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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아직도 애국을 강요하나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 법제화될 전망
인권단체, “사상과 종교의 자유 침해하는 애국을 법으로 강요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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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2호 ⁄ 2007.07.02 13:12:45

“히틀러·히로히토·무솔리니·박정희… 애국을 강요했던 분들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신 분은 없었습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더 많은 희생을 하고 더 많은 생산을 해야 하는 도구로 취급했던 분들은 언제나 ‘애국’을 강요하셨다. 그렇게 사람들이 피땀 흘리면서 고생한 다음 이뤄낸 생산량 증가 등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는 위대한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건 좋은데, 이제 충분히 겪었으니 더 이상 ‘애국’이 인간을 얼마나 잔인하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드는지 실험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거부하는 전국 청소년 102명 선언문 가운데)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기성세대에게 애국조회와 국민의례란 이름으로 귀에 익은 국기에 대한 맹세. 군사정권 이후 대통령령과 국무총리령으로 강요되왔던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가 ‘대한민국 국기법’이란 이름으로 법제화될 전망이다. 이 법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때에는 선 채로 국기를 향하여 오른손을 펴서 왼편 가슴에 대고 국기를 주목하거나 거수경례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행정자치부도 4월 입법예고를 통해 국기법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했다. 7월 국무회의에 상정되면 결국 모든 국민은 ‘국기에 대한 존중과 애호 의무’를 갖고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에 따라야 할 법적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 누가 애국을 강요했나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의 역사는 곧 ‘일제시대’와 ‘군사독재 시절’의 역사이다. 일제시대 당시 일제는 애국조회 때 우리나라 아동들에게 황국신민서사 낭송을 강요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우리들은 인고단련하고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국기에 대한 맹세는 군사독재 정권에 부활한다. 먼저 충청남도 교육위원회는 산하 초·중·고교에 처음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시행했다. 당시 문구는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써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였다. 이어 1971년 영화관에 애국가 필름이 돌기 시작하고 당시 박정희 정권은 국기 사랑하기 운동을 펼쳤다. 정부가 나서 본격적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강요받은 것은 1972년. 당시 문교부(현 교육부)는 전국 각급 학교에 국기에 대한 맹세의 암송 교육을 지시했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4년에는 각종 공식 행사장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도록 의무화한 법령이 제정됐다. 이렇듯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는 과거 군사정권이 애국을 강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됐다. 지난 25년동안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는 이미 대통령령이나 국무총리 지침에 따라 학교와 공공기관에서 강요되어 온 것이다. 1972년 7월 전남 광양의 교사 양영례씨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해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73년 해남 신죽교회 이 아무개 전도사 역시 국기 모독 혐의로 구속됐다. 하지만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거부해 피해를 보는 사례는 21세기 대한민국 땅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국기법과 국기법시행령은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거부할 경우 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하지만 형법이나 국가공무원법 등 다른 법과 연계해 처벌하거나 학교 재량권을 명분으로 퇴학·불합격하는 사례들이 존재해왔다. ■ 법이 없던 시절에도 무조건적 애국을 거부한 양심은 구속됐었다 박준규 군은 지난 2003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겠다’고 밝혀 고등학교 입학을 거부당했고, 이용석 교사(부천 상동고)는 2006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가공무원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청소년 인권단체들은 “사건이 표면화되지 않더라도 각급 학교 현장에서는 지금도 사상·양심·종교의 자유를 침해받는다고 생각하면서도 불이익이 두려워 마지못해 애국조회와 국민의례를 따를 수 밖에 없는 청소년들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에 한 축을 이루면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통한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소외와 차별이라는 문제도 새롭게 생긴다. 우삼열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국장은 “이주노동자 42만 명, 이주인 100만 명은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며 이주인 2세 자녀가 150만 명이 넘을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시대에 삶의 방식이 존중되려면 전체주의와 군사주의의 잔재가 사라져야 한다”며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강요받는 이주인 자녀들이 느끼게 될 심정을 생각해보라”고 꼬집었다. ■ 문안만 바꿀 일이 아니다 행정자치부는 5월 30일 “‘국기에 대한 맹세’ 문안을 국민 의견을 모아 바꾸기로 했다”며 3가지 수정 문안을 제시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작성된 현행 맹세 문안이 지나치게 국가주의적이라는 지적을 수용한 것. 행자부가 제시한 예시 문안은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서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영광을 위하여 국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사랑과 자유와 평등의 이름으로 국민의 의무를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써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등이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애국자이기 이전에 하나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거부하거나 거부까진 아니더라고 애국을 조금 생각해보고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오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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