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 더 찍거나 혹은 그게 델몬트 오렌지건 사채건 광고 한 편 더 해서 부귀영화를 누릴 생각하지 않고 멀리 칸까지 날아와 고국으로부터 욕먹고 있는 최민식의 행보는 용기일까, 만용일까.” - <오마이뉴스> 2006년 6월 4일자 기사 <최민식, 그가 왜 욕을 먹어야 하나>의 일부- 배우 최민식에 대한 논란은 해묵은 것이다. 한미 FTA 협상에 따른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영화인으로서, ‘운동’ 직전에 벌인 ‘광고 출연’의 행태가 문제되면서 벌어진 논란이다. 물론, 한국영화계와 연예인이라는 특권 집단(?)에 대한 누리꾼들의 원초적인 불만도 깊게 작용했다.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가장 민감했던 분야는 ‘농업’이었는데, 실제로 귤농사에 종사하는 분이 ‘오렌지 주스 광고 출연’에 대한 글을 작성한 적도 있다. 사채 광고 역시 민감한 뇌관이다. 그가 ‘최초’였기도 했지만, 지금껏 광고에 출연한 연예인 중 가장 유명했다는 이유도 작용한다. 앞서 언급한 <오마이뉴스> 기사는, 그 당시에 누리꾼들로부터 상당한 비난을 들었던 기사로 기억한다. 그가 하는 일 자체는 옳다. 할리우드의 자본력을 당해낼 수 없는 우리의 영화산업 구조상, 그 보호 장치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은 깊이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지나친 폐쇄도 문제지만, 섣부른 개방도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 외부의 압력에 대한 내성을 굳히는 일, 그것도 단계적으로 실천해야 할 일이다. 어쨌든, 배우 최민식은 열성적인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과 함께, 스크린에서는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됐다. ‘압력’이 있었는지, 아니면 ‘선택’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한국의 남성 배우들 중에 최고 수준의 인지도와 연기력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앞서 언급한 이유들 탓에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퇴색됐다는 마이너스 요소도 있다. ■ 최민식, 무엇이 문제인가? 엄밀히 말하면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다. 하지만 연예인들은 스스로 ‘공인’이라고 하며,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최민식에 대한 비난에 있어서도 ‘공인’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공인’이 어떻게 서민을 쥐어짜내는 ‘사채 광고’에 출연했으며, 그런 전적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밥그릇 지키는 일’을 도와달라고, 혹은 "한국문화를 지키도록 도와달라"고 나설 수 있냐는 것이다. 그들은 ‘공인’은 아니지만, ‘유명인’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도덕 수준과 의무가 요구되는 것이 암묵적인 약속이기도 하다. 최민식은 넓은 의미에서 바라 본 ‘정치적 관리’에 실패했다. 정치인들의 무능과 부패로 인해, ‘정치’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작용되는 면은 있지만,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정치’는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조직체를 다스리며 관리하는 것도 ‘정치’지만, 이미지 관리를 통한 좀 더 먼 이득까지 바라보는 일도 ‘정치’다. 이런 정치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다. 자신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좀 더 넓은 인간관계를 쌓아놓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일, 누구나 꿈꾸며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유명배우 최민식’이 인간의 기본적인 이미지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 가장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와 인기로 먹고 사는 그가, 그 기본을 어김으로써 지난날 쌓아온 모든 것들을 부정당하고 있는 것이다. 영악해질 필요까지는 없지만, 영리할 필요는 있다. 인간의 영리함이 가장 대표적으로 잘 드러날 때는 인간관계, 혹은 이미지 관리와 관련된 사례다. 그런 관리들이 긍정적으로 유지될 때, 타인으로부터 영리함을 인정받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열정적으로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는 면에서, 그리고 배우로서 그가 갖는 진지하고 열정적인 자세를 거론하며, 그를 향한 대중의 따가운 시선이 지나치며 부당하다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부당하다고 하기에는 어렵다. 유명인이 갖춰야 할 ‘기본 중에 기본’을 어겼을 때, 이 정도의 반응은 예상했어야 한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은 우리의 문화적 차원에서 보면 옳은 일이지만, 일부 한국영화의 질적 저하와 ‘밥그릇’이 맞물린 논리를 대중을 상대로 설득해야만 하는 일이다. 긍정적인 이미지 관리를 통한 정치적인 설득도 필요한 일이다. ‘공익 광고’에 출연해도 모자랄 판에, 연이율 66%나 되는 대출 광고에 출연했다. 논란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를 향한 대중의 비난은 자연스럽다. 제 아무리 국보급 연기력을 가졌다 해도, 그런 식의 어이없는 이미지 관리에 반응하지 않을 대중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글쓴이는 무작정 그를 비난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쨌든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가 안타깝게 느껴진 이유는 그렇듯 좌충우돌에 가까운 이미지 관리였다. 신중하고 영리한 사람일수록 안정적이고 일관적인 이미지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는 대출 광고에 출연했다가, 갑자기 ‘투사’가 된다. 이 양 극단의 이미지 사이에서 대중은 그를 통해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진짜라고 생각해야 할까?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 대출 광고 출연, 그것은 근시안적인 돈벌이 배우 김하늘은 대출 광고 출연 계약을 해지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여운계는 사채광고에 출연했는데, 드라마에서 거물급 사채업자로 출연해 논란이 됐다. 그리고 대중의 스타로 오랫동안 사랑받던 최수종 역시 대출 광고 출연을 계기로 “그동안 많이 벌었을 텐데, 돈독이 오른 거냐”는 누리꾼의 비난이 따라다닌다. 최수종의 사례도, 20년 가까이 쌓아놓은 이미지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정치적 관리 실패’로 봐야 한다. 김하늘의 계약 해지는 다소 뒤늦은 감은 있지만, 반가운 일이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봤을 때도 멋진 반전 시도다. 김하늘은 이제 서른이 된 배우다. 가야 할 앞길이 더 많은 배우로서, 정치적인 관리가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물론 김하늘 뿐만이 아니다. 대출 광고에 출연한 많은 연예인에게 적용해야 할 부분이다. 대출 회사 차원에서 제공하는 ‘플러스알파’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 연예인으로서의 경력을 신중하게 생각하는 연예인이라면, 더 큰 ‘플러스알파’를 노릴 것이다. 대출 광고 이야기는 아니지만, 배우 차인표는 할리우드의 007 시리즈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각본에서의 ‘한국 실정 왜곡’을 이유로 출연을 거부했다. 진심일 수도 있지만, 이미지 관리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 ‘거부’로 인해 할리우드로 진출할 기회는 상실했을지는 모르지만, 국내에서의 이미지는 확고하게 굳히는 계기가 됐다. 배우자 신애라와 더불어 활동하는 다양한 사회봉사활동도 긍정적인 이미지 형성에 도움이 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렇듯, 차인표는 이미지 관리, 혹은 정치적 관리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일부 연예인들은 정치적 관리의 실패를 넘어 무덤을 파고 있다. 무엇이 진정한 ‘플러스 알파’인지,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의미를 새삼 돌아보는 것이 좋겠다. -박형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