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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편사 담은 ‘체부’ 저자 나봉주, “디지털 시대 우표 수집의 의미”

내년 3편 발간…관련 기념관 개관도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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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25.12.30 10:12:07

'체부'를 집필한 나봉주 반도엠피에스 대표. 사진=김금영 기자

“우표는 단순한 종이가 아닙니다. 한 국가의 역사와 문화, 과학과 예술, 사회의 변화가 응축된 작은 교과서이자 세계로 통하는 매체죠. 우리는 이를 후대에 전해줄 책임이 있습니다.”

디지털 환경 속 편지에 손수 우표를 붙여 보내기보다는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바로 메시지를 보내는 게 익숙한 시대다. 이 가운데 나봉주 반도엠피에스 대표의 한 마디는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는 약 15년 동안 약 9~10억 원을 들여 역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닌 우표를 수집해왔다.

단지 개인적 수집 활동에 그치지 않았다. 이를 모아 한국 근·현대 우편사 징비 사료집 ‘체부(遞夫, 우편집배원)’ 시리즈를 집필, 사제를 들여 발간했다. 약 7년간의 자료 수집, 집필 과정 끝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첫 책을 2023년 내놓았고, 이어 지난해 8월 2편을 발간했다. 방대한 자료로 인해 첫 책 분량만 1300쪽, 두 번째 책은 이를 뛰어넘는 1800쪽에 달했다.

더 나아가 이 책을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을 비롯해 전국 공공 도서관, 고등학교, 대학교 등에 기증해왔다. 책의 내용을 오프라인 공간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체부기념관’ 개관도 계획 중이다.

나 대표를 삼성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체부의 첫 시작부터, 현재 준비하고 있는 3편에 관한 이야기까지 들어봤다. 사무실엔 체부를 비롯해 그간 수집해온 다양한 자료들이 가득했다.

한국 근·현대 우편사 징비 사료집 '체부'. 사진=김금영 기자

- 내년 8월 즈음 체부 3편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앞선 1, 2편은 어떤 내용이었나요?

“1편에서는 1884~1948년까지의 한국 근·현대사 및 우편사를 살필 수 있는 자료를 다뤘습니다. 대표적으로 139년 전 발행된 한국 최초 문위 우표, 1861년대 통신 수단인 우역과 마패, 1894년 청일전쟁 당시 체송된 엽서 등을 수록했습니다. 1편이 우편사 위주였다면, 2편은 근·현대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당시의 역사적 사료, 지도와 그림, 출판물까지 더 범위를 확장했습니다.

아울러 1편과 2편에 걸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의인들의 발자취에도 중요하게 접근했습니다. 먼저 서양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들은 본국에서의 모든 권리와 혜택을 포기하고, 당시 어두운 시대적 배경의 조선에 들어와 의료와 교육, 선교를 위해 삶을 바쳤습니다. 통신기관, 사법권, 언어마저 강탈당한 치욕적인 국치시기, 나라를 위해 스스로 일어선 의병과 독립 운동가들도 있었죠. 근대 4대 전쟁(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침략을 발판으로 일제가 일으킨 온갖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 기록도 수집해 실었습니다.”

- 3편은 무엇을 주로 다루나요?

“3편의 중심엔 ‘수입인지’가 있습니다. 그간 우표를 많이 수집하면서 솔직히 저도 수입인지의 매력을 잘 느끼지 못했는데, 우표만큼 귀한 기록입니다. 수입인지는 국가가 세입금을 징수할 때 정부가 발행, 관리하는 재정 제도입니다. 즉 국가가 국민에게 부과한 경제적 부담과 그 집행의 증거 자료죠. 이를 통해 과거 행정과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3편에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임시정부, 국치시기, 미군정기, 해방 후 정부가 발행한 수입인지를 다룹니다. 부록에선 북한에서 발행한 수입인지, 일제의 잔재 언어편을 다룹니다. 내년 광복절 이전 발간을 목표로 준비 중입니다”

- 자료 수집의 기준 및 경로는?

