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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공연장에만? 전시장에도 존재하는 ‘관크족’

인생샷 찍으려는 관람객 옆에 얼굴 찌푸려지는 모습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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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31호 김금영⁄ 2019.03.12 11:20:39

김홍식 작가의 작품 중 일부.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눈이 아닌 핸드폰 카메라의 화면으로 작품을 보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사진=김금영 기자)

파라다이스집에서 열리고 있는 김홍식 작가의 전시장을 최근 찾았다가 흥미로운 작품을 봤다. 작가의 화면엔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겼는데, 직접 눈으로 작품을 감상하지 않고 핸드폰, 카메라 등을 꺼내 사진 찍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작가는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다시 포착해 전시장에 내놓았다. 그는 “몇 년 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가 수많은 관람객의 시선이 작품이 아닌 핸드폰, 카메라에 꽂혀 있는 걸 발견했다. 작품 감상보다 인증샷을 찍어 그 순간을 간직하고자 하는 욕망이 앞선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페로탕서울에서 3월 9일까지 열린 JR 작가의 개인전 현장에서도 비슷한 느낌의 작품을 발견했다. 루브르 박물관 마당에 있는 거대한 유리 피라미드 앞에 모여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손에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기에 바빴다. JR은 기념사진을 찍으려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유리 피라미드에 흑백 착시 이미지를 뒤덮어 마치 피라미드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건 루브르 박물관에서만의 특이 현상이 아니다. 과거엔 갤러리, 미술관이 ‘정숙’의 대표적인 장소였다. 작품 감상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아이들을 동반하는 경우 등에는 다소 방문하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

 

JR 작가의 작품. 루브르 박물관 마당에 있는 거대한 유리 피라미드 앞에 모여든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을 다시 작가가 포착했다.(사진=김금영 기자)

그랬던 전시장이 점차 친근해지고 있다. 사진 촬영이 가능한 전시들이 많아지면서 인증샷 명소에 미술관, 갤러리의 이름이 오르기도 한다. 아름다운 작품으로 사진에 시각적 효과를 더하고, 여기에 더불어 문화적 교양을 드러내고 싶은 이들에게는 전시장이 인생샷을 건지기에 딱 알맞은 장소인 것. 맛집 열풍이 불었을 땐 음식점을 찾았던 사람들이 식상한 곳을 벗어나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나서는 발걸음의 일환이기도 하다.

미술관, 갤러리 측에서도 사진 촬영을 허용하면서 보다 많은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효과를 보고 있다. 본래 사진 촬영을 허용하지 않았다가, 이례적으로 사진 촬영을 허용하는 전시를 기획했던 한 갤러리 관계자는 당시 “확실히 사진을 찍으러 관람객들이 찾아오면서 평소 전시보다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며 “인증샷이 SNS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알아서 홍보 효과를 발휘하더라”고 밝히기도 했다. “예술을 부담스럽게 여겨 미술관, 박물관의 턱이 높게만 느껴졌던 이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효과가 있다”고 장점을 밝힌 경우도 있었다.

확실히 이런 측면들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뭐든 과해지면 문제다. 지나친 사진 촬영에 작품 감상을 방해받는 관람객들의 하소연 또한 만만치 않게 늘어나고 있다. 보통 ‘관크족(관객과 크리티컬(critical)의 합성어로, 공연 관람에 불편을 주는 사람들을 비꼬아서 쓰는 신조어)’이라 하면 흔히들 공연장을 떠올리지만 전시장 또한 관크족이 범람하는 위험(?) 지대가 됐다는 것.

관크족의 위협을 몸소 느껴보기도 했다. SNS상 굉장히 핫한 전시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들어가는 데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들어가서도 길게 쭉 늘어선 줄에 영문도 모르고 서 있었는데, 알고 보니 예쁜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한 줄이었다. 사진 촬영 생각 없이 작품을 보러 간 건데 연이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사진 촬영으로 작품 앞을 가로막은 관람객들로 인해 감상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후다닥 쫓겨나오듯 전시장에서 나왔다. 머릿속에 남은 건 작품이 아닌,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취했던 포즈였다. 그때 이후로 ‘사진 촬영 가능’을 표방하는 전시장은 기피하게 됐다.

 

사진 촬영이 가능했던 한 전시. 포토존 앞에 줄이 늘어선 모습을 전시장 이곳저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사진=김금영 기자)

상황이 이렇다보니 요즘 트렌드에 거슬러 시대 역행적으로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미술관이 오히려 주목받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일본 나오시마 섬에 있는 미술관들은 관람 인원을 제한하고, 미술관 안에서 떠들지 말아야 하며,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 그래서 오롯이 작품 감상에 집중하고 싶은 관람객들에게는 이곳이 핫플레이스다. 본래의 목적인 ‘전시 감상’에 집중해 호응 받은 것.

일부 전시의 경우 사진을 찍고 싶은 관람객과 작품을 조용히 감상하고 싶은 관람객 양측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존과 포토존을 따로 구별해놓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완벽히 관크족을 피하기엔 부족한 현실이다. 관람에 방해를 주는 행동들을 특별히 규제할 수 없는 현실적인 여건이 받쳐주지 않고, ‘사진 촬영 가능’을 홍보로 내세운 전시에서 사진 촬영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 관람자들의 매너가 정말 중요하다. 장소의 목적에 맞게 찾아가고 행동해야 한다. 사진 촬영이 가능한 전시장에서는 가급적 사람들이 적을 때 사진을 찍는 배려가 필요하다. 또한 한 작품 앞에서 너무 오랫동안 촬영을 하며 자리를 독식하는 건 매너 없는 행동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도 조금은 기다려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사진을 촬영할 권리가 있으면, 작품을 감상할 권리도 동등하게 존재한다. 장소가 트렌드에 맞춰 변화하는 만큼 그 장소를 사용하는 사람들 또한 그만한 예절을 갖춰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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