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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미술을 알아야 마이클잭슨이 보인다 (상)

제1부 : 아이와 어른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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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53호 편집팀⁄ 2010.01.18 17:15:44

정해광 (아프리카미술관장·철학박사) A. 아이로서의 잭슨

여덟 살부터 ‘Jackson Five’로 활동한 마이클 잭슨은 이미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여느 아이들처럼 학교에서 공부하며 놀기보다는 나이트클럽이나 행사장에서 어른들의 현실을 노래하면서 아이다움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가 아니었고 그렇다고 어른이 될 수도 없었다. 그 상실의 한가운데에 아버지의 혹독함이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컸고, 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아버지와의 화해를 불가능하게 하였다. 한국의 박찬상 작가는 마이클 잭슨의 어린 시절에서 아이다움의 끝을 보았다고 했다. 상처받은 영혼이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무엇인가 초점을 잃은 눈동자에서 아이다움을 상실한, 그러면서 세월의 흐름과는 무관한 마이클 잭슨의 슬픈 내면을 표현하고 싶어했다. 아이다움의 상실, 치유되기 힘든 영혼, 이는 ‘실패한 피터 팬’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마이클 잭슨의 예견된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B. 어른으로서의 마이클

1973년, 열다섯 살에 마이클 잭슨은 “Got to be there”라는 노래로 독립하기 시작했다.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은 자신의 정체성과 자유를 위한 길이었지만, 시련은 너무 컸다. 아버지와의 갈등과 대립은 아버지의 부재로 이어졌다. 마이클 잭슨이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크게 받았으면서도 광장공포증을 겪은 것은 결국 아버지에 대한 애정결핍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음악을 원했던 그에게 한계는 있을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 음악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기 때문이었다. 인간학적 디자인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콩고의 칸킨다(J. Kankinda)가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눈을 그리지 않은 것처럼, 마이클 잭슨은 들리는 멜로디보다 들리지 않는 멜로디를 찾기 위해 가족의 곁을 떠났고, 자유로움을 위해 세상 속의 자신을 선택했다. C. 마이클 잭슨과 세 어머니

아프리카 화가들은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머니라는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잭슨은 어느 정도 고통을 비켜나갔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꾸준히 들려주어 재능을 일찍 발견하게 한 어머니 캐서린 잭슨, 음악밖에 모르는 잭슨에게 다양한 예술세계를 보여주어 멀티 플레이어로의 가능성을 열어 준 다이애나 로스, 인종과 나이의 벽을 넘어 인간의 진정성을 알게 해준 엘리자베스 테일러, 이들은 잭슨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로서 구체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신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어머니를 먼저 세상에 보냈다”는 아프리카의 격언처럼 잭슨의 세 여자는 아세파의 ‘꽃을 든 세 여인’과 같이 신의 메신저이면서 소망 그 자체였다. 그래서 잭슨이 부르는 노래는 평화의 염원을 담는 신의 멜로디가 되고, 일상의 행복을 바라는 인간의 이데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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