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는 스위스 출신의 현대미술가 우고 론디노네의 개인전 ‘땅과 맞닿다’전을 5월 16일~6월 30일 연다. 작가는 지난 30여 년 동안 시적 감각으로 시간의 흐름, 자연의 본질, 인간의 일상을 주조하는 애정과 상실감 그리고 해학을 다양한 작품을 통해 해석해 왔다. 2015년 이후 국제갤러리에서 두 번째로 선보이는 작가의 이번 전시는 인간의 경험에 깊게 관여하는 자연이라는 소재와 다양한 재료의 섬세한 물성에 대한 탐구의 결과물인 네 개의 독립된 작업군을 K2 1층과 K3에서 선보인다.
K3에서 선보이는 ‘태양’(2017)은 이번 전시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작업으로, 시간과 자연의 상징적인 힘을 다룬다.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궤적을 그리듯, ‘태양’이 형상화한 거대한 원은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인 태양이 상징하는 생명의 힘과 편재성을 상기시킨다.
K2에서는 세 개의 독립된 작업이자 자연 요소인 공기, 흙, 물을 상징하는 동물군인 새, 말, 물고기 무리를 각기 형상화한 ‘태고의’, ‘두 개의 서 있는 풍경’과 ‘노랑 하양 초록 시계’가 조화를 이룬다. ‘태고의’(2016)는 전시장 천장에 매달리듯 설치된 물고기 형상의 브론즈 조각 52점으로 구성되며, 각 조각은 점토를 사용해 표면에 새겨진 작가의 지문과 함께 캐스팅된다. 대형 물고기 떼를 다양한 높낮이로 설치해 깊은 공간감을 생성하고, 이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해저삼림을 여유롭게 산책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두 개의 서 있는 풍경’(2019)은 K2 전시장 내부 공간의 중심이 되는 기둥에 맞춰 장소 특정적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특별하게 혼합한 토양으로 완전히 뒤덮인 기둥은 공간 내에서 부유하는 듯한 신비한 물체로 재탄생, 정형화된 갤러리 공간을 유기적인 장소로 탈바꿈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조각의 다양한 연출을 통해 몰입적인 공간을 추구하는 작가의 이런 접근 방식은 ‘심적 공간의 형성’을 의도하는 ‘풍경’ 연작의 주제와도 닿아 있다. ‘노랑 하양 초록 시계’(2012)는 로마 숫자로 시간이 새겨진 시계 형상을 띠지만, 정작 시침과 분침이 없어 형이상학적 차원의 시간 흐름을 상기시킨다. 자연 채광이 전시장 내부에 스며들도록 기능하기도 하는 이 작업은 전시장을 다른 시공간으로 연결하는 둥근 창이자, 갤러리 공간 이상의 무언가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실마리가 된다.
시간을 함의하지만 정작 시간은 알려주지 않는 시계와도 같이 ‘태고의’를 구성하는 52마리의 물고기에는 ‘바위’, ‘습지’, ‘생태계’ 등의 개별적인 이름과 독립적인 개념이 부여되는 동시에 이들이 형성하는 무리는 다른 차원으로의 경험을 가능케 하는 시적 중의성을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