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전남 보성 앞바다에서 20대 남녀 4명이 선상에서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고희(古稀)를 넘긴 어부 오모 씨(71)였다. 오 씨는 연쇄살인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됐다. 2남 5녀의 아버지이자 50여 년 경력의 어부로서 별다른 전과도 없던 오 씨는 인생을 정리하면서 다복하게 보내야 할 나이에 연쇄살인범이 됐다. 그는 범행동기를 묻는 경찰에게 “처녀니까 만져보고 싶어서 그랬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지난해 온 국민의 울분을 샀던 숭례문 방화 사건의 피의자는 70세의 채모 씨였다. 채 씨는 당시 토지수용 보상금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등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불을 질렀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국보 1호에 불을 냈다는 것이다. 채 씨는 당시 “아무도 내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아 화가 났다”고 진술한 바 있다. 노인이 저지르는 강력범죄의 발생률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처녀를 만지고 싶었다”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등 노인 피의자 두 명이 밝힌 범행동기는 노인범죄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불러일으킨다. ■ 10년 새 노인 범죄자 2배 증가 최근 10년 사이 노인들의 범죄가 급증한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다. 우리 사회의 노령화 추세에서 범죄에 피해를 당하는 노인들이 늘어나는데 비례하여 가해자도 증가하는 가운데, 폭행과 살인·방화 등 강력범죄의 비율이 특히 빈발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장준오 박사가 1996년부터 2006년 사이에 61세 이상의 노인 범죄자에 대해 비교 작성한 ‘노인범죄 및 범죄 피해’논문에 따르면, 노인 범죄자 수는 1996년 3만4492명에서 2006년에는 8만2323명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이에 따라, 전체 범죄자 가운데 61세 이상 노인 범죄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996년 1.8%에서 2006년에는 4.3%로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에 20대 범죄자 비율이 24.4%에서 15.8%로, 30대는 32.5%에서 23.8%로 줄어든 것과 비교할 때 심각한 수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성폭행범의 숫자도, 1996년 당시 61세 이상 노인 피의자는 94명이었지만, 2006년에는 423명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살인범도 1996년 20명에서 59명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난 모습이다. 또, 노인 방화범은 7명에서 46명으로 6배 이상 증가했다. ■ 노인범죄도 흉폭해지는 경향 전국의 교도소와 구치소에 수감된 노인 범죄자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범죄의 고령화’와 ‘강력범죄화’ 현상이 나타났다. 전체 수용자 중 노인 수용자 비율이 1998년 1.7%에서 10년이 지난 2008년 8월 말 현재 4.3%를 넘어서고 있어 노인 범죄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법무부가 국정감사에서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60대 이상의 노인 범죄자 수는 1998년에 1207명이었다가 2002년에는 1481명, 2005년 1562명, 2006년 1619명, 2007년 1865명, 2008년 8월 말 2007명으로 집계됐다. 작년 4월 기준으로 범행 당시 60세 이상인 노인 수감자는 737명이며, 60~65세가 43.3%로 가장 많았다. 이어 66~70세는 35.4%, 71~75세는 16.3%, 76세 이상이 4.8%의 분포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1995년 조사에서는 202명의 수감자 중에서 71세 이상의 수감자는 9.9%인 20명에 불과했다. 이들 중 살인혐의로 수감된 노인은 23.5%, 강간혐의는 9.6%, 횡령·폭행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10여 년 전인 1995년에는 살인 혐의로 수감된 노인이 단 한 명도 없었고, 폭행과 상해·사기 등 비교적 가벼운 범죄자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이로 볼 때 노인범죄가 흉폭해지는 경향을 알 수 있다. 또, 1995년에는 60대 이상의 노인들 중 초범인 경우가 7.4%였지만, 작년 조사에서는 노인 수형자 중 60대에 처음 범죄를 행한 비율이 40.2%로 나타났다. 수감된 노인들은 부에 대한 욕심(24.1%)을 가장 큰 범죄의 동기로 꼽았고, 원한이나 분노(16.9%), 생활비 마련(14.6%)에 대한 동기가 컸다. 이처럼 ‘부에 대한 욕심’의 수치가 높게 나타난 것은 고령화와 경제 악화로 인해 노인들의 생활고가 가중된 현상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 일자리 없어 생계형 범죄도 증가 추세 장준오 박사는 “우리나라의 고령화 수치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며 노인 범죄율이 늘어나는 원인을 인구 고령화에서 찾았다. 더욱이, 사회 전반에 걸친 조기 정년퇴직 분위기에서 평균 퇴직 연령은 53세인데 평균 수명은 80세에 이르고 있다. 고령화에 따른 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노인이 사회에서 위치를 찾도록 필요한 일자리를 마련해 자립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지원이 중요하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처음으로 500만 명을 돌파했고,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를 넘어섰다. 문제는 급증한 노년인구의 삶의 질이 매우 열악하다는 점이다. 대다수 노인이 건강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특히 100만 명에 육박한 독거노인의 형편은 더욱 심각하다. 돌보는 가족이 없어 사고와 질병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데다, 월평균 소득도 26만6000원으로 전체 노인의 절반에 불과하다. 정년퇴직 등으로 실직한 노인들의 소외감과 절망감을 우리 사회는 깊이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족 관련 가치관이 급격히 변화하여 자식에게 부양을 기대할 수도 없다. 