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과거부터 음식을 먹거나 차를 마실 때 사람들을 오순도순 한데 정답게 모여 앉게 했던 전통 소반. 이 소반이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롯데백화점이 본점 8층 이도(yido) 아뜰리에 매장에서 ‘소반, 다시 만나다’ 전시를 3월 2일까지 열었다. 아카데미, 갤러리, 카페 등으로 구성된 복합문화공간인 이도 아뜰리에는, 한국 전통 도자예술의 세계화를 목표로 문화예술 커리큘럼을 기획, 진행하는 동시에 도예가, 푸드스타일리스트 등 관련 전문인과 도자 그릇의 미래를 연구하고 제안해 왔다.
롯데백화점 식기홈데코 이지은 치프바이어는 “지난해 9월 본점 리빙관 오픈 때 문화와 쇼핑이 결합된 이도 아뜰리에 매장을 함께 오픈했다. 고객이 백화점이 방문할 때 공간이 주는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길 바랐다”며 “단순히 롯데백화점이 쇼핑 아이템만을 전시하며 판매하는 공간이 아닌, 더 많은 것을 보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앞서 이도 아뜰리에는 2017년부터 ‘이달의 기획전’을 통해 매번 새로운 주제로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도 이 일환으로, 주제는 소반이었다. 소반은 식기를 받치거나 음식을 먹을 때 사용하는 작은 상이다. 좌식 생활을 하는 한민족의 주거 환경에 맞춰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생활용품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민족 고유의 상인 이 소반이 모던하게 재해석됐다. 7명의 현대 공예 작가(김승환, 김현수, 박선영, 양웅걸, 이정훈, 최정호, 하지훈)가 전통적인 소반에 각자의 개성을 입혀 선보인 것. 이도 아뜰리에 측은 “내부 사업부가 기획전을 기획 및 총괄 진행했다. 디자인 및 공예 트렌드를 기반으로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따른 작가와 작품으로 기획안을 작성했다. 기획안을 내부 부서들과 공유해 리플릿 제작, 전시 일정 등을 주체적으로 확정 후 전시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백화점 7층 매장에 들어서자 마치 세련된 카페에 들어선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도 아뜰리에 매장엔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함께 마련돼 있었고, 이 가운데 전시가 열려 일반 매장이 아닌 흡사 문화 살롱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었다. 이도 아뜰리에 측은 “공예품이 갤러리에서만 선보이는 접근이 어려운 작품이 아니라, 생활에 같이 들어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취지에서 판매 기획전 느낌으로 매장에서 전시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김승환 작가는 연못 위 핀 것 같은 연꽃잎을 떠오르게 하는 독특한 디자인의 소반을 선보였다. 건축과를 졸업하고 설계사무소에서 실무경험을 쌓으며 공간과 가구에 관심을 가진 그는, 따뜻한 느낌을 주는 나무 소재에 매료돼 목공을 배웠다고 한다. 2018년 우드 앤 퍼니처스튜디오 ‘에이프릴스케이프’를 설립해 건축가이자 공예가, 가구 디자이너로서 작업을 이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나무를 통해 공간과 가구에 어떻게 삶을 담아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작업으로 보여줬다.
김현수 작가의 소반은 마치 전통 기와를 보는 듯한 무늬가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한국의 전통요소를 활용한 가구와 소품을 디자인, 제작해왔다. 특히 이번엔 전통가구의 형태와 한옥의 구조를 재해석해, 일상생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전통요소를 접할 수 있게 이끌었다.
일상 속에서 주로 영감을 얻어 작업하는 양웅걸 작가는, 우리 문화재 중 특히 소반과 사방탁자에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원하는 가구가 있으면 스케치한 뒤 여기에 주변 사물이 가진 구조, 선을 보고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통 소반이 가진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을 선보였다.
이정훈 작가의 소반은 마치 전통 갓과도 같은 모양을 지녀 눈길을 끌었다. 작품의 외형이 만들어내는 선과 리듬감에 주목해 온 그는, 이번 전시에서 양반의 멋스러운 갓을 모티브로 소반을 만들었다. 호두나무를 다듬어 8각 형태를 만들었고, 살짝 늘어진 장식에 도금을 해 한국 전통의 이미지를 활용한 소반을 완성했다.
