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작품 3개를 한꺼번에 올리는 것처럼 요즘 정신없이 바쁘네요. 그렇지만 전혀 힘들진 않습니다. 오히려 3배로 더 행복하고 즐거우니까요.” 오는 8월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아시아 최초로 공연되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제작사 (주)매지스텔라의 문미호 대표(42)는 새로운 역사를 쓸 생각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이토록 기대감을 보인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감독 스티븐 달드리와 시나리오 작가 리홀이 각각 연출과 작사를 맡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이자 가수 엘튼 존이 작곡가로 참여해 2005년 영국 런던 빅토리아 극장에서 처음 올린 작품이다. 영국 북부 탄광촌 출신의 로열 발레단 댄서 필립 말스덴의 실화를 다뤄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준 영화를 뮤지컬 무대로 옮긴 무비컬 <빌리 엘리어트>는 영국을 비롯해 호주와 미국에서도 공연되며 세계적 권위의 시상식에서 무려 73개의 트로피를 휩쓸었다. 3년 간의 제작 기간을 거쳐 완성 중인 <빌리 엘리어트>의 한국 공연은 지난해 2월부터 1년 동안 ‘키 150cm 이하 대한민국 소년 누구나’를 대상으로 펼친 ‘빌리 찾기’ 오디션을 진행하여 4명의 빌리와 3명의 마이클 배역을 찾아냈다. 매지스텔라는 3월 2일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 홀에서 <빌리 엘리어트>의 초대형 제작발표회를 열고 대한민국 1대 빌리들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하여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빌리 엘리어트>는 2007년에 설립된 매지스텔라가 처음 내놓는 작품이자 문 대표가 프로듀서로서 실력을 발휘하는 데뷔작이기도 하다. “<빌리 엘리어트>를 하기 위해 매지스텔라를 설립했습니다. 그만큼 전 <빌리 엘리어트>에 미쳐 있었어요. 뮤지컬을 꼭 내 이름을 걸고 해야겠다는 맹목적인 이유가 저를 지금에 이르게 했습니다.” 대학교에서 패션 디자인과 미술사를 전공한 문 대표는 오랜 미국 생활을 바탕으로 한국의 현대 작가를 해외에 소개하고 해외 아티스트들을 한국에 알리는 프로모터 일을 하면서 기획 일을 터득했다. 1997년 서른도 안 된 나이에 태인프로덕션이라는 회사의 대표가 된 그녀는 실패와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타이밍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젊은 시절의 무모한 도전은 결과가 실패로 끝나더라도 전부 밑거름이 되고 땅을 다지는 일이 되는 것 같아요. 그때의 힘겨운 시절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지금도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때의 값진 경험 때문에 지금은 진취적인 도전을 하고 있고요.” 문 대표가 사업을 접고 택한 길은 뮤지컬이었다. 그녀는 국내의 대형 뮤지컬 제작사 설앤컴퍼니의 협력 프로듀서로 해외 업무를 돌보며 3년여 동안 뮤지컬의 기본기를 닦았다. 이어 <올드보이>로 유명한 영화사 쇼이스트에서 투자 업무를 맡으며 영화 메커니즘을 체득했다. “영화 쪽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면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역시 제작하지 못했을 거예요. 영화사 출신이라는 이점 때문에 워킹타이틀(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제작사)의 작품 라이선스를 다른 프로듀서들보다 먼저 따냈죠. 워킹타이틀은 제가 쇼이스트의 이사일 때 처음 만났기 때문에 그들에게 저는 영화를 아는 뮤지컬 프로듀서로 인식됐을 겁니다.” <빌리 엘리어트>로 남성 프로듀서들이 점령하고 있는 국내 뮤지컬계에 어쩌면 독보적인 여성 프로듀서로 이름을 떨치게 될 문미호 대표. <빌리 엘리어트>의 제작발표회가 끝나고 열흘 뒤 청담동의 사무실에서 만난 문 대표에게서는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별빛을 쫓아 꿈을 향해 도전하는 전문가 집단이란 의미가 담긴 매지스텔라(‘동방박사의 빛’이란 뜻)처럼 그녀의 눈빛에는 금방 꿈을 이룰 듯한 환희마저 뿜어져 나왔다. 반짝반짝 기운이 넘치는 문 대표와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은 빛의 속도처럼 빠르게 지나갔고, 대화 뒤에도 많은 잔상을 남겼다. -여성 뮤지컬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힘든 점은 없나요? “여성이기 때문에 힘든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이익이 많다고 생각해요. 여성 CEO가 갖는 투명함 때문이죠. 여성은 근본적으로 남성보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성실하고 투명하고 허풍이 없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뮤지컬 말고도 모든 업계에서 여성 CEO들이 남성 CEO들보다 투명함을 장점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요. 특히 <빌리 엘리어트>는 어린 아역 배우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여성 CEO와 프로듀서가 이 작품에 더 맞지 않나 싶어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가 내 옷을 제대로 입었구나’란 확신이 든답니다.”
