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서울 중심가의 어느 커피숍. 이곳에서 젊은이들이 커피 한잔에 얼어붙은 몸을 녹이며 즐거운 만담을 나누고 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DMB 휴대폰, 터치스크린 PMP, 회전식 LCD 노트북, 그리고 그 옆에 아버지가 물려준 것처럼 보이는 무겁고 오래된 카메라…. 만약 당신이라면, 무겁고 오래된 카메라 대신 작고 가벼운 디지털 카메라가 자리를 잡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디지털 제품 옆 한 곳에 오래된 물건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일은 결코 어색하지 않은 풍경이다. ■ 젊은 층에 형성된 문화 아이콘 ‘감성’ 요즘 10·20대 젊은 층 사이에서 ‘감성’이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새로운 문화는 우리들에게 눈과 귀를 기울이게 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유행으로 퍼져나간다. 하지만 왜 오래되고 낡은 물건들이 10·20대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중·장년층은 이 물건들을 직접 사용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지만, 이것을 직접 사용하지 않은 젊은 층의 이야기는 다르다. 레코드 판, 채널을 다이얼식으로 돌리는 TV, 클레식 카메라 등, 어렸을 적부터 컴퓨터라는 도구와 디지털 이라는 패러다임에 지배되어온 젊은 층들 중에 이것들을 말로만 들었을 뿐이지 사용을 해본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고, 이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였다. 서울의 종로에 위치한 어느 에스프레소 전문점에는 항상 사람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복고풍으로 인테리어를 한 이 카페는 옛 추억에 잠기고 싶은 중·장년층부터 도심 속 철제 의자와 어딜 가든 흘러나오는 인기곡에 식상한 젊은 층들까지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이곳에 처음 온 손님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지금은 보기 힘든 축음기, 20년 전만 해도 레코드 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LP 판, 브라운관이 불룩 나온 흑백 TV, 큰 스피커가 달려 있는 촌스럽게 생긴 라디오 등 수많은 골동품과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인테리어, 테이블과 탁자는 이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렇게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고,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은 푹신한 쿠션 의자 대신 딱딱한 의자에 오래된 음악이 흘러나오고 무언지 모를 감성에 젖어들고 싶은 마음에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 골동품 하면 인사동 거리 또 옛것이라면 서울의 인사동을 빼 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최대의 고미술품 상점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지금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 때부터 고미술품이 활발하게 거래되어온 곳이다. 인사동 거리는 외국인 반, 한국인 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국·내외적으로 우리나라 관광명소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이다. 이곳에서 만난 김태수(디자이너·28세) 씨는 “인사동을 걷다 보면 많은 생각에 잠기죠.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로 승부를 하지만, 때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생각을 할 경우가 있어요”라고 했다. 이규봉(운송업·31세) 씨는 “갤러리 구경도 하고 골동품 구경도 하고….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낼 수 있어 돈이 없던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이었던 지금의 아내하고 자주 데이트도 했었죠”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15년 넘게 태극기 장사를 한 임모 씨의 말은 달랐다. 그는 “인사동은 우리나라 전통을 보여주는 거리인데 요즘 급격하게 외국 커피숍 및 매장들이 늘고 있어요. 절대 인사동과는 어울리지 않죠”라며 점차 한국 전통 이미지와 멀어져 가는 인사동 거리의 안타까움을 말했다. 서구 문명이 들어오면서 우리나라 전통이 설 자리가 없어졌고, 우리나라 민속과 전통문화를 보려면 특정지역에 가야 볼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아쉬운 점이다. 특히 남산 한옥 마을은 서울에서 우리나라 전통가옥인 한옥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곳이어서 더욱 큰 아쉬움을 말한다. 그렇지만 지자체의 노력과 이곳을 찾는 시민들의 도움으로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전통과 문화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한다. ■ ‘감성’도 마케팅 수단 소비자들의 감성, 그리고 감성이 좋아하는 제품의 정보를 통해 호의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감성 마케팅’이 기업들 사이에서 또 다른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감성 마케팅’은 사람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오감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소비자들을 행동으로 이끌어내는 장점이 있다. 특히, 복고 열풍이 불고 있는 요즘 시각적으로 클래식한 분위기의 제품을 디자인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시선을 주목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외형적인 복고풍은 단기간에 유행이 사라진다는 단점이 있다. 클래식함은 언제 수그러들지 모르고, 또 앞으로 어떠한 유행이 불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건 전통과 문화는 유행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역사이자 생활방식이고, 우리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보물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옛것은 더 이상 옛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옛것은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고, 추억을 되살리게 하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옆을 항상 지켜준다. <박현준 기자>
■ 디지털 기기와 클래식의 조화 이처럼 오래된 것을 지키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21C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디지털 기기들의 복고적인 변신이 눈에 띈다. S사와 E사의 디지털 카메라…. S사가 지난 2006년부터 판매해 온 디지털 카메라의 외형은 남달랐다. 슬림 타입에 유행하는 블랙 색상이지만, 어딘가 모를 ‘클래식풍’이 난다. 또 E사의 디지털 카메라는 기계식 카메라처럼 무겁고 크지만, S사와 같이 복고적인 느낌을 주고, 외형적으로 클래식 카메라와 닮았다. 이것은 외형은 복고적, 기능은 편리함을 추구하는 요즘 소비자들의 성향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다. 특히 E사의 디지털 카메라는 예전부터 특정 마니아층을 형성, 단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고제품이라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S사의 디지털 카메라는 출시된 지 2년이 넘었지만 소비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고, S사도 후속 모델의 개발에 힘쓰고 있다. 그리고 A사의 진공관 스피커, 옛날 LP 판을 들을 수 있는 턴테이블처럼 생긴 CD 플레이어 등이 있으며, 이 밖에 클래식 느낌의 토스터기, 자명종 시계, 홈시어터 등 옛것을 회상하게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