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하고 어려울 것만 같은 ‘금융’과 자유롭고 상상력이 풍부한 ‘예술’이 하나로 뭉쳤다. 물론 그 핵심은 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깐이나마 평안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분야를 택한다면 주저 없이 예술을 꼽을 수 있다. 일반인들은 영화·연극·미술·음악·드라마 등을 보며 재미와 공감, 그리고 여유를 느낄 수 있어 열광하고 있다. 포털·언론·방송 등에서도 예능 뉴스가 경제 뉴스보다 인기가 훨씬 높다는 점만 봐도 이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반면, 경제, 그 중에서 금융 분야는 딱딱하기만 하다. 숫자가 많아 어렵고, 다만 내가 쉽게 은행에서 입·출금 하거나, 적금 혹은 금융 신상품에 가입할 때 일시적인 관심만 가질 뿐이다. 어쩌면 일반인 기준으로 예술과 금융은 극과 극으로 느껴지는 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들이 뭉쳤다. 금융의 돈, 그리고 예술인들의 작품을 하나로 묶어 금융과 아트가 경제적 가치로 승화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상품은 미술. 특히 최근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미술작품을 대체 투자자산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시나브로 늘어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크고 작은 경매회사들이 해마다 늘어 가고 있으며 유명 미술품 경매회사의 낙찰결과에 대한 정보라든가 작품가격에 대한 뉴스를 접하게 되는 것도 일상적인 일이 됐다. 이제 미술품은 아우라에 갇힌 예술품으로서의 고정된 영역에서 벗어나, 투자가치가 있는 상품으로 경제영역 안으로 편입된 것이다. 그 동안 예술품을 보고 감동을 얻는 것이 고작이거나 그 예술품이 좋아 개인적으로 소장하던 시대를 지나, 고수익을 안겨 줌으로써 투자가치가 있는 매력적인 상품으로 바뀐 것이다. ■서울시, 아트 펀드 지원…문화ㆍ예술도시 창출 아니, 어쩌면 십수 년 만에 활황기를 맞은 미술시장의 뜨거운 분위기를 감지한 금융계가 아트 펀드 상품을 출시하게 된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은행계뿐만 아니라 서울시에서도 오는 2010년까지 500억 원 규모의 아트 펀드를 조성하기로 하고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한 브리핑에서 “서울시는 문화·예술 창의기반과 도시 인프라를 구축, 세계인들의 감성을 끌어당길 서울만의 매력을 창출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서울에 문화와 예술이 물과 공기처럼 흐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아트 펀드란 무엇일까? 쉽게 말해서, 예술 작품을 매입한 뒤 이 작품을 전시에 대여하기도 하고 작품 값이 오르면 다시 되팔기도 해서 얻은 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투자 상품이다. 투자가가 직접 작품매입에 관여하지 않아도 되기에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도 투자가 가능하다. 아트 펀드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미술 시장의 꾸준한 성장에 있다. 미국의 메이 모제스(Mei-Moses) 아트 지수에 따르면, 1955년부터 2004년까지 50년 간의 평균수익률은 10.5%로 이는 같은 기간 S&P 주가수익률인 10.9%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러한 성장세는 최근 들어 뚜렷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2004년 세계 미술품 수익률은 13%로, 같은 기간 S&P 주가수익률 10.9%, 미국 장기 국채수익률 5.1%를 상회하는 높은 실적이다. 2004년에 설립된 영국의 파인아트펀드의 1호 CEO인 필립 호프만은 지난해 방한해 파인아트펀드 1호는 투자 3년째로 평균수익률이 기대수익률을 15% 초과한 47%를 기록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아트 펀드, 투자액 수십 억…우습게 보면 ‘곤란’ 지난 1년 동안 한국에서 판매된 사모형식의 아트 펀드는 모두 4종류가 있는데, 2006년 9월에 출시된 서울명품아트 펀드(투자금액 75억 원)와 2006년 12월에 출시된 스타아트 펀드 (투자금액 100억 원), 그리고 2007년 5월과 7월에 각각 출시된 서울아트사모특별자산 펀드2호(투자금액 80억 원), SH명품아트펀드 (투자금액 120억 원) 등이다. 이들 상품은 대부분 누적수익률 10%를 기록하면서 순항 중이다. 