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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작품 만지고, 안고, 귀 대보는 예술위 아르코미술관 ‘여기 닿은 노래’전

‘장애 예술·배리어 프리’ 뛰어넘는 진정한 소통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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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24.04.25 10:02:14

'여기 닿은 노래'전 전시장 일부 전경. 사진=김금영 기자

일반적인 전시장에서는 거리를 둬야 하는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 앉고, 귀를 대며, 손으로 쓰다듬고, 품에 끌어안는다. 멀리 떨어져서 단지 보는 데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 자체로 작품을 온전히 느끼는 게 자연스러운 이곳, 바로 ‘여기 닿은 노래’전 현장 풍경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정병국) 아르코미술관(관장 임근혜)이 올해 첫 전시로 ‘여기 닿은 노래’를 6월 30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는 광주, 부산, 서울문화재단이 협력해 예술가 및 단체 13명(팀)의 신작 포함 4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또한, 지난해 11월 아르코미술관이 광주, 부산, 서울문화재단 그리고 독일문화원과 캐나다 국립장애인문화예술센터와 협력해 열었던 ‘2023 무장애 국제예술 라운드테이블 무장애: 온 고잉(On Going)’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다.

라움콘의 '과정의 과정' 드로잉 작업 중 일부.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엔 광주, 부산,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장애예술 창작센터 출신 작가 7명(김은설, 김선환, 라움콘, 신수항, 신현채, 유다영, 전동민)을 포함해 다양한 지역의 장애인, 비장애인 예술가가 참여한다. 하지만 ‘장애예술’, ‘장애인 작가’, ‘배리어 프리(Barrier-Free)’ 등 일반적으로 장애인 작가가 참여하는 전시에 흔히 따라붙는 타이틀을 찾아볼 수 없다. 이 자체가 이미 장애를 보통과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이를 한쪽이 포용해야 한다는 식으로 또 다른 차별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임근혜 아르코미술관 관장은 “이번 전시는 ‘장애예술 전시’ 타이틀을 표방하지 않는다.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이분적인 태도를 지양하기 위해서다. 참여작가 중 장애인도 있는데, 장애예술인이 아닌 예술가로 소개한다”며 “또한 전시는 ‘장애는 다르기에 아우르고 포용해야 한다’는 태도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는 ‘다름’을 어떻게 보고, 듣고, 인식하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는 자리로 마련됐다”고 말했다.

전시장에 마련된 의자에는 자유롭게 앉을 수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또 전시에 없는 건 작품 설명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넘어 개개인의 삶의 속도 및 시간의 다양성을 어떻게 인지하고 인정할 것인지를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위해서다. 이렇듯 전시의 다층적인 맥락을 만들기 위해 장애인 작가뿐 아니라 그래픽 디자이너, 안무가 등 비장애인 작가들도 함께 전시에 참여했다. 작가들은 다양한 몸을 가진 이들과 함께하기 위한 전시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난 뛰고 싶다”, “나도 예쁜 게 좋아”

아키타입(이지원)은 최근 발표된 미술관·박물관 및 전시 시설의 접근성 가이드 라인과 매뉴얼 등의 자료들을 조사, 분석, 그리고 장애인 당사자 인터뷰까지 취합해 원형의 테이블 상판에 기록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1층 전시장에 들어서자 방대한 양의 드로잉이 눈에 띄었다. 이는 라움콘의 ‘과정의 과정’ 작업이다. 라움콘은 Q레이터(이기언)과 송지은 작가로 구성된 콜렉티브로, 이들은 뇌출혈을 겪은 Q레이터가 최소한의 돌봄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한 손 그릇, 한 손 장갑 등을 제작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을 제작하기까지의 돌봄과 협력의 과정을 아카이브 형식으로 담아냈다.

