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칼럼] 아담한 집 한 채 지어줄 대통령

그 후보자의 눈에 어리는 눈물을 보고 싶다

  •  

cnbnews 제45호 ⁄ 2007.12.03 14:43:05

『들소들이 뛰고/ 노루 사슴이 노는/ 그곳에 나의 집 지어주/ 걱정소리 하나도 들리잖는 저 언덕에/ 아담한 나의 집 지어주』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그의 집 근처에 몰려든 가난한 시민들이 합창했다는 소박한 내용이 담긴 민요조의 노래다. 이때 베란다에 나선 루스벨트의 눈에는 눈물이 어리었고 양 팔을 높이 쳐들어 시민들의 노래에 화답을 표했다. 그는 다른 출마자처럼 거창한 공약으로 으시대지 않고 민의를 수렴하는 자세로 일관한 끝에 1933년 이래 연속 4회나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뉴 딜(New Deal) 정책을 수행하여 대공황(大恐慌)을 극복했고, 중남미 여러나라에는 선린정책을 취했고, 연합국에 경제원조를 제공하는 등 대외적으로도 고립주의를 탈피했으며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대서양헌장을 선언하여 유엔의 기초를 세웠다. 「이스라엘의 국부( 國父)」라는 존칭을 받은 벤구리온은 『말은 중요하지 않다. 국가는 말로 건설되는 것이 아니다. 실행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미 2천 년 세월을 잃었다. 이제는 더 잃을 시간이 없다』라며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공화국 독립을 선언하고 노동당을 창건하여 1차대전 당시 유대인 부대를 조직하여 전선에서 뛰었다. 말이나 이론으로 나라 일이 되는것은 절대 아니다. 실력과 실천에 의해서 국가는 건설되고 발전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2천 년이라는 세월을 잃어버렸었다. 오늘날 개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라는 자본」이다. 우리에게 공리공론이나 시행착오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우리나라처럼 대선이나 총선 때면 공약(空約)과 공염불이 많아가지고서는 아무 일도 될 수 없다. 무실력행(務室力行)만이 사업의 성취를 확약(確約)한다. 참여 정부가 출범할 때 언론에 대못질을 하겠다고 공약했던가, 경제정책을 잘못해 실업자 양산을 하겠다고 약속했던가. 그런것은 아니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 또는 위약(違約)으로 둔갑한 것이다. 위약이라는 병(病)은 그 중독성이 무섭도록 지독한 것이다. 국제언론인협회(IPI)가 이번에 네번 째로 노무현 대통령에게 언론탄압중지 서한을 보냈다. 『한국정부가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이라며 추진중인 기자실 폐쇄 등의 조치는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한국을 언론탄압 감시국 명단에 올리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으나 한국 대선후보들이 모두 현정부의 「언론 대못질」조치를 철회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대선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정부는 끄떡도 않고 않고 우이독경(牛耳讀經)인냥 하고 있다. 20일도 채 못남긴 이번의 대선후보들의 공약이 너무 앞질러 떠들어대는 인상이 짙다. 신문 광고난에 후보자의 얼굴을 커다랗게 내어놓고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이라고 이름 밑에 사진 설명을 달고 있기도 하다. 벌써 대통령에 당선이라도 된 것처럼 과장하는 인상이다.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이 될』이면 누가 무어라고 꼬집을 것인가. 『싱가포르 리콴유처럼 국가를 바꿔놓고 싶다』라는 「희망사항」은 보는이의 눈살을 찌푸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국부 벤구리온의 말처럼 말은 중요하지 않다. 국가는 말로 건설되는 것이 아니다. 실행이 중요하다. 지금도 착한 민초(民草)들은 걱정 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는 저 언덕에 아담한 나의 집을 지어줄 대통령을 기다릴 것이다. 이런 소박한 원(願)을 듣는 대선 출마자의 눈에서 번쩍이는 이슬을 보고싶어 한다. <박충식 주필>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