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도스가 기획전으로 최혜인 작가의 ‘잠재된 덩어리’를 9월 4~17일 연다.
작가가 포착한 화면엔 여러 과일 등의 씨앗이 보인다. 그에게 이 씨앗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잠재된 윤회의 생명력과도 같았다고. 작가는 “무성한 나무도 시작은 작은 씨앗이었다”며 “나에게 씨앗은 이것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쪼개어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물을 주고 키워가며 알아내야 하는,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키우듯이 시간이 필요한, 잠재된 생명 덩어리”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씨앗은 수많은 시간과 기억의 층을 지닌다. 한 나무의 삶과 죽음, 자연과의 상생이 이 한 톨에 다 담겼다”며 “씨앗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그리고 때가 되면 꽃잎을 떨군다. 아름다운 꽃이 지는 것은 애달프지만 꽃이 져야 비로소 열매와 씨앗이 맺어진다. 역설적이지만 꽃의 죽음은 생을 이어가기 위한 또 다른 시작이자 축복이 된다”고 강조했다.
작고 가벼운 씨앗 속에 시작과 끝이 함께 있다는 사실에서 느낀 경이로움은 작가의 붓 끝에 담겨 작품으로 탄생했다. 특히 우리네의 삶과 죽음과도 연결돼 이야기를 확장시켰다. 작가는 “나는 도시에 살면서 씨앗을 통해 자연의 뿌리를 상상한다. 인간의 몸을 흙과 동일한 바탕, 마음을 유동적인 물이라고 생각해 본다”며 “흙은 생명을 품고 물은 이를 순환시키며 각각의 씨앗을 양생(養生)한다. 싹을 틔우며 생명의 여정을 시작하는 씨앗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잠재된 생명력으로서의 환상을 나에게 선사한다”고 말했다.
김선재 갤러리 도스 대표는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재 안에 응집된 아름다움과 무한한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예술로 승화시키는 과정 안에서 식물의 유기적 이미지를 좀 더 주관적이고 독창적인 해석으로 표현한다”며 “작업은 작가에게 있어 생성과 소멸 그리고 순환에 관한 탐구이자 동시에 그 관계성에서 발생하는 의문에 대해 성찰하는 과정과 같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