일부 드로잉엔 휠체어에 앉은 인물이 레이서가 된 듯한 모습에 ‘할리 데이비슨’ 글귀가 적혔고, ‘걷는 건이란…’, ‘난 뛰고 싶다. 무척이나 뛰고 싶다’ 등 작가의 솔직한 바람이 적혀 눈길을 끌었다. 그러면서도 ‘나도 예쁜 게 좋아’ 등 자신 또한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 이 세상을 보고, 느끼고, 살아가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오로민경의 '소리 뒤의 소리 #2'. 관객이 직접 손가락을 튕겨 칼림바를 연주하면 이에 상응하듯 주변 사물들이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고 빛을 뿜어내면서 음악의 형태를 만들어 낸다. 사진=김금영 기자

라움콘은 피네건 샤논 작가와 함께 앉을 수 있는 작품도 마련했다. 의자가 없는 전시장에서 관객은 서서 전시를 관람해야 하는데, 몸이 불편한 관객에게 이는 고단한 일이다. ‘만약 전시장이 너무 넓어서 관람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이 의자에 잠시 쉬어가도 좋다’ 등 라움콘의 멤버 Q레이터가 제안한 문구가 의자에 적혔고, 실제로 관객이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앉을 수 있도록 배치했다.

청각 장애가 있는 김은설 작가는 ‘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언어’를 선보였다. 청각이 상실된 농인 세 명이 화면에 등장하는데,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이 셋의 한가운데에 서서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런데 그 언어들은 마치 깨진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화면에 등장하는 세 명은 서로에게 집중하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를 통해 언어라는 것이 꼭 또박또박한 단어들이 오가는 것이 아닌, 서로 소통하는 일임을 느끼게 한다.

김은설의 영상 작업 '진동하는 몸의 대화'. 사진=김금영 기자

아키타입(이지원)은 최근 발표된 미술관·박물관 및 전시 시설의 접근성 가이드 라인과 매뉴얼 등의 자료들을 조사, 분석, 그리고 장애인 당사자 인터뷰까지 취합해 원형의 테이블 상판에 기록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장실 내부 전동휠체어가 회전할 수 있는 공간 확보’ 등 전시 시설에서 논의되길 바라는 것들에 대해 살핀다. 조사한 자료들에서 언급된 횟수가 많을수록 글씨는 흐리고, 적을수록 진하게 표기되는데 이를 통해 실상 중요한데 누락되고 배제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진정한 동행은 서로 다른 점 이해하고 발맞추는 것”

김채린의 '만져질 조각', '끌어안는 조각', '쓰다듬는 조각', '안아서 어르는 조각'은 작품명 그 자체로 만지고, 끌어안고, 쓰다듬을 수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2층 전시장에서는 특히 직접 만지고, 느껴보는 형태의 작품들이 가득하다. 오로민경의 ‘소리 뒤의 소리 #2’가 시작을 연다. 다양한 몸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공감각적 경험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작업으로, 관객이 직접 손가락을 튕겨 칼림바를 연주하면 이에 상응하듯 주변 사물들이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고 빛을 뿜어내면서 음악의 형태를 만들어 낸다.

1층에 이은 김은설의 또 다른 영상 작업 ‘진동하는 몸의 대화’도 만날 수 있는데, 영상 앞 설치된 의자에서 끊임없이 진동이 느껴진다. 이는 소리를 듣는 일이 귀 아닌 신체의 다른 부분을 통해, 그리고 열린 감각을 통해 가능할 수 있음을 관객과 공유하고자 하는 의도다. 작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내겐 진동이 소리와도 같다. 온몸에 귀가 달려있다는 감각으로 겉도는 언어를 캐치하는 작업”이라고 소개했다.

