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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잘 즐기고’ 산다 ②] 청승? 당당한 홀로 삶 주목하는 콘텐츠들

KT&G 상상마당 ‘나 혼자 산다’전, 두산아트센터 ‘1인용 식탁’ 연극 현장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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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78호 김금영⁄ 2020.06.02 15:23:29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화를 보고, 나 혼자 노래하고~” 바야흐로 혼자 사는 시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400만 명에 이르렀던 국내 1인 가구는 2018년 국내 584만 명으로 전체 가구의 29.3%를 차지하고 있으며, 올해 6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서 비혼 추세가 확산하는 가운데, 2047년엔 1인 가구 총 832만 명, 즉 전체 가구 중 37.3%에 달해 3가구 중 1가구는 1인 가구인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 1월 열렸던 정책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이제 더 이상 ‘나 혼자 산다’는 것은 특별하지 않다. 1인 가구가 우리 사회의 보통 가구인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짚기도 했다. 1인 가구가 보통의 문화가 된 시대에서 혼자의 삶은 더 이상 처량하지 않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즐기는’ 시대다. 두 번째로 혼자의 삶을 중심 콘텐츠로 다룬 전시, 공연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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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 상상마당, ‘나 혼자 산다’전,
1인 창작자의 삶에 다가가다

 

‘나 혼자 산다’전이 열리는 KT&G 상상마당 홍대 갤러리 전시장. 사진 = 김금영 기자

“혼자 일하면 가치관이 맞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일할 필요가 없고, 조직 내의 불합리한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 (고경원 작가)

“10년 전 발간됐던 원작 소설 속 ‘혼밥’이 2020년엔 트렌드가 됐다.” (신가은 PD)

 

이연옥 작가의 디자인 작업을 비롯해 이연옥, 문용 작가의 인터뷰 영상이 전시장에 설치된 모습. 사진 = 김금영 기자

최근 방문한 두 현장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말이다. 첫 번째 멘트는 KT&G 상상마당 홍대 갤러리에서 5월 15일 개막한 ‘나 혼자 산다’ 기획전, 그리고 두 번째 멘트는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5월 6~23일 열린 연극 ‘1인용 식탁’ 현장에서 각각 마주했다.

KT&G 상상마당과 두산아트센터가 ‘혼자의 삶’에 주목한 콘텐츠를 잇달아 내세웠다. 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자면 ‘나 혼자 산다’전은 기획부터 제작, 유통까지 혼자 맡아 자급적으로 해결하는 1인 창작자의 삶, ‘1인용 식탁’은 혼자 먹는 혼밥을 조명했다. 두 콘텐츠의 공통점은 혼자의 삶을 청승맞거나 가련하게 다루지 않고,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봤다는 것. 오히려 즐기면서도 치열하고, 열정적이기까지 하다.

 

문용 작가의 작업실이 전시장에 구현됐다. 사진 = 김금영 기자
문용 작가의 음악을 혼자서 감상할 수 있게 꾸려진 공간. 사진 = 김금영 기자

먼저 ‘나 혼자 산다’전에는 1인 출판사 야옹서가 대표 고경원, 영상작가 김소윤, 피아니스트 문용, 리소그래프(risograph, 석판화) 작가이자 독립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이연옥 작가가 참여했다. KT&G 상상마당은 지난 10여 년 동안 독립문화콘텐츠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다양한 전시를 기획해 선보여 왔다. 독립출판물, 인디레이블, 독립애니메이션을 한 자리에 선보인 ‘마이 컬렉션’전도 그 일환이다.

