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많은 예술품이 있다. 흔히 그림을 생각하지만 이밖에도 조각, 설치, 사진, 영상, 공예 등 수많은 분야가 있다. 그 중 공예품은 많이 쓰이는 컵이나 밥그릇, 화분병, 도자기처럼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것부터 전시를 위한 감상용까지 다양하다. 국민대학교 조형관 작업실에서 만난 김준용 작가는 “공예는 크게 2가지로 나뉘는데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전시용으로만 쓰이는 것, 그리고 우리가 흔히 인사동 등에서 볼 수 있는 실생활에 쓰이는 것들이 있다. 이들 모두를 공예로 볼 수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미를 갖고 있느냐 없느냐다. 작가가 만드는 수공예와 공장에서 만드는 대량 생산품은 자유도와 완성도에서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도자기를 전공했지만 유리로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김 작가는 현재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유리조형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실 김 작가는 교수 외에 공예가, 가마 제작, 유리 야외 조형물 제작 등 6개의 직업을 갖고 있다. “사실 유리를 하고 싶어 국민대에 입학했는데 당시 유리 전공 관련학과가 없어 도자기를 전공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로체스터공과대학교에서 유리를 전공했다”고 말했다.
도자기와 유리는 만드는 방법부터 다르다. 손으로 만드는 도자기와 달리 유리는 뜨겁기 때문에 도구를 이용한다. 처음에는 이런 도구가 상당히 어색하고 배우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졸업 후 김 작가는 현지에서 1년여를 스튜디오에서 블로잉(Blowing·입으로 부는 작업)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많은 경험을 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국민대 강의를 하면서 경기도 벽제에 ‘준 글라스 스튜디오’를 열었다. 스튜디오에서는 주로 작품 활동과 생산을 한다. 그릇과 화분 같은 공예품을 만들어 카페나 음식점 등에 납품 했었는데 현재는 작가들이 입주해 작업하는 공간으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김 작가가 유리공예를 시작한 계기는 특별하다. “고교 시절 대학 전공을 고민 중에 문득 초등학교 때 TV에서 유리 장인이 나와 유리 공예를 만들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가마 속 노란빛이 퍼져 나오던 모습, 그리고 유리 장인이 블로잉 작업을 하면서 모양이 만들어지는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났다. 나에게 유리는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보다 뜨겁고 말랑하며 부드러운 이미지였고, 보석처럼 섬세하면서 신비한 세계가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외국에서 혼자 공부하려니 모든 게 어렵더라. 나는 벽을 만들지 않았는데 주변에 벽이 있더라. 누구에게나 벽이 있지만 벽두께는 다르다.”
김 작가는 유리의 블로잉 기법을 통해 작품을 만든다. 주된 주제는 ‘고립’이다. 이 주제는 유학생활에서 느낀 외로움과 경험이 토대가 됐다. 그는 “타지에서 혼자 작업하려니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벽을 만들지 않았지만 내 주위에 벽이 있다’고 느꼈다”며 “다시 설명하자면 나도 그 사람을 모르는데 그 사람이 나를 알겠는가. 누구나 벽을 갖고 있으며 다만 그 벽의 두께가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도자기를 전공한 탓인지 김 작가는 유리 같지 않은 유리 제품을 많이 만들었다. 도자기나 금속 같이 보이는 작품들이다. 잠시 ‘외도(外道)’를 한 적도 있다. 김 작가는 보통 유리 같은 유리, 즉 투명한 작품을 만드는데 한때는 꽃을 페인팅한 작품으로 전통적인 유리 기법은 따랐지만 색을 칠한 게 아니라 홈을 파놓고 에폭시(epoxy=열경화성 플라스틱의 하나로 빨리 굳으며 접착력이 강하다)를 부어 질감을 두께로 나타낸 작업이었다. 이는 꽃잎을 유리 안에 가둬놓고 싶다는 그의 독특한 발상에서 시작됐다. 이렇게 하면 조명을 비췄을 때 빛이 투과되면서 뒤에 또 다른 형상이 나타나 그림을 만들어낸다. “조명이 유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유리는 빛과 함께 또 다른 모습을 보인다. 유리는 맑고 투명하지만 또 다른 면은 어둡게 보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유리공예 작품의 국내 판매도 많이 이뤄진다고 말하는 김 작가는 “미술이 조금씩 대중화가 되면서 공예도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유리공예는 녹이는 비용 등 제반비용이 만만치 않아 가격이 비싸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공예품과 달리 유리 제품은 고가라서 대중화되기 쉽지 않다는 얘기였다. 작품 자체도 쉽게 나오지 않아 소량 위주의 작업을 하기에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희소성 또한 크다. 유리는 깨지기 쉽다고 생각하지만 도자기보다 강도는 더 세다고 그는 설명했다. 다만 유리는 깨지면 파편이 작고 넓게 퍼져 다칠 위험성이 더 크다. 김 작가는 2001년 처음으로 개인전을 가졌으며 2004년 이후 2년마다 전시를 연다. 올해가 2년이 되는 해로, 11월쯤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다. “2009년은 2010년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이제 준비했던 일을 실행에 옮기는 시간으로 개인전 및 작품 준비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김 작가는 현재 유리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작업 공간이 턱없이 부족함을 아쉬워했다. “국내에 유리 관련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없다. 때문에 포기하는 작가들이 많은데 이런 공간이 많아지면 더욱 활성화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직은 작은 공간이지만 작가들이 자기 것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하는 김 작가에게서 유리공예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