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IT맨, 그가 사표를 낸 이유

[인터뷰] “신입개발자 10명중 8명은 전업하는 게 IT 강국의 현실이다”

  •  

cnbnews 제24호 ⁄ 2007.07.02 14:18:35

미디어다음의 블로거 기자인 김욱 기자에게서 날아온 한 통의 이메일 안에는 우리가 흔히 ‘고소득 전문직’으로만 알고 있는 IT 분야 종사자의 애환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김 기자가 그간 미디어다음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진행한 ‘야근 이슈’에 대한 IT 분야 종사자들의 비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김 기자는 “노동환경이 가장 열악한 분야 중 하나가 IT 분야인데 그래서 야근기사를 쓸 때마다 IT 종사자분들의 하소연 댓글이 참 많았다”며 “집에는 ‘옷 갈아입으러 갔다 온다’고 하고 ‘침식을 회사에서 하고 있다’는 등 정말 야근에서는 그 어느 업종도 넘보지 못할 최악의 환경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급기야 얼마 전에는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IT 종사자의 메일 한 통을 받았다”며 “IT 분야에서 7년간 일했는데, 이 절망적인 노동환경이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안보여 인간답게 살고 싶어 나왔다고 한다”고 자신이 받은 메일의 내용을 소개했다. 김 기자에 따르면, 그 메일 안에는 “그가 이 세상을 향해 쓴 자신의 ‘편지’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김 기자는 “그 편지는 이 사회의 노동환경에 절망한 한 노동자의 비명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다음은 김욱 기자가 보내온 IT맨과의 인터뷰 전문. ■ 언제쯤 직장을 그만 두셨습니까 부인께서 걱정을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올해 5월 중순에 그만두었습니다. 아내는 결혼 후 가장 잘한 일이라고 좋아했습니다. 아내도 힘들어 짜증 부리는 절 받아주기 지쳤고, 프로젝트만 하면 밤샘하고, 며칠에 한번 들어오는 것에 지쳤더군요. 이 기회에 건강을 되찾으라고도 합니다. 두 달 걸리는 프로젝트를 3주만에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이런 경우엔 개발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제 프로그램 외에 그 담당자 인사고과용으로 Demo만 돌릴 다른 프로그램도 같이 개발하기도 하죠.” ■ 일을 그만두시고 애기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을 텐데, 어떻습니까 애기가 달라진 점은 “15개월 된 아들이 있는데, 그동안 몇 번 황당한 경험 했습니다. 7~8개월쯤인가 일주일 만에 집에 들어갔더니 아들이 낯을 가립디다. 돌이 지났을 때도 며 칠만에 집에 가고, 퇴근 시간이 매번 12시를 넘기다시피 하니 아들이 아빠를 어색해 하더군요. 그만두고 난 후 요즘은 항상 안고 밥 먹고 샤워도 같이 하며 놀아주니까 너무 좋아합니다. 몇 주간 그렇게 하니까 이젠 밥 먹을 때는 저한테 와서 먼저 안기기도 합니다. 아내는 집안일도 도와주고 주일에 한번은 혼자 외출도 하고 하니 좋아하고요.” ■ 앞으로 어떤 일을 구상하고 계십니까 “여러 가지 많았는데 3가지로 줄였습니다. 첫 번째, IT를 계속 한다면 무조건 이민을 갈 겁니다. 두 번째, 그전부터 관심 있던 자산관리·금융 쪽으로 공부를 해서 전직을 할 생각도 있습니다. 세 번째, 맘 맞는 회사동료들과 창업도 얘기하고 있습니다. 한두 달 쉬면서 충분히 알아보고 결정을 하려고 합니다.” ■ 동료 중에 비슷한 이유로 직장을 그만 두신 분들이 많습니까? 그만 두신 분들은 대개 어떤 식으로 자리를 잡으십니까 “비슷한 이유로 그만두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빵집을 차리거나 장사를 하죠. 예전 대학동창도 비슷한 이유로 그만두고 옷장사를 하고 있는데, 일요일도 없이 힘들긴 하지만 밤을 새서 하더라도 자기 수입이니까 할 맛 난다고 하네요. 음식점 쇼핑몰로 전업한 사람들도 그렇게 얘길합니다.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IT만 하던 사람들은 이것 외엔 다른 건 전혀 생각을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리고 며칠 뒤에 같이 근무하던 친한 동료들도 몇 명 같은 이유로 퇴사한다고 합니다.” ■ 큰 대기업의 뛰어난 기술자들이 왜 외국으로 기술을 빼돌릴까요? 그들이 왜 부모형제 있는 자라온 이 땅을 떠나서 다른 나라로 갈까요? ‘사직서를 쓴 이유’의 내용을 보니, 야근의 적잖은 부분이 막 덤비는 것, 그러니까 사전기획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앞서 해외에 계신 교포분들 얘기도 선진국은 업무를 서두르면 실수가 벌어졌을 때 개선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 생각하기 때문에 철저히 기획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해주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처음 IT를 시작한 8년 전과 비교해 나아진 게 없습니다. 어디까지 구현한다는 범위와 기간 및 인력 배분에 거짓이 많습니다. 폰제조로 미국 출장 갔는데, 국내최고의 대기업이라는 회사가 기능 구현 및 일정에 대한 기획서도 없었습니다. 국내 최일류 대기업마저 그렇게 허술하리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마지막 근무했던 업체의 경우 사전 기획에 대해서 신경을 쓰긴 하지만, Confirm!!해서 만드는 기능조차도 변경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래도 납품기한은 그대로입니다. 