올해는 1인 창작자의 작품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갔다. KT&G 상상마당 시각예술팀의 김혜영 큐레이터는 “1인 가구와 비혼주의가 일상 이야기가 된 현 사회에서 혼자의 문화를 즐기는 트렌드와 더불어 1인 창작자도 더욱 증가하는 추세”라며 “단순 숫자만 늘어난 개념이 아니라, 혼자의 삶은 우리의 삶을 둘러싼 전반적인 생활양식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제목도 ‘나 혼자 산다’다. 이런 시대에서 1인 창작자의 삶을 다각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를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독립문화콘텐츠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무엇을 ‘혼자’ 하고 있나?” “구체적으로 현재, 무엇을 혼자 하고, 무엇을 같이 하나?”에 대한 대답을 화면에 그림을 그리듯 풀어낸 김소윤 작가의 작업. 사진 = 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의 특징은 각 작가의 작업실, 즉 삶의 일부를 전시장에 들여온 듯 재현했다는 것이다. 먼저 1인 디자인 스튜디오 ‘스튜디오 프링크’를 꾸리고 있는 이연옥은 본인의 작업실을 카페로도 공개하고 있다고 한다. 독특한 디자인 작업을 선보여 온 그는 이번 전시에서 혼자 작업하지만 많은 사람의 직-간접적 도움과 영향관계로 결과물을 완성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1인 창작자로 살아가며 타인과의 완전한 고립이 아닌, 때때로 더불어 살아가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

혼자서 작곡과 음반 제작, 공연까지 도맡아 온 피아니스트 문용은 자신이 실제 사용하는 물품들을 전시장에 들여놓았다. 전시장 한 구석에 설치된 피아노, 턴테이블, 의자, 작은 칠판 등은 그가 혼자만의 공간에서 어떤 영감을 받으며 작업을 이어갈지 상상하게끔 이끈다. 이 공간에서 중학생 시절부터 그의 삶에 영향을 준 그룹 퀸에 대한 애정을 살짝 고백하기도 한다.

 

1인 출판사 야옹서가를 운영하는 고경원은 고양이를 소재로 한 사진작업을 계속해 왔다. 사진 = 김금영 기자
고경원 작가의 전시 공간엔 야옹서가의 책을 읽을 수 있는 1인 독서 공간이 구석에 숨어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회화 외 애니메이션과 VR을 매체로 작업하며 순수 미술계와 애니메이션계 사이의 독립적 영역을 스스로 만들어 온 김소윤의 공간도 마련됐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들에게 공통 질문으로 “무엇을 ‘혼자’ 하고 있나?” “구체적으로 현재, 무엇을 혼자 하고, 무엇을 같이 하나?”가 주어졌는데, 이에 대한 답을 단순 글로 풀어내기보다 화면에 그림을 그리듯 풀어냈다. “저도 이렇게 살려고 이렇게 된 게 아니라…”로 시작되는 작가의 위트 있는 답변이 웃음을 자아낸다.

1인 출판사 야옹서가를 운영하는 고경원은 고양이를 소재로 한 사진작업을 계속해 왔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시대에서 반려묘 문화가 엿보이는 지점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1인 출판의 결과물과 전 세계에서 촬영한 길고양이 사진을 통해 혼자 일하지만, 늘 고양이와 함께해 온 작가의 삶을 조명한다.

 

‘혼자의 삶’에 대한 작가 4인의 생각을 담은 인쇄물이 전시장 말미에 마련됐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전시장을 돌아다니다보면 또 눈길을 끄는 공간이 있다. 문용 작가의 작업실이 재현된 공간의 옆쪽에 관람객이 혼자서 그의 음악을 감상해볼 수 있는 청음 공간이 마련돼 있다. 헤드폰을 끼는 순간 혼자서 문용의 음악 세계에 빠져들 수 있다. 고경원 작가의 공간엔 야옹서가의 책을 읽을 수 있는 1인 독서 공간이 구석에 숨어있다. 전시장 안에서 관람객 또한 자신 혼자만의 공간을 만끽할 수 있는 셈. 김혜영 큐레이터는 “작가들이 이야기하는 혼자의 일과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도록 돕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 끝에 이르러서는 혼자의 삶과 관련된 작가 4인의 멘트가 마련됐다. 앞서 언급됐던 고경원 작가의 인상 깊었던 멘트도 여기서 마주했다. 또 ‘혼자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작가들의 조언도 담겼다. 고경원 작가는 1인 출판사를 차리기 위한 구체적인 절차를 언급했고, 문용 작가는 “충분히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한 뒤 절대 후회 말고 뒤돌아보지 말라”고 격려했다. 김소윤 작가는 “휴식을 까먹을 수 있으니 꼭 반드시 쉬어야 한다”고 경험을 토대로 조언했고, 이연옥 작가는 “독립은 주체성을 가지고 자기 작업에 책임지는 마인드”라고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