사모 펀드란 소수의 고액 투자자들, 자산가나 금융관련업계와 같은 기관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기업에 투자하여 수익을 내는 펀드인데, 아트 펀드 역시 펀드를 조성하는 측에서 이미 모집을 마친 상태에서 진행을 하는데다 종자돈이 2~3억 원을 넘고 있어 평범한 일반인은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사모형식의 아트 펀드는 앞으로도 몇 개의 상품이 더 출시될 전망인데, 그 동안 기업들이 미술품을 살 경우 불용자산으로 분류되어 30%의 세금을 더 내야 했지만, 몇 년 전부터는 기업자산의 1% 한도 내에서 이를 허용했다. 따라서 많은 기업들이 미술품 구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법인세법까지 바뀌어 기업이 미술품을 구입할 경우, 이를 업무용 자산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 ■펀드 가입, 철저한 사전 준비는 기본 만약 당신이 아트 펀드에 투자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아트 펀드도 펀드의 일종이므로 수익률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펀드를 운용하는 운용사 못지 않게 펀드와 관련된 다른 스태프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한다. 자문 그룹이나 관련 화랑 및 경매회사, 그리고 이 펀드를 기획 판매하는 판매사의 역할이 다른 어느 펀드에서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주식이나 채권처럼 공신력 있는 가격지수가 아직 없다는 점도 리스크 요인이다. 특히, 아트 펀드는 통상 3년 이상의 장기투자가 필요하며 중도에 환매를 제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를 염두에 둔 투자결정이 필요하다. 세금의 경우 개인이 미술품을 거래하는 경우와 달리, 아트 펀드는 배당형 펀드와 같이 15.4%의 세율로 과세되는 약점을 안고 있다. 이 외에도 파인 아트 펀드는 투자자로 하여금 작품을 일정기간 자신의 집에 두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투자하는 쪽으로만 그치고 있어 이 또한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수익률이 높다는 점만으로 투자를 결정하기에 앞서, 투자자 자신이 평소에 미술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자주 미술관에 들러 그림을 보며 안목을 키움과 동시에, 국내의 크고 작은 경매회사에서 진행되고 있는 아트쇼에 참석해 미술시장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필수다. ■은행ㆍ증권사 중심 아트 펀드 상품 잇따라 출시 이처럼 아트 펀드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은행과 증권사를 중심으로 한 프라이빗 뱅킹과 아트펀드 상품 출시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판매된 사모(私募) 형식의 아트 펀드인 굿모닝신한증권의 명품아트펀드와 스타아트펀드(한국미술투자)는 10~20%의 비교적 높은 수익률을 냈다. 한국미술투자가 지난해 12월에 출시한 스타아트펀드의 4개월 누적 수익률은 18.6%를 기록했다. 이는 올해 종합주가지수(KOSPI) 상승률(12.3%)보다 높고, 영국 파인아트펀드의 연간 수익률(21.5%)에 근접한 수준이다. 최근 한국투자증권(박여숙 화랑)과 아라리오갤러리, 마이클 슐츠 화랑 등도 줄줄이 새로운 아트 펀드 출시를 준비 중이다. 굿모닝신한증권도 올 하반기 명품아트펀드 2호를 내놓을 계획이다. 이들 아트 펀드를 통해 올 한 해 600억~1000억 원의 금융권 자금이 미술시장으로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투자자를 모집하는 아트 펀드도 있다. 영국의 파인아트펀드회사는 중국 미술품에만 투자하는 차이나 아트 펀드(설정액 250억 원)를 최근 출시했으며, 한국 투자자를 상대로 25억 원을 배정해 놓은 상태다. 얼마 전 서울을 방문한 필립 호프먼은 “향후 5년 간 미술시장은 드라마틱한 성장을 보일 것”이라며 향후 미술시장의 전망을 낙관했다 한편, 그림 구매열기가 일부 한정된 부유층에서 개인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흐름도 최근의 추세다. 5월 초에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는 지난해보다 1만5000여 명이 늘어난 6만4000명의 관람객이 참여, 총 175억 원 규모의 거래가 이뤄졌다. 지난해에는 거래규모가 100억 원이었다. 배병우와 이기봉 등 인기 작가의 전시관에는 구매를 위한 줄이 이어졌고, 20여 명 작가의 작품은 첫날 판매가 완료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그러나 미술품 시장이 과열됐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있다. 미술계의 한 전문가는 “모든 작품의 가격이 오르는 것이 아니고 실제 시장에서 작품이 유통되는 작가도 한정돼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작품 소장에 의미를 두고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