7명의 현대 공예 작가, 백화점 내부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최정호 작가의 소반엔 현대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어갔다. 전통 소반의 나무가 주는 색감보다는 흰색, 연분홍색 등 세련된 느낌의 색을 입혔고, 사이즈도 더욱 축소시켰다. 고객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질문하고 연구한다는 그는, 전통 소반을 기존의 찻상의 쓰임에서 디저트나 한식, 양식에 맞는 형태와 높이, 크기를 고려해 현대적인 쓰임의 소반으로 재탄생시켰다.
마지막으로 하지훈 작가의 소반은 심플한 모양이 특징이었다. 예술과 디자인 그리고 가구와 사용자와의 관계에 대해 모색해 온 그는 불필요한 형태와 요소들을 제거하는 데 집중했다. 북유럽 스타일의 실용적이고 간결한 형태와 동양의 섬세하면서도 정교한 표현을 살리는 데 작업의 주안점을 뒀다.
이도 아뜰리에 측은 “도자와 나무의 결합으로 새롭게 디자인된 박선영 작가와 양웅걸 작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만들어진 소반, 옛 양반의 갓 모양을 모티브로 한 이정훈 작가의 소반, 유리와 나무의 결합이 돋보이는 김현수 작가의 소반 등 전통적 소반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현대 모습에 맞춰 재해석해 표현한 작품이 전시의 중심을 이뤘다”며 “특히 이도 아뜰리에에 새롭게 합류한 김현수 작가는 유리로 제작한 상판에 현대적인 분위기, 그 유리를 통해 보이는 문창살 모양의 다리에 전통미까지 함께 담았다”고 밝혔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이번 전시는 복고풍을 선호하는 소비층인 ‘레트로족(Retro+族)’과 문화적 만족감을 추구하는 소비층인 ‘아트슈머(Art+Consumer)’를 겨냥해 기획됐다. 이지은 치프바이어는 “지난해부터 안국역 어니언 카페나, 한옥 카페, 힙지로(힙한+을지로) 등 옛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뉴트로가 많은 인기를 끌었고, 그 관심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며 “소반전도 전통적인 아이템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전시해 이런 트렌드에 발맞춤과 동시에 고객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고자 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이도 아뜰리에 측은 “1인 가구가 늘어남에 따라 그를 위한 상품과 매장이 급증하는 추세다. 1인 가구는 가족을 구성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경향을 띤다. 이 가운데 쓰임이 있는 공예품을 많이 찾는 고객의 문의와 공예 트렌드에 맞춰 소반을 주제로 기획전을 진행했다”며 “단순히 전통 살림살이의 하나로써가 아닌, 작가들의 다양한 색으로 현대적으로 표현된 소반이 복고풍을 선호하는 레트로족과 아트슈머의 니즈(needs,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좌식생활을 하는 우리의 주거 환경에 맞춰 발달한 소반은 실용과 아름다움을 겸비했다. 소재와 구조는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한국의 미를 담았다. 시간이 흘러 생활 방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소반은 과거의 생활상을 오래도록 간직해 왔다. 그만큼 우리의 생활 디자인에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며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한, 상반된 두 가치를 잘 보여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흐름이 강한 오늘날의 레트로 경향에 부합한다는 점이 소반이 지닌 경쟁력”이라고 덧붙였다.
롯데백화점과 이도 아뜰리에가 이번 전시를 통해 추후 계속 강조해나가고 싶은 건 ‘예술의 일상화’다. 이도 아뜰리에 측은 “전시를 통해 작가들의 작품을 대중에게 노출하고, 고객은 공예품을 생활에서 가깝게 느끼는 데 의의를 뒀다. 전시 이후 많은 문의와 관심이 이어졌다”며 “앞으로도 재능 있는 작가들과의 협업을 위해 신규 작가 발굴에 힘쓸 계획이다. 보다 다양한 주제의 기획전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롯데백화점은 백화점 내 매장을 비롯해 롯데갤러리 등의 공간을 통해 백화점에서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힘써왔다. 이지은 치프바이어는 “소반 전시 이전 1월에는 나전·옻칠 작품을 전시했고, 소반 전시 이후에는 금속공예 작가들과 협업한 다른 전시들도 준비 중”이라며 “앞으로도 많은 작가들과 협업을 통해 다양한 작품들을 백화점 매장 내에 전시하면서 고객들이 따로 전시회나 갤러리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쉽게 문화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