 

참여 작가 4인은 ‘혼자’를 꿈꾸는 사람들에 대한 솔직한 조언을 이번 전시에서 전한다. 사진 = 김금영 기자

김혜영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를 기획하며 만난 작가 4인은 작업의 색깔은 다양했지만 혼자의 삶을 즐기는 가운데 매우 치열하게 산다는 공통점이 있었다”며 “1인 창작자로서 주어진 상황을 회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마주하며 놀 때는 실컷 즐기고, 일할 때는 치열할 정도의 열정을 보였다. 혼자 고민하고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익숙한 그들의 삶은 시대적 측면에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전시에 다양한 반응이 있었다. 특히 기존 주요 관람객 층 뿐 아니라 1인 가구 동호회 등 새로운 곳에서도 관심을 보였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개인의 삶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1인 창작자의 삶을 만나는 동안 관람객이 혼자의 시간을 음미하며, 자신의 일과 삶에서 진정 추구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찰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두산아트센터 연극 ‘1인용 식탁’,
“혼자 밥 먹는 게 뭐 어때서?”

 

연극 ‘1인용 식탁’은 혼자 앉아 밥을 먹는 인용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사진 = 김금영 기자

극장에 고기 굽는 냄새가 가득했다. 착각이 아니다. 눈앞에서 배우들이 실제 대패 삼겹살을 구워먹고 있었기 때문. 집에서 혼자 앉아 밥을 먹는 등장인물의 모습으로 시작한 공연은, 각자 등을 돌리고 혼자 고기를 구워먹는 배우 4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됐다.

두산인문극장의 일환으로 선보인 ‘1인용 식탁’은 윤고은의 동명 단편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2013년부터 시작된 두산인문극장은 ‘빅 히스토리: 빅뱅에서 빅데이터까지’, ‘불신시대’, ‘예외’, ‘모험’, ‘갈등’, ‘이타주의자’, ‘아파트’까지 매년 다른 주제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현상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던져 왔다. 올해는 ‘푸드’를 주제로 5~7월 사회학과 인문학, 과학 등 각 분야에서 강연자를 초청하는 강연 8회 및 공연 3편을 진행한다.

 

연극 ‘1인용 식탁’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은 마치 전투와도 같은 모습으로 연출된다. 사진 = 두산아트센터

왜 ‘혼밥’에 주목했을까? 두산아트센터 신가은 PD는 “두산인문극장은 매해 여러 키워드를 갖고 이야기해왔다. 키워드는 다양했지만 항상 중심을 이룬 건 ‘공존’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올해는 ‘푸드’가 구체적인 키워드다. 식문화가 어떻게 공존과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혼밥이라는 표현은 2015년부터 트렌드로 부상했다. 우리는 살기 위해 하루 세 끼 식사를 한다. 이 중요한 식사를 혼자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그 식사가 존중받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더 나아가 그냥 생존이 아닌 공존을 위한 식사는 무엇일지 고민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혼자 밥 먹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학원에서는 혼자 밥을 먹을 때 어떤 메뉴에 어떤 박자에 맞춰 먹어야 가장 자연스러운지 알려준다. 사진 = 두산아트센터