경제위기 여파로 청년들의 일자리도 모자라는 실정이지만, 연금·건강보험 등 노인 관련 복지예산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도 노년층이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누리게 해줘야 한다. 일자리는 사회적 소속감을 부여해 노인들에게 돈벌이 이상의 만족을 줄 수 있다. ■ 부족한 사회안전망 노인범죄 부추겨 노인들을 보살피는 사회적 서비스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올해 전국에 배정된 노인 생활관리사는 8000여 명, 대상 독거노인은 13만 명에 불과하다. 이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소외 노인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갖출 때 우리 사회 전체가 안전해질 수 있다. 과거에는 환갑만 넘어도 사회적으로 ‘어른’ 대접을 받아 범죄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요즘에는 60세나 65세 정도는 ‘중간나이’ 축에 속한다는 인식도 한몫 한다는 주장도 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 60세에는 아직 활동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노인들이 정년퇴직을 하고 갈 곳이 없어 노인범죄가 늘고 있다. 노인들을 위한 사회생활 프로그램이 취약해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으로 범죄의 유혹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가족부의 한 관계자는 “노인범죄는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다른 정부 부처와의 공조를 통해 종합적인 프로그램 개발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인인구의 급증에 맞추어 사회 시스템의 재정비가 필요한 것이다. ■ 음지에 내몰린 노인의 성적 욕구, 성폭력 부른다 노인의 성적 욕구를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노인에 의한 성폭력 범죄를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게 하는 원인이다. 대구의 한 찜질방에서 잠을 자던 피해자를 성추행한 70대 노인이 집행유예 선고와 함께 성폭력 치료강의를 수강하라는 명령을 받은 일이 있지만, 이는 노인들의 성적 욕구가 막혀 있는데 기인한다는 것이다. 상처(喪妻)·상부(喪夫)한 노인들은 자식들이나 사회적 시선 등이 두려워 성적 욕구를 해소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노인들도 젊은이들과 같은 성적 행위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는 57~85세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해, 많은 노인이 정기적으로 성생활을 즐기고 있고, 건강상태가 좋은 노인은 건강이 보통이거나 좋지 않은 노인에 비해 성적으로 2배 가까이 활동적이라는 결과를 알아냈다. 노인 성범죄의 증가 추세에 따라, 불법 성매매 등 불건전한 성적 접촉으로 성병에 감염되는 노인들의 수가 매년 10% 이상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인구 고령화와 함께 독거노인의 증가로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힘든 노인층 인구는 늘어났지만, 사회적으로 ‘노인의 성’은 음지에 가려져 있다. 노인의 성적 욕구를 단순한 노인의 문제로 볼 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 노인의 전화 강병만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는 노인의 성에 대해 너무 경직된 사고를 갖고 있다”며 “노인들도 반려자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말고 떳떳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억압된 노인 성(性), 이제는 풀어줘야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노인의 성적 욕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노인이 되면 성적 욕구가 꺼져버리는 것으로 간주했다. 노인이 성적 욕구를 드러내면 ‘엉큼하다’ ‘추잡하다’는 등의 저급한 표현으로 매도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성적 욕구를 무조건 자제하기보다는 노인들의 성문제에 대한 관대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건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노인문제 전문가는 “노인들은 전통적인 유교문화의 영향 탓으로 스스로 억누르며 사는 것을 당연시해 왔다”며 “자꾸 주변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욕구 해소를 못 하다 보니 짜증을 내고 거칠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노인들이 성적 욕구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성 인격체로 인정하는 문화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노인 전문가는 “노인들의 성적 욕구는 젊은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분출할 기회가 없다 보니 결국은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며 “노인들의 성문제에 대해서도 좀 더 열린 시각을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노인에 대한 관심과 역할 부여가 범죄 예방 노인들의 사회적 역할 부재는 각종 일탈행위로 나타나며, 이것이 심각한 범죄를 일으키기도 한다. 장준오 박사는 “노인은 자신과 가족 및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노인이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못 찾은데 대한 반대급부적 현상이기도 하다”며 “노인이 은퇴 후 계속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법무부 관계자는 “노인인구 비율의 증가로 노인 범죄자가 늘어난 경향도 있지만,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버림받은 노인들이 늘면서 노인범죄가 급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노인들의 범죄가 늘어나는 현상에는 노인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인식의 부재가 있다. 노인들을 나 몰라라 하는 냉대는 결국 범죄를 부추기는 일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