“어린 시절부터 체성회(현 한국우편사업지원단)에 가입해 우체국에서 신규로 발행하는 우표, 시트, 전지 정보를 얻어 왔습니다. 국내외 우표상, 해외 옥션 및 개인 소장가들을 통해서도 역사적 자료들을 수집해 왔고요.

이 가운데 지난해 10월 평소 거래해온 한 우표상이 체부 3편의 중심이기도 한 대한제국의 수입인지 기록들을 추천했습니다. 한 일본인 수집가의 소장물이라고 하더군요. 가격을 물으니 처음에 30만 달러를 불렀어요.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이라 망설였지만, 한국의 역사적 기록물이 일본에 있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꼭 환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여러 차례 협상을 통해 수집하게 됐습니다.”

'체부' 책에 대해 나봉주 반도엠피에스 대표가 소개하고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 3편 집필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면?

“무수한 기록들을 정리하는 것 또한 벅차지만, 이 기록들의 출처를 증빙하는 과정이 특히 힘겨웠습니다. 일제에 국가의 중추신경인 통신망을 강제로 빼앗기고, 우리가 만든 우표도 사용하지 못한 시기에 발행된 수입인지들은 기록 보존 상태가 부실하거든요. 보다 보편화된 우편에 비해 수입인지에 대한 관심도 적고요.

우리는 근대 이후 행정사에서 전쟁, 정권 교체, 군사정변으로 인해 역사적 기록이 단절된 경험을 해왔습니다. 단순 행정 실수가 아니라, 국가 권력과 재정 운영이 불투명하게 작동했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었죠. 수입인지 또한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후순위로 밀려 잘 보존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수입인지 발행 기록이 불완전하면, 당시 경제 규모나 행정 제도를 복원하는 연구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관련해 정부 기관에도 문의를 하고,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미군정청, 해방 후 1952년 부터 한국 정부 관보를 일일이 검색했습니다. 하지만 비전문가인 개인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자료에 접근 자체조차 쉽지 않을 때도 많았고요. 실체 자료는 존재하나, 관련 증빙 기록이 단절, 소멸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집필 과정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문가들이 봤을 때 어설프지 않을까’, ‘내가 괜한 일을 벌인 건 아닐까’ 망설여질 때도 있었지만, 제가 수집한 우표, 수입인지 등 ‘실체’의 강력한 힘을 믿고 끝까지 진행했습니다.

책을 만들면서 수입인지 등을 비롯해 이런 역사적 자료에 대한 관심이 국가적 차원에서 보다 높아져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3편에서 다루는 자료들 또한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연구 성과에 따라 후대에서 지속적으로 보완, 수정돼야 할 것입니다.”

- 그렇게 발간한 체부 시리즈를 전국의 도서관 등에 기증해 왔는데 3편의 계획은?

“체부 1편은 12만 원, 2편은 15만 원으로 출판사에서 교보문고, 예스24 등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도 판매하고 있지만, 애초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무상 기증을 통해 공공기관에 장서로 등록했고, 전국 대학 도서관 40여 곳을 비롯해 국·공립 도서관 60여 곳, 전국 중·고교 도서관 360여 곳, 우체국 90여 곳 등에 책을 기증했습니다. 해외 각국의 대사관 소속 문화원 등에도 전달했고요. 이런 기증이 쉬울 것 같지만 결코 만만치 않아요. 각 기관마다 지닌 기준을 충족해야 책을 보낼 수 있거든요. 3편 또한 책이 발간되면 여러 기관에 기증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자료를 공유할 계획입니다.”

- 체부에서 다룬 역사적 자료들을 실물로 만나볼 수 있는 기념관 개관도 준비 중인데 현재 진행 상황은?

“현재 서울 삼성동과 경기도 양평 사무실에 체부 관련 자료들을 갖추고 있는데요. 이중 양평에 체부기념관을 만들려 합니다. 간략한 우편사와 체부가 만들어진 과정을 소개하는 작은 도서관이자, 관내 초·중·고생들의 쉼터로 꾸리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방과 후 놀러와 우리나라 역사를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치 준비 중입니다.”