극은 직장생활 9개월 차, 갓 신입사원 딱지를 뗀 인용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회사에서 이유 없이 따돌림을 당하는 그는 점심시간이 고욕이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 결국엔 ‘혼자 밥 먹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학원에 등록하기까지 이른다. 이 학원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웃긴 듯 하지만 묘하게 현실성 있다. 가장 쉬운 1단계로 편의점, 패스트푸드점이 언급되고 나중엔 짜장면, 파스타, 한정식을 혼자 당당하게 눈치 보지 않고 먹는 박자까지 알려준다. 그리고 최종 관문인 ‘고깃집에서 고기 구워먹기’ 테스트가 인용을 기다린다.

극에서 주목되는 건 인용의 변화다. 삼각김밥을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던 인용은 내내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인다. 음식점에 가서도 눈치를 보며 원래 먹고 싶었던 메뉴를 시키지 못하고 도망치듯 나와 땀을 뻘뻘 흘리기까지 한다. 그에게 식사는 더 이상 그냥 음식 섭취가 아닌,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기 위한, 즉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쟁터가 된다.

 

극의 말미 각자의 자리에 앉아 혼밥을 즐기는 등장 인물들의 모습. 극장에서 실제로 고기구워 먹는 모습이 연출됐다. 사진 = 김금영 기자

하지만 인용은 변화한다. 학원에서 자신처럼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을 보며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완전 이들에게 의지하는 것보다는 점차 음식점에서 당당해지는 길을 걷는다. 혼자 밥을 먹는 게 외로워서 테스트에 합격하고도 자꾸만 학원을 찾았던 재수강생들도 극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고깃집에서 서로 마주하고도 같이 밥을 먹지 않고 각자 1인 테이블 자리를 꿰차 먹고 싶은 고기를 시켜서 구워먹는다. 하지만 그 모습이 극의 초반 때처럼 처량해 보이기보다는 편안하고 즐거우면서도 만족스러워 보인다.

이오진 작가는 “연극의 원작 소설은 혼밥이라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았던 10년 전 쓰였는데, 현재는 트렌드가 됐다”며 “하지만 단지 혼자 밥 먹는 차원에 그치는 게 아니라, 혼자 사는 삶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뤄야 시의성이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혼밥은 별난 문화가 아니지만, 아직도 유별난 시선은 따라다니며 때로는 차별 당하기도 한다. 배우들이 연습 중 혼자 고깃집을 가보기도 했는데 출입을 못한 적도 있다고 하더라”며 “혼자 하는 식사와 함께하는 식사가 동등하게 공존할 수 있을지, 우리는 진정한 공존을 어떻게 이야기해야할지 고민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이오진 작가, 이기쁨 연출, 두산아트센터 신가은 PD는 “혼자 먹는 밥을 통해 공존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이기쁨 연출은 “극을 통해 ‘혼자 먹는 게 좋다’ 또는 ‘누군가와 같이 먹어야 한다’ 식의 이분법적인 결론을 내고 싶진 않았다. 단지 혼자 밥을 먹는 그들의 사는 방식에 집중하고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누구나 개개인의 존재가 있고, 그들이 각각 밥을 먹는 방식과 리듬이 있다. 자신만의 리듬을 찾고, 그 리듬을 지키는 과정에서 때로는 타인과 불협화음이 있을 수도, 멋진 화음을 이룰 수도 있는 게 공존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즉 극은 혼자 밥을 먹고 살아가는 삶이 유별난 시선으로 쳐다볼 것이 아닌, 단지 다양한 일상 중 하나임을 말한다. 정답과 오답이 아닌, 그저 혼자의 삶을 즐겁게 때로는 치열하게 살아갈 뿐이다. 이오진 작가는 “혼자 밥 먹는 거 외롭거나 처량할 일 아니고 오히려 건강한 건데, 그래도 마스크 쓰고 나와 친구 만나고 서로 안부 물으며 식사하면 그것도 참 좋겠다. 당신이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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