-신생 제작사로서 <빌리 엘리어트>라는 대형 뮤지컬의 라이선스를 따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신생 제작사이기 때문에 느낀 고초는 무엇이며, 라이선스를 따낼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제가 2인자라서 돌출되지 않았을 뿐 워낙 이쪽(엔터테인먼트 분야) 바닥에서 10년 이상 일한데다 관련 업계 사람들을 다방면으로 알고 있거든요. 매지스텔라는 신생 회사지만, 문미호를 알고 있는 투자자와 극장, 업계 지인들이 있기 때문에 라이선스를 따낼 수 있었죠.
그리고 외국에서는 라이선스 작품을 줄 때 회사보다 프로듀서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신뢰와 문미호란 사람에 대한 열정을 좋게 봐준 것 같아요. 열정 하나로 두드렸고, 열정 하나로 이 작품을 제작할 영광과 기회를 얻었다고 믿습니다.”
-어린아이가 주연인 <빌리 엘리어트>의 매력은 뭘까요?
“이 작품을 어린아이가 출연해 고집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어린이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가족 뮤지컬도 아니고요. <빌리 엘리어트>는 휴머니즘이 살아 있는 꿈을 향한 도전기를 그린 작품이에요. <빌리 엘리어트>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10편의 영화에 꼽힐 정도로 제게 감동을 준 작품입니다.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무모할 정도로 그쪽(워킹타이틀) 문을 두드렸죠. 3년의 사전 제작 기간에 지치기도 하고 좌절의 순간도 있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아이들(아역배우들)에 대한 믿음과 확신은 커집니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 될 것이다’ ‘아시아에서 성공할 것이다’란 확신이 가슴속에서 점점 커지고 있어요.”
-<빌리 엘리어트>의 성공을 어떻게 점치나요?
“공연계에서는 시쳇말로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말을 자주 쓰는데요, 제 예상으론 개막 전에는 반응이 뜨거워지진 않지만, 8월 초에 시작하는 프리뷰 공연부터는 급격하게 뜨거워질 겁니다. 왜냐고요? <빌리 엘리어트>는 사람의 심장을 울리는 감동이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죠.”
-‘빌리 찾기’ 공개 오디션을 펼쳐 전국에서 많은 소년이 빌리가 되기를 소망했는데요, 지금의 빌리들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성인도 결심을 실천에 옮기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지난해 2월에 만나 1년 넘게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했는데도 단 하루도 결석하지 않았고, 방과 후 다섯 시간 이상을 트레이닝받으며 단 한 번도 힘들단 소릴 하지 않았어요. 끈기와 집중력, 스피드, 습득력은 그들이 가진 재능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훌륭한 아이를 선발하진 않았어요. 몸을 사용할 줄 알면 충분히 가르쳐서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죠. 우리가 유심히 본 건 성실과 끈기, 집중력이었어요. 4차 오디션까지 거쳐 살아남은 아이들은 정말 특별한 아이들이죠. 대한민국 1대 빌리들은 큰 박수를 받을 가치가 있는 아이들입니다. 발레의 B자도 모르는 아이들이 이젠 발레 콩쿠르에 나가도 손색없는 수준이 됐답니다.”
-‘한국 빌리’가 리암 모어(<빌리 엘리어트>의 영국 초연 때 빌리 역을 맡아 13살 어린 나이에 최고배우상을 받은 배우) 같은 오리지널 빌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나요?
“현재 본격적인 안무 리허설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비교할 순 없군요. 그러나 대한민국 아이들에 대한 자부심을 모두들 느낄 거란 말씀은 확실하게 드릴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1대 빌리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 아이들이라는 자부심 때문에 눈물이 나거든요. 대한민국의 아이들이기 때문에 애국심까지 생기고요. 그만큼 한국의 빌리들을 존경합니다.”
-<빌리 엘리어트>가 지금의 모습을 띠기까지 겪은 가장 힘든 고비는 무엇인가요?
“저는 워낙 긍정적인 사람이라 힘든 점은 딱히 기억이 안 나고 행복했던 점만 생각이 나네요. 스스로도 놀랄 만큼 에너제틱하다는 거죠. 이 에너지는 매지스텔라 식구들에게서도 얻지만, 우리 아이들에게서 가장 많이 받습니다. 일주일 전에 못한 동작을 며칠 뒤에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면 행복합니다. 아이들의 성장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많은 투자자가 이 작품에 참여하는 걸로 아는데, 그들을 어떻게 설득했나요?
“제가 항상 매지스텔라 직원들에게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100원의 신용’입니다. 100원은 빌리는 사람이나 빌려주는 사람 모두에게 하찮은 돈이기도 하지만, 100원을 갚는 사람에겐 두터운 신용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몇 년 동안 이쪽에서 일해왔고 쇼이스트에서 투자 담당으로 일한 저를 신용한 투자사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8월 공연까지 남은 과제가 있다면요.
“4월 12일부터 리허설을 시작해 3개월 반의 긴 리허설 기간을 거쳐 무대에 오릅니다.”
-매지스텔라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뮤지컬로만 말한다면 창작 뮤지컬을 만드는 일이 매지스텔라의 최종 목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더 방대한 꿈을 꾸고 있지만요. <빌리 엘리어트>를 마친 뒤에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연극으로 올릴 계획이 있답니다.”
-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