나봉주 반도엠피에스 대표는 "우표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한 국가의 역사와 문화, 과학과 예술, 사회의 변화가 응축된 작은 교과서"라고 강조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 사제를 들여 우표 등 자료를 수집하고, 책을 발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계기는?

“우표 수집은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습니다. 분야도 가리지 않았었죠. 처음 수집한 우표는 1960년대 발행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후 학업, 사회생활을 하며 한동안 수집에서 멀어졌다가, 사업이 안정기에 들어서자 다시금 관심을 기울이게 됐어요. 그렇게 수집한 자료들이 점차 쌓이면서 이를 한데 정리해보자는 취지에서 체부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록들을 다루면 다룰수록 학교에서 미처 배우지 못한 우리의 역사를 다시금 배우는 느낌이었습니다. 과거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후대에게 계승할 책임이 현재 우리에게 있다는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집필을 꾸준히 이어가다 보니 어느덧 3편을 준비하게 됐네요. 잊힌 기록들을 발굴하고 복원해 이 책을 만들면서 저 또한 애국심을 고취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등 동기 부여가 됐습니다.”

- 특히 구하기 어려웠던 우표가 있었다면?

“최근 발행된 우표 유통은 비교적 손쉽지만 조선 말기, 대한제국 시기의 우표사료들은 일본에 넘어가 있는 경우도 많아 특히 접근이 어렵습니다. 이런 자료들은 개인 소장가 품에서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는데요. 기약이 없고, 또 기회가 있다 하더라도 비용이 부담이 될 때가 많습니다. 이는 정부기관 또는 대기업들의 문화재단 등이 적극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 점점 편지와 우표가 사라지는 시대 속 우표를 수집하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하루 자고나면 바뀔 정도로 변화의 흐름이 빠르죠. 첨단 디지털 시대에 사람들이 자료를 접하는 방식 또한 많은 변화를 거치고 있습니다. 이에 맞춰 출판사 박영사 또한 체부 전자책을 사이트에 등록했어요. 3편에서 다루는 수입인지는 현 시대에선 전자문서용으로 많이 바뀌었고요. 이런 흐름은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지만, 실체가 지닌 힘 또한 무시해선 안 됩니다. 우리가 간직해야 하는 보물이죠.

특히 우표(수입인지)는 단순한 종이가 아닙니다. 우리의 역사와 민족의 혼이 살아 숨쉬는,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손끝을 거친 역사적 증거입니다. 이런 사료들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국가의 정체성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고 있는 미래 세대인 초·중·고등학생들에게도 손으로 직접 만지고 살피는 우표 수집을 권장하고 싶어요. 이는 교과서 밖의 살아있는 역사 교육이자 관찰력과 탐구심, 감성과 예술 창의성을 기르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현재 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우표는?

“당연히 우리나라 최초 우표인 문위우표입니다. 대한제국기 고종의 명으로 1884년 우정총국이 설립됨에 따라 한성과 제물포에 우체국이 개설되며 약 3~4일간 우편 업무가 개시됐습니다. 우정총국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우체국으로도 불리죠.

당시 우편 업무는 중앙에 우정총국을 두고 지방에 우체국을 두는 구조였는데요. 개혁파 관료들이 우정총국 개설 축하연을 계기로 일으킨 갑신정변이 실패하면서 우정총국은 폐쇄됐습니다. 당시 한성에서 제물포로 보내졌던 체송의 기록은 있으나, 그 실체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기록의 실체(체송된 편지 봉투)를 찾고 싶습니다.”

- 독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K팝, K푸드, K컬처 등이 위용을 떨치고 있는데, 그 뒤안길 관심이 적어 잊히고 있는 우리의 역사들, 또 이를 보여주는 숨은 자료들을 발굴, 계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코 우리의 역사와 의인들의 공적을 잊어선 안 됩니다. 이를 위해 앞으로도 잊히고 버려진 역사의 기록들을 발굴하고 찾아내 후세에 이어주는 마중물 역할을 하며 작게나마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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