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오⁄ 2025.03.14 17:35:08
한림대학교 도헌학술원(원장 송호근)이 14일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서울클럽에서 ‘한국 민주주의 구출하기: 적대 정치의 청산과 개헌 제안’을 주제로 제3회 도헌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한국 민주주의에 닥친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마련됐다.
개헌이란 헌법의 내용을 변경하는 것을 뜻한다. 지난 ‘1987년 제9차 개헌’(이하 ‘87체제’)을 마지막으로 38년 동안 헌법은 개정되지 않았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윤희성 일송학원 이사장, 최양희 한림대학교 총장, 송호근 한림대학교 도헌학술원장을 비롯해 강원택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정건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학계와 사회 원로 100여 명이 참석했다. 순서는 ▲개회 ▲주제 발제 ▲라운드테이블 ▲폐회 순으로 진행됐다.
먼저, 윤희성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오늘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적대적 정치구조를 정산하며, 건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이 심포지엄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이사장은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의 지혜와 통찰이 모이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양희 총장은 “오늘 이 자리가 한국 민주주의를 진일보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도헌학술원이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들을 깊이 있게 다루는 플랫폼이자 오피니언 리더들의 광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송호근 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누적된 정치 양극화라는 것이 정치학계의 공통된 진단”이라며 “이번 도헌학술심포지엄을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다 함께 지혜를 모아 정치 안정을 이루며 더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제도적 자제’ 없이는 적대 정치 지속… 정당 정치를 다당제로 바꾸기 위한 정치개혁 필요”
첫 주제발표는 강원택 교수가 ‘한국 대통령제’을 주제로 시작했다. 강 교수는 한국 대통령제의 구조적 한계와 여소야대 국면에서 의회의 입법을 통한 정책 주도로 발생하는 정치적 불안정을 진단했다. 또한, 마지막 개헌 시기인 87체제의 한 축인 국회와 야당의 ‘제도적 자제’가 사라졌다고 꼬집었다.
제도적 자제에 대해 강 교수는 “대통령과 여당의 국정 주도권을 인정하고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하더라도 그 권력의 행사가 ‘일정한 선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소야대(與小野大)가 지속된다면 이미 무너진 관행으로 야당은 제도적 자제를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이는 또다시 대통령과 국회 간의 극단적 힘겨루기로 이어져 정치적 파국이라는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어떤 당이 정권을 차지하더라도 똑같이 반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즉,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향후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적대 정치가 반복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강 교수는 “통치 구조 개혁과 함께 정당 정치를 다당제로 바꾸기 위한 정치개혁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한 정당이 단독으로 과반의석을 확보할 수 없다면 다수 의석을 만들어내기 위해 연합의 정치가 불가피하다”라며 “연합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정당 간 논의와 타협, 양보가 불가피할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정치가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물 중심 정치 지양해야… 양극화 완화 위한 다각도 접근 필요”
다음은 주제 발제는 서정건 교수가 ‘한국 의회-정당 정치의 양극화 분석과 해법’에 대해 발표했다. 서 교수는 미국을 예로 들었다. 미국이 대통령제 정치 시스템을 역사상 최초로 도입해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서 교수는 미국의 정치 양극화 현상 전반에 대해 비교 사례로 설명하며 우리나라 양극화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봤다.
서 교수는 “미국의 양극화가 낙태, 기후 위기, 총기 규제, 이민 규제, 인종 다양성 등 이슈별로 진행 중인 데 반해 한국의 양극화는 대통령 혹은 대통령 후보에 대한 극단적인 호불호가 주요 요인”이라며, “이런 상황은 정책 논쟁 및 경제보다는 유독 탄핵이나 거부권 등 인물 중심의 정치 양상으로 전개된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정치 양극화 완화를 위한 해법으로 ▲다수당 연합을 등장할 수 있게 하는 선거 주기 및 제도의 재검토 ▲상임위원회 중심의 국회 운영 본권화 및 의원 선출 방식 재편을 통한 중도파 확충 ▲본격적인 정책 계파 정치의 활성화를 통한 정당의 민주적 공고화 등이 필요하다고 봤다.
“정치제도 개혁 뒷받침하는 지방분권 강화해야”
마지막 주제 발제는 장영수 교수가 맡았다. 장 교수는 ‘87체제 헌법 개혁의 윤곽과 방향’이라는 주제로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독식 정치구조의 한계를 지적하고, 분권과 협치를 통한 개헌 방향을 제안했다.
장 교수는 “87체제에 따른 승자독식 정치구조의 한계로 인해 진영 갈등이 극심해졌고, 진영 갈등이 심해지면서 민주적 대화와 타협은 갈수록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다시금 승자독식의 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둡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이를 끊어내기 위해 “정치제도 개혁을 뒷받침하는 지방분권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지방의 위상 강화 ▲지방분권의 실질화를 위해 지역대표형 상원의 도입 ▲중앙과 지방의 권한과 역할의 재분배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 교수는 “국가는 국가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서로를 존중하고 조화로운 상호보완을 통해 상생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이를 전제로 한 지방분권의 강화는 국가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며, 국민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제 발제에 이어 송호근 도헌학술원장이 좌장을 맡아 라운드테이블이 진행됐다. 이날 라운드테이블에는 헌법학계의 원로인 성낙인 前 서울대학교 총장, 행정학계의 원로인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 정치학계 원로 최장집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가 참여했다.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주제발제에 대해 토론하고 다방면으로 개헌 과제를 제시했다. 이후 질의응답 시간에는 심포지업 참석자들로부터 심도 있고 날카로운 질의가 쏟아져 토론의 깊이가 한 층 더해졌다.
송호근 원장은 “현재 한국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데, 문제의 핵심은 오랫동안 누적된 정치 양극화일 것”이라며 “한국 민주주의의 회생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이번 심포지엄을 준비했고, 이번 도헌학술심포지엄이 다 함께 지혜를 모아 더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초석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