기간 또한 항상 어처구니없게 짧습니다. 예를 들어 9to6, working day 기준 두 달 걸릴 프로젝트를 그냥 한 달로 잡습니다. 기획단계에서 야근과, 주말 출근이 들어가는 거죠. ‘갑’쪽에서 너무 IT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심할 때는 갑의 담당자가 자기 인사고과 반영하기 위해서 두 달 걸리는 프로젝트를 3주 만에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이런 경우엔 개발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제 프로그램 외에 그 담당자 인사고과용으로 demo만 돌릴 다른 프로그램도 같이 개발하기도 하죠. 인력도 참여 인원은 10명이라고 하곤 실제 투입된 인원은 4명인 경우가 비일비재 합니다. 더욱이 그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프로젝트와 양다리 걸치는 일도 많습니다. 결국 불가능한 기간과 없는 인력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니 비용이 더 들어가게 됩니다. 정상적인 설계가 되어야 하는데 나중엔 그냥 짜깁기나 땜질식 개발이 됩니다. A버그를 해결하게 되면 B버그가 생기게 되죠. A버그를 잡을 때 발생될 side effect를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나중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엔 개발자도 그냥 될 데로 되라 식이 됩니다. 이러니 개발기간은 늘어지게 되고 비용은 증가하죠. 외국회사에서 근무를 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아는 개발자를 통해서 들은 바로는, 일정자체가 근무시간을 기준으로 하고, 세부적인 기능까지 구현일정을 잡아 정확한 인력을 투입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기획단계가 개발기간 중 가장 길다고 합니다. 할당 기간을 보면 기획>구현>검증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구현>검증>기획이라는 기형적인 형태가 됩니다. 노동 강도가 0~10까지라면 외국은 4로 쭉 가다가 개발 끝 무렵이나 중간 큰 문제가 발견됐을 때만 잠깐 7정도로 올라간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한국은 제가 경험해본 거의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끝가지 항상 7 이상이었습니다.” ■ 경영진이나 간부들은 이런 열악한 IT 근무환경에서 일하는 직원에 대해 다독임이라도 있는가요 “제가 겪은 경영진의 마인드는 ‘개발자 또 구하면 돼지 뭐!’ 이런 식입니다. 몇 주씩 연속으로 날 밤 새면서 개발하고 있는데 고작 탕비실에 강장제 한통 갖다 놓는 게 끝이더군요. 새벽 4시에 근처 여관으로 퇴근을 하면 다시 출근을 하더라도 오후 4시 정도는 쉬어야 하는데, 그거 안 봐줍니다. 그냥 정상 출근입니다. 회사의 생각은 ‘우리가 여관비 대주고 근처에서 재워줬지 않았냐?’ 이런 식입니다. 초강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회사는 얘기 합니다. ‘프로젝트 끝나고 refresh휴가 줄께.’ 두 달을 매일 날 밤 새기와 주말 풀출근을 하고 겨우 3일 받죠. 그러면 회사는 ‘refresh휴가 가고 좋겠네’ 합니다. 실질적으로 직원들이 느낄 수 있는 보상은 거의 없습니다. 있다 하더라도 몇 날 며칠을 날 밤 새며 근무한 거에 비하면 새발에 피죠. 회사에서 개발자를 보는 인식은 같이 가야할 팀원, 서로서로 윈-윈하는 관계가 아닌 그냥 싸게 사용하고 버릴 도구 정도입니다.” ■ 이 살인적인 야근 등의 노동환경을 방치하는 이 사회에 한 마디 해주십시오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문화가 외국처럼 변화할 기미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IT가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먹거리라고 떠드는 국가에서조차 개발자들의 처우 개선이나 노동법의 적용엔 인색하거나 아예 무시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야도 비슷하지만 폰분야는 정말 혹독하기로 유명합니다. 전 세계 다른 기업들의 체계 잡힌 기획에 무조건 노동력 투입으로 따라가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점점 한국의 사람들도 돈보다는 삶의 질을 따지게 되는데 지금 고등학교·중학교·대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 저렇게 일을 할까요? 제 주위만 봐도 IT학과를 나온 사람 중 개발자를 1~2년하고 포기한 사람이 80% 이상입니다. 요즘 신입개발자 10명중 8명은 전업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큰 대기업의 뛰어난 기술자들이 왜 외국으로 기술을 빼돌릴까요? 그들이 왜 부모형제 있는 자라온 이 땅을 떠나서 다른 나라로 갈까요? 신문에선 연일 ‘매국노’니 ‘밤새서 열심히 개발해야할 개발자들의 정신력이 없어졌다’ 라니 떠드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이게 이 나라 한계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힘든 군대까지 갔다 온 제 애국심은 이제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전 개발자라는 일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은 이일을 지속할 생각이 없습니다. 정말 내일 아침 나라에 무슨 혁명이라도 나서 개발자들의 처우가 확 개선되어 다시 이 땅에서 개발자란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유성호 기자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