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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국정원법, 급변하는 정보환경 대응 못해”

[인터뷰]최병국 국회정보위원장(한나라당 의원)
‘정도정치(正道政治)’ 추구하는 선비풍의 소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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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03호 심원섭⁄ 2009.02.04 10:07:45

2000년 11월, 서울지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소추 표결문제로 위기에 처한 검찰에 대해 검사 출신의 한나라당 의원이 ‘장자(長子)’에 나오는 한시(漢詩)를 읊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장본인은 그 전해에 전주지검장을 끝으로 30년 검찰생활을 접고 정치권에 뛰어든 최병국 의원이었다. 당시 국정감사장에서는 탄핵소추 발의의 원인이 된 선거사범 편파수사 여부를 놓고 여당인 새천년민주당과 야당인 한나라당 간에 치열한 논란이 일고 있던 중이었다. 검찰은 입건 또는 기소된 정치인 가운데 여당과 야당의 숫자가 거의 비슷하다며 야당의 편파주장을 반박했다. 이에 최 의원은 ‘부경수단 속지즉우 학경수장 단지즉비’(鳧脛雖短 續之則憂 鶴脛雖長 斷之則悲) 즉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늘리지 말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는 내용의 ‘장자’에 나오는 한시를 한 수 읊으며 검찰 후배들을 점잖게 질책했다. 당시 검찰 안팎에서 최 의원이 인용한 한시가 예사롭지 않게 거론된 이유는 그가 퇴임하면서 강조한 ‘예언’ 때문이었다. 최 의원은 “맹수가 병이 깊으니 제 살을 물어뜯어 동티가 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검찰 수뇌부가 권력유지에 급급하여 일선검사와 중견검사들을 마녀사냥 식으로 희생시키며 검찰조직을 뒤흔들고 있다는 정면비판이었다. 최 의원의 ‘예언’은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대전 법조비리 사건 수사를 총지휘했던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이 끝내 후배 검사들에 의해 구속됨으로써 그대로 ‘적중’한 셈이 되었다. 이처럼 검찰생활 30년 동안 ‘정도(正道)’와 ‘원칙’과 ‘소신’으로 일관했던 최 의원이 최근 일련의 정치상황과 관련해 고민에 빠져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치권이 원칙은 고사하고 무질서와 혼란 속에 빠져 2월 임시국회에서 국정원법 통과를 앞두고 여야 합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최 의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정도정치(正道政治)’이며, 2000년 4월 정치에 입문한 이래 이 글귀를 벗어난 행동을 한 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3년 8월, 당시 검찰 후배이자 민주당 소속이었던 함승희 전 의원은 한 언론에서 최 의원을 “‘20년 넘게 부도가 난 적이 없는 약속어음’과도 같은 중심을 꽉 잡고 있는 의원”이라며 “품위를 잃지 않고 꿋꿋이 갈 길을 가는 선비다운 풍모가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다음은 1월 30일 오전 국회 본청 정보위원장실에서 최병국 위원장과 가진 인터뷰 전문이다. ■ 지난 연말에 여야가 국가대테러활동기본법·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국정원법 개정안 등 3개 법안에 대해 각 당의 대안을 조속히 제출한다는 합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 진행 상황은 어떤가? 현재 민주당에서 대테러활동기본법·사이버위기관리법·국정원법에 대하여 대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2월 임시국회에 즈음해서 발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대테러활동기본법의 ‘테러’, ‘대테러활동’ 개념은 정보위에 계류 중인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 안을 수용하되, ‘대테러센터 위상’과 ‘군 병력동원’ 조항에 대해서는 일부 손질하는 형태인 것으로 알고 있다. 국정원법·사이버위기관리법은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하여 현재 정보위에 계류 중인 법안을 기초로 하되, 국정원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대안을 발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현재 국회에 제출된 국정원 관련법 개정안 6개 중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법안은 무엇인가? 우선, 국정원직원법은 1월 8일 임시국회에서 본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에 1월 말 경에 공포 시행될 예정이지만, 통신비밀보호법은 국정원 관련법이 아니라 법사위에 계류 중인 법무부 소관 법안이어서 내가 언급하기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정원 소관 법안으로 정보위에 계류 중인 법안은 국정원법·사이버위기관리법·비밀보호관리법·대테러활동기본법 등이다. 이 가운데 국가정보원법과 대테러활동기본법은 여야 간에 다소 견해차이가 있지만, 법안이 상임위에 상정된 후 본격 논의되는 과정에서 상호 이견이 좁혀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 밖에, 사이버위기관리법과 비밀보호관리법은 큰 쟁점이 없으므로 원만히 처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 한나라당 이철우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과 친박연대 송영선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2008년 11월 6일 한나라당 이철우 의원이 발의한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은 국정원 정보활동 범위를 ①국가안보 및 국익 관련 중요 정책정보, ② 위기 예방관리 정보, ③ 보안정보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그 법안에 대해 정치권 일각 및 일부 언론으로부터 국익·정책정보의 개념이 너무 추상적이고 포괄적이어서 국정원 직무범위가 무한정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친박연대 송영선 의원이 2008년 12월 23일 대안을 발의한 바 있다. 송 의원은 ‘국익’과 같은 추상적 용어의 사용을 배제하고, 정부조직법·국가안전보장회의법 등 현행 국정원 관련 법률이 사용 중인 ‘국가안전보장’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국정원 관련 법률 상호 간에 내용적인 일관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국정원 정보활동 범위를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정보’, ‘테러·국제범죄조직·산업기술보안정보’ 등으로 구체적으로 기술하면서 직무 범위를 현행 국정원 관련 법령의 범위 내로 한정시키고 있다. ■ 국정원법 개정 의도를 공안업무의 확대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은데, 이에 대한 최 위원장의 견해는 어떠한가? 그러한 시각도 일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현행 국정원법은 1963년에 개정된 중앙정보부법 직무조항의 기본적 골격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어, 냉전 종료 이후 세계적으로 급변하고 있는 정보환경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정보환경 변화에 맞춰 개정하려는 것이다. 