은 2018년 시즌 프로그램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그리고 제8회 벽산희곡상 수상작인 서민준 작가 원작의 ‘묵적지수’도 마련된다.

지난해 초연으로 선보인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원작 장강명/각색 정진새/연출 강량원, 10월 9~27일)은 올해 시즌 프로그램에서도 재연된다. 해당 작품은 초연 당시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월간 한국연극 ‘2018 공연 베스트 7’ 선정, 제55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2015년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인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강량원 연출은 “원작 소설은 동급생을 살해하고 복역을 마친 뒤 세상에 나온 인물이 자신이 살해한 동급생 어머니 손에 스스로 살해당하는 이야기를 다룬다”며 “올해 공연에서는 스스로 저지른 살인, 저지르게 된 살인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구원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더 깊이 들어가보려 한다”고 밝혔다.

제8회 벽산희곡상 수상작인 서민준 작가 원작의 ‘묵적지수’(작 서민준/연출 이래은, 6월 26일~7월 7일)는 달과아이 극단과 공동 제작한다. 남산예술센터는 새로운 창작극을 발견하고 극작가의 창작 활동과 공연 제작 지원에 힘쓰고자 벽산문화재단과 지속해서 교류해 왔다. 올해는 춘추전국시대 사상가 묵자와 초혜황이 모의전을 했다는 일화를 바탕으로,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작가의 연극적 상상력이 무대 위에서 동시대적 언어로 탄생한다.

서민준 작가는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와 오늘날이 별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여러 가치관이 격돌한 시대에서 약자의 편에 섰던 묵자가 있었고, 이와 대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묵자가 했던 모의전은 미래의 전쟁과도 굉장히 닮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래은 연출은 “대본을 처음 보고 ‘누군가에게 공격받을 때 나는 어떻게 대응하는가?’ ‘남에게 일어나는 폭력을 목격했을 때 나는 어떻게 했는가?’ ‘직접 공격하지 않았다고 면죄부가 주어지는가?’ 등 많은 의문이 들었다. 능력주의, 자본주의의 폭력 속 2019년의 모습을 어떻게 ‘묵적지수’에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했고 이것이 연출 방향”이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폭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고 있다. ‘묵적지수’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남산예술센터를 채울 수 있도록 공연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남산예술센터는 2017년부터 시즌 프로그램과 별도로 극장진입의 문턱을 낮추고자 제작 전 단계의 작품 콘텐츠를 사전 공유하는 공모 프로그램 서치라이트(Searchwright)(3월 19~29일)를 진행하고 있다. 신작을 준비 중인 개인 및 단체라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발표 형식은 낭독공연, 워크숍, 주제 리서치를 위한 공개토론, 컨퍼런스, 프레젠테이션 등 자유롭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은 극장 공간, 무대기술, 연습실과 소정의 제작비 지원을 비롯해 극장, 관객, 기획자, 예술가들과 함께 작품을 공유할 기회를 가진다. 2018년 ‘서치라이트’에서 2019년 시즌 프로그램으로 발굴한 작품으로는 ‘7번국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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