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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색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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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31호 편집팀⁄ 2009.08.18 15:02:23

김하영 (화가, 대학강사) latecomer69@naver.com 거울에 비친 상, 하늘에 걸린 무지개 그리고 다채로운 풍경. 마음에 인상을 남기지만 그 본질은 보이는 것과 다르니… 제7대 달라이 라마의 [부끄럽지 않은 길의 노래] 중에서. 무지개는 우리를 신비스런 풍경 속으로 이끌고 상상의 나래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오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무지개는 비가 내린 뒤 햇빛이 물방울에 비칠 때 서로 다른 빛의 파장이 각기 다른 각도로 굴절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색이란 우리의 눈이 빛의 파동에 대하여 느끼는 지각현상이다. 우주는 전자기파라고 부르는 거대한 에너지로 움직인다. 하지만 우리의 눈에 보이는 전자기파는 오직 가시광선뿐이다. 우리는 빛의 모든 파장이 반사하면 흰색으로 보게 되고, 이 중 일부만 변하여도 전혀 다른 색으로 느끼게 된다. 강렬한 색채와 감성적 주제를 잘 조화시켰던 19세기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르와(Eugene Delacoix 1799 ~ 1863)는 그만의 색채조화론을 주장하며 화가들이 반드시 색채와 재료를 잘 다뤄야 함을 강조하였다. 세상의 예술가들은 항상 낯선 호기심을 안고 새로운 재료나 비법을 찾아다닌다. 요즘은 화구점만 가면 원하는 물감을 바로 구입할 수 있다. 물감용기에는 고유번호, 색상 명, 지속성, 불투명도, 독성 등이 기재되어 있고, 심지어 판매원은 제품의 특성과 사용법을 설명해주며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이 낳은 물감들은 신비스런 천연 안료와 아름다운 재료들의 숨겨진 이야기까지 제공하지는 못한다. 스치며 무심했던 다양한 물감상자 속에는 신비스런 색 이야기가 있다. 색상만큼이나 다양하고 흥미로운 과거의 비밀스런 모험담이 색의 탄생과 더불어 그려지게 된다. 그 중에서도 색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건강을 잃게 되거나 죽음에 이르기도 하는 경우는 열정과 무지의 경계에 있는 인간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15세기 플랑드르 화가 반 에이크 형제는 달걀 템페라의 흐려지는 단점을 보완하고 색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 오일을 희석제로 사용하는 유화물감을 발명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걸려 있는 15세기 작품들 중 가장 논쟁의 여지가 많은 작품으로 얀 반 에이크의 ‘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 있다. 이 작은 명화에는 선명하고 오랜 세월 변색되지 않는 녹색이 사용되었는데, 부인이 입은 우아한 치마에 사용된 녹색 물감으로서 그 원료는 순수한 금속의 부식에서 탄생한 ‘녹청’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 녹색은 언젠가 사라져버리는 색으로 화가들이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또한 녹청은 ‘얀 반 에이크’라고도 불리는데, 플랑드르 화가들이 녹청을 즐겨 사용했고 매우 성공적으로 사용했다는 이유에서이다. 이탈리아 화가들의 녹청은 사라져 검게 변색되었지만, 얀 반 에이크 그림 속의 녹청은 수세기 동안 원래의 색을 유지하는데, 그 이유는 표면에 특수한 니스를 덧칠해 변색을 막았기 때문이다. 또한, 녹색은 18세기 중반까지 예술가뿐 아니라 실내 장식가들 사이에도 인기가 높았다. 1775년 스웨덴의 화학자 칼 빌헬름 셸레가 비소를 실험하다 우연히 발견한 색으로 구리와 비소를 재료로 매력적인 녹색 안료를 발명했다. 곧 셸레 그린 (scheel`s green)이라는 이름으로 제조를 시작했다. 제품이 출시되기 전에 셸레는 안료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독성이 있음을 주지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조업자들은 경고를 무시하고 제조하였으며, 그림뿐 아니라 벽지에도 그 색이 유행하였다. 몇 년 동안 사람들은 벽에 독을 붙이고 산 셈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학자들은 벽지의 독성에 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이 비소 안료를 나폴레옹 머리카락의 미스터리와도 관련지었다. 위풍당당했던 황제 나폴레옹은 생을 마감하기 얼마 전부터 외출도 않고 침대에서 시름시름 앓았다고 한다. 오래된 침실의 벽지를 분석한 결과 벽지는 하얀색 바탕에 녹색과 금색이 어우러진 붓꽃 모양이 배열되어 있었는데, 그 녹색이 바로 셸레 그린이었다.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 섬의 습한 날씨가 심해질수록 나폴레옹의 심기가 편치 않았던 이유는 습기에 반응한 비소가 안료 속에서 증기로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롱우드 저택의 나폴레옹 침실을 장식한 녹색 벽지는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아름다운 녹색에 죽음을 부르는 비소가 숨겨져 있듯이, 모든 파장의 빛을 반사하는 순결한 흰색에는 더욱 치명적인 독성이 숨겨져 있다. 흰색 안료의 재료는 매우 다양하다. 백악·아연·바륨·석회암 등등…. 그 재료 중 가장 아름답고 치명적인 것은 단연 납이다. 납에서 추출한 분말인 연백은 최상급의 백색 안료이다. 외견상 깨끗하고 순수해보이는 이 색은 우리 몸에 빛을 흡수하지 못하게 하며 심장을 검게 만든다. 연백은 화가와 공장 노동자뿐 아니라 하얀 피부를 원하는 여인, 놀이터의 아이들에게까지도 치명적인 해를 입혔다. 19세기 미국 화가 제임스 맥네일 휘슬러는 ‘하얀색 교향곡 - 제5번 하얀 소녀’ 를 그리고 있었다. 휘슬러가 모델의 옷과 우아한 주름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흰색 안료는 결국 그를 드러눕게 하였다. 이 안료 연백에는 납 성분이 들어 있었기에, 화가는 흩날리는 납 가루를 마시며 기력을 잃어갔던 것이다. 요즘도 젊은 여자들이 미를 추구하려다 죽음에 이르기도 하지만, 19세기에는 새하얀 피부를 부러워하는 여인들이 연백에 중독되어 사망하였다. 연백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화장품의 재료로 사용되었고, 로마 여인, 일본의 게이샤도 새하얀 피부를 위해 이 성분을 애용했다. 연백의 유혹은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처음에는 여인의 안색이 핏기 하나 없이 하얗고 창백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다가 결국 모든 감각이 마비되어 서서히 사망에 이르게 한다. 안료에 대한 무지와 미적 욕망은 결국 죽음을 부르는 치명적인 독이 되었다. 1994년 유럽연합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연백의 판매를 금지했지만, 물감 제조업체인 윈저 앤 뉴턴 사는 “제한된 지역에서, 제한된 양만을, 특수한 용기에 담아 팔 것”이라고 발표하고 연백 대신 티탄으로 불투명한 백색 안료를 출시하였다. 하지만 훌륭한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서라면 연백의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몇몇 예술가들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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