탈냉전 이후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은 국가안보는 물론이고 국가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영역의 제한 없이 정보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며, 관련 법령도 정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중추적 국가 정보기관인 국정원에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합당한 역할과 기능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추가적인 역할 부여에 상응할 수 있도록 현행 정치관여·직권남용 가중처벌 조항은 반드시 존치되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추가적인 통제방안도 함께 강구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국익’이란 단어의 범위가 워낙 광범위해 정치적 사찰까지 가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는데, 위원장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철우 의원이 발의한 국정원법 개정안 중 ‘국익’에 대해 추상성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법안의 해당조항 내용을 잘 보면 국정원은 ‘국가 안전보장 및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정책의 수립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분석토록 한다고 되어 있다. 즉, ‘국가의 이익’과 관련되는 사항이라면 국내외 지역적 경계 구분 없이 당연히 정보기관의 정보활동 대상으로 삼아야 하며, 이 경우에도 각 부처 차원의 정보가 아니라 대통령의 정책 결정이 필요할 정도의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만 정보활동을 한다는 것이 입법 취지라고 생각한다. 특히, 군사·외교 등 전통적인 안보개념을 초월하여 과학기술·경제·자원·환경 등 비군사적인 영역이 주된 대상이라 하겠다. 이에 반해, 정치사찰은 특정 정치인·정당의 비리정보 수집활동을 지칭하는 것인데, 94년에 개정된 현행 국정원법은 정지사찰을 금지하고 있고, 직원이 이를 위반할 경우 일반 공무원보다 5배 가중처벌하고 있으며, 이철우· 송영선 법안 모두 정치관여죄 처벌조항을 존치하고 있고, 국회 정보위 통제 및 언론·시민사회의 감시기능이 활성화되어 있어 과거와 같은 정치 사찰활동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당 원희룡 의원은 ‘국정원법·사이버테러법 등 이념법안 개정은 아직 시기상조’라며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당내에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며, 한나라당이 건강한 정당이라는 증표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정보위 소속이 아닌 다른 상임위 소속 의원들은 바쁜 국정현안으로 인해 국정원법·대테러활동기본법 등의 국정원 관련 법안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분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향후 당내에서 활발한 토론과 자유로운 대안 제시를 통해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넘치는 부분은 비우는 방향으로 당론을 모아야 할 것이다. ■ 홍준표 원내대표는 “국제테러범죄·국제범죄조직·국제마약거래·국제위폐거래 등 4대 국제범죄에 대해 국정원이 외사수사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실제 추진 여부는 어떠한가? 국제범죄에 대해 국정원이 수사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홍 대표의 평소 지론이며, 장기적으로는 국정원이 외사분야에 대한 수사권을 가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홍 대표의 생각에 대한 당내의 공감대 형성이 부족한 상태이며, 법안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향후 좀 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논의되어야 하리라고 보며, 현재 정보위에 계류되어 있는 이철우· 송영선 의원 발의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해 우선적으로 상정·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 야당에서는 국정원 관련 법안에 대하여 결사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는데, 설득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그리고 만약 설득이 안 될 때에는 단독처리도 불사할 것인가? 솔직히 야당 의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도표를 그려 가며 설명해주면 거의 다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러나 야당이 당론으로 정할 때는 개인 의견들이 거의 무시당하고 있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시민단체 등과 연계해야 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야 하므로, 현실적으로 협상이 곤란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야 간에 서로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타협이 가능할 것이므로, 정보위원장으로서 여·야 합의하에 관련법이 처리되도록 최대한 인내를 갖고 모든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지만, 부득이할 경우 관련법의 제·개정안을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 ■ 국정원장 임기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정원장 임기제를 도입하면, 정치중립을 확고히 하고 원장이 전문성을 보유하여 안정적으로 조직을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정보환경 변화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처하기가 어렵고, 자칫 정치색이 짙은 인사가 임명될 경우 도입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는 등 단점도 없지 않다. 선진국들은 이러한 장단점을 고려하여 자국 사정에 따라 임기제 도입 여부를 달리하고 있으며, 국정원장 임기제 또한 정치문화 발전 정도, 정보기관의 정치중립 정착 여부 등을 충분히 검토하여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 연방수사국장(FBI)은 10년, 중국 국가안전부장은 5년, 이스라엘 비밀정보부장(ISIS, 모사드)은 4년 등의 임기를 두고 있으나, 일본의 내각조사실과 영국의 비밀정보부(SIS) 등은 임기제를 도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 국정원 직원 양성과 퇴직후 철저하게 관리할 수 있는 법안 제정에 대한 견해는? 국정원 직원에 대해서는 국가공무원법의 특별법이라 할 수 있는 국가정보원직원법이 적용되고 있어 국정원 자체적으로 인력채용·교육훈련 및 징계절차 등을 수행 중이다. 국정원은 최고 국가 정보기관의 위상에 걸맞게 신입직원을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쳐 과학적인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직원으로 임용된 이후에도 계급정년·직권면직 제도 등을 통해 조직의 활력을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울러, 비밀정보기관의 특성상 모든 전·현직 직원은 직무상 비밀의 누설을 금지하고 있고, 위반할 때는 일반 공무원보다 5배나 엄하게 처벌토록 하고 있다. 다만, 퇴직한 직원의 비밀누설 사고에 대해서도 국정원 조직보호 차원에서 1차적인 감찰권·수사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국가정보원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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