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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웃이란 이름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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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72호 옥송이⁄ 2020.03.25 15:47:14

사진 = 고흥군, 연합뉴스 


비록 연말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영화 하나 언급하려 한다.

성탄절 영화의 대명사가 된 ‘나 홀로 집에’.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성탄절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 케빈의 이야기로, 온갖 꾀를 내 도둑들을 따돌리고 결국 가족 품에서 행복한 연말을 맞는 식이다. 도둑들을 골탕 먹이는 장면은 웃음과 통쾌함을 유발하지만, 결코 케빈 혼자 해낸 성과는 아니다. 영화의 프레임을 살짝만 옮기면 케빈의 조력자이자 친구들이 보인다.

1편의 ‘말리 할아버지’와 2편의 ‘비둘기 아줌마’는 통상적인 잣대로 보면 사회적 약자다. 말리는 독거노인, 비둘기 아줌마는 공원에 사는 홈리스(homeless)다. 처음에는 케빈 역시 편견을 갖고 있다. 말리에 대해서는 ‘살인마’ 일 것으로 추측하고, 비둘기 아줌마는 무서운 사람이라 판단한다. 그러나 비로소 외톨이가 된 케빈은 이들과 공감한다. 케빈은 아픔을 이해하는 청자가 되고, 말리와 비둘기 아줌마는 도둑들로부터 케빈을 구해주는 조력자가 된다. 겉모습에 대한 편견, 무관심이라는 미세먼지를 걷어내자 이웃은 연대할 수 있게 됐다.

최근 연대하는 이웃들이 눈에 띈다. 발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평소라면 철문을 사이에 두고 나 몰라라 했을 익명의 이웃들이 감염병이라는 이슈 앞에 동질감을 느끼면서 달라지고 있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서로 배려하고, 격리자를 응원하면서 잊고 지냈던 이웃이란 이름의 온기를 더해가고 있다. 사연은 다양하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 자가격리 처분을 받은 한 일가족은 격리 기간이 길어지자 지역 채팅방에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 막막함은 곧 따스함으로 뒤바뀌었다. 소식을 접한 주변 이웃들이 문 앞에 치킨과 맥주를 소리 없이 두고 가는가 하면 붕어빵 등의 간식을 문고리에 걸어두고 간 것. 확진자가 전염 최소화를 위해 이웃과의 대면을 줄인 사례도 있다. 자가격리 중이던 인천 연수구의 한 주민은 확진 판정을 받은 검사 당일, 이웃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대신 18층 계단을 오르내렸다.

전남 고흥군에서는 익명의 기부자가 지역 사회를 위해 현금을 남기고 사라졌다. 기부자는 편지를 통해 “도움만 받을 수 없다. 정부에서 받은 도움을 약간은 돌려드릴 수 있어 다행”이라며 “어려운 시국에 보태쓰길. 굳이 알려 하지 말라, 그것도 큰 실례”라고 밝혔다. 온기를 나누는 데는 나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천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는 11개의 빨간 돼지저금통이 전달됐다. 지역아동센터 소속 어린이들이 여행을 위해 모은 돈을 기부한 것. 이 외에도 울산에서는 이웃들을 위해 용돈을 모아 손 소독제를 만든 어린이들의 사연이 전해져 훈훈함을 더했다.
 

신한금융그룹은 ‘Hope Together 캠페인’의 첫 번째 사업으로 코로나 19 극복을 위해 힘쓰는 대구·경북지역 의료진을 위한 ‘생필품 KIT’ 및 소외계층 아동을 위한 ‘Meal Box’ 등 물품 50만 개를 전달했다. 사진 = 신한금융그룹
NH농협은행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감자 농가를 돕기 위해 농산물 나눔 행사를 전개했다. 사진 = NH농협은행 


손길을 내밀거나 도움을 받는 이웃의 범주는 지역 사회, 기관, 기업까지 확장되고 있다. 특히 금융권은 의료진 지원 외에 취약계층이나 농가 등 주변 이웃들에 대한 다각화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KB금융그룹은 대구·경북지역 취약계층을 위한 의약품 배송 서비스를 진행하며, 우리은행은 신용보증기금과 코로나19 피해기업 금융지원 협약을 체결했다. NH농협은행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감자 농가를 돕기 위해 농산물 나눔 행사를 전개했다. 신한금융은 소셜 기부(Social Donation) 프로젝트를 통해 총 50억 원 모금을 목표로 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영화 ‘나 홀로 집에2’에서 케빈은 사랑에 상처받고 홈리스가 된 비둘기 아줌마에게 말한다. “사랑의 감정은 작아져서 상자에 모셔둔 스케이터와 같아요. 쓰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는 거잖아요. 감정을 숨겨두면 내 스케이트처럼 되고 말 거에요.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잃는 건 없어요”라고 말한다. 전염병은 만연하지만, 이웃에 대한 숨김없는 온정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회적 거리는 멀어져도, 심리적 장력(張力)만큼은 더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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