김채린의 ‘만져질 조각’, ‘끌어안는 조각’, ‘쓰다듬는 조각’, ‘안아서 어르는 조각’은 작품명 그 자체로 만지고, 끌어안고, 쓰다듬을 수 있다. 귀를 갖다대면 특정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조각을 만지는 행위를 통해 복합적인 감각을 구현해 온 그는 이번 전시에서도 관객이 작품과 맞닿은 순간의 소리, 빛, 온도 등을 통해 작품이 가진 물성과 특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개인이 가진 특정 지식이나 신체의 모습과는 무관하게, 각각이 지각하고 상상하는 방식에 따라 작품이 해설될 수 있고, 감각이 하나의 방향으로만 정의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지체장애와 발달장애가 있는 신수향·신현채 작가는 협업 작업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가는가?'. 사진=김금영 기자

지체장애와 발달장애가 있는 신수향·신현채 작가는 협업 작업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가는가?’를 내놓았다. 영상 작업에서는 이들이 서로의 보호자가 돼 장애물을 어떻게 넘을 수 있는지 실험하고, 사물을 해석하는 각자의 다른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면서 작품명처럼 한 인간으로서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가는지, 그리고 여기서 새로운 협력과 연대의 가능성을 꿈꾼다.

특히 신현채 작가의 고백이 인상적이었다. 현장에서 작업 과정을 밝힌 그는 “협업을 할 때는 대화, 소통이 중요한데 친구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실제로 난 장애인, 비장애인과도 어울리지 못하는 삶을 이어왔고, 공감해줄 친구가 없어 외로웠다”며 “많은 사람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내 그 사람들이 호기심에 처음엔 몇 마디 말을 걸지라도 또 나와 대화를 하기 위해 찾아오지 않을 것이란 걸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알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러던 중 신수항 작가와 프로젝트를 함께 하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와 같은 듯 달랐지만, 소통 단절로 인한 외로움은 같았다. 특히 병원에 오랜 시간 있을 때 이를 느꼈다고 하더라. 그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다”며 “신수항 작가는 내 독특한 정신세계를 이해해줬고, 나는 신수항 작가의 눈, 신수항 작가는 내 귀가 돼서 서로를 응원하는 ‘우리는 무엇을 위해 가는가’ 작품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업하며 동행의 새로운 의미를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넓게 보면 동행하는 파트너다. 다양성, 포용성을 위해 같이 소통하기 위해 달려나가고 있다”며 “진정한 동행은 함께 가는 것뿐 아니라 서로 다른 점을 이해, 공감하고 발맞춰 움직이는 것이라는 걸 자각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꿈꾸는베프가 참여한 '마음으로 읽는 타로' 현장. 사진=김금영 기자

이 밖에 단편 소설의 형식으로 쓴 글과 사진을 병치해 또 다른 서사를 확장하는 유다영의 작업, 자신이 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나 지인에게 정성스럽게 쓴 편지로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애정 어린 마음을 보여주는 한영현의 작업, 풍부한 색채를 사용해 풍경을 재해석해 관객과 소통하는 전동민의 ‘광주전경’, 사진 등의 매체로 접한 풍경들을 화면에 두드리고 새기며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김성환의 ‘무등산’, 각자의 속도와 시간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의 몸짓을 이해하고 살피며 새로운 군무를 만들어내는 고권금의 ‘나는 나를 기대합니다’ 등을 볼 수 있다.

아울러 아르코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직원 및 안내 요원을 대상으로 접근성 워크숍을 진행하고, 시설 안내물을 추가 배치했다. 전시 영상 작품에는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대표 서수연)가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자막 해설을 작성했다. 또한 발달장애허브 사부작, 제로셋 프로젝트, 꿈꾸는베프 등 장애인과 유의미한 협력을 이어온 단체들과의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장애인 작가들이 창작자인 동시에 미술관의 적극적인 사용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임근혜 관장은 “아르코미술관이 위치한 마로니에공원은 장애인 권리를 위한 목소리가 매일 울려퍼지는 곳으로, 아르코미술관은 이들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닿는 공간이기도 하다”며 “이번 전시가 지역재단들과 협력해 다양한 지역의 작가들을 소개하는 동시에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미술관이 지향하는 협업과 포용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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