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호 최영태⁄ 2010.04.20 09:31:20
‘권위주의의 화신’ 같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한국에서, 권위주의가 깨지는 파격은 항상 즐겁다.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조보연 교수를 만나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 한국 언론사 중에는 이른바 ‘명의’ 시리즈를 게재하는 곳이 많다. 여러 의사에게 ‘이 분야 최고 의사는 누구냐’고 물어 추천을 많이 받은 의사를 소개하는 방식이다. 한 언론사에서 이런 시리즈를 하는 가운데 단연 최고의 추천을 받은 인물이 있다. 바로 조보연 교수다. 국내 갑상선 분야에서는 그가 ‘단연코 1인자’로 꼽힌다는 증거다. 이런 명성 탓에 그가 진료하는 화-목요일 오전 그의 진료실 앞에는 많은 환자들이 모여든다. 하루 250명 이상의 환자를 분 단위로 쪼개가며 치료하기에 그는 여념이 없다. 자타가 공인하는 1인자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몰려드는 환자들, 환자에게 신처럼 군림할 수 있는 의사란 지위…. 게다가 유명 대학병원의 의사는 ‘의사이며, 박사이며, 교수’이시다. 한 가지만 갖고 있어도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세 가지 타이틀을 모조리 갖고 있으니, 자칫 자기도 모르게 목에 힘이 들어가고, 모든 사람을 저 멀리 아래로 내려다보는 버릇을 가지기 쉽다. 권위주의를 몸에 감고 다니는 사람의 출현이다. 언론사의 ‘名醫’ 정하기 투표에서 최고 점수 명성에 환자 대거 몰리지만 “창피한 일” 조 교수는 이런 조건을 모두 갖고 있지만, 그는 권위주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다. 한국에서 상층부 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해야 한다’고 일부 애호가들이 주장하는 골프를 그는 치지 않는다. 휘하 의료진을 우루루 몰고 다니면서 ‘내가 대장’임을 자랑하는 행동도 그와는 거리가 멀다. 술도 거의 안 마시니, 접대 받을 일도 없다. 진료실에서도 돌부처처럼 앉아 밀려드는 환자들에게 웃는 듯 안 웃는 듯한 표정으로 차분·정확하게 진료·치료를 해줄 뿐이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젊었을 때부터 ‘도사’였다. 세속을 초연한 듯,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피 튀는 경쟁’과 상관없이 살기 때문이다. ‘도사 의사 선생님’의 뒤에는 그가 찍은 불상들의 사진이 걸려 있고, 조 교수의 얼굴은 불상들과 닮았다. 바쁜 일과를 마치고 주말이 되면 그는 홀홀단신 또는 부인과 함께 산을 찾는다. 산에서도 그의 도사 기질은 발휘된다. 남에게 뒤처질세라, 다리 근육이 아프더라도 무리해가며 산을 오르는 사람도 많지만, 그는 남이 나를 앞서든 내가 다른 사람을 앞서든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집 근처의 청계산 또는 북한산을 자주 찾지만, 산에 갔다고 꼭 정해진 지점까지 가지도 않는다. 오르고 싶으면 오르고, 그렇지 않으면 내려온다. 가다가 쉬고 싶으면 쉰다. 그래서 그는 산에 가면 편하고 “산이 나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5~6년 전부터는 산행길에 동무가 하나 생겼다. 사람이 아니라 카메라 친구다. 절에 가서 불상 등을 들여다보고 오는데, 카메라 친구랑 함께 가면 집에 와서도 그 불상을 계속 볼 수 있어서 좋단다. 절 모습이나 불상 사진을 많이 찍지만, 때로는 시골 논밭에 처박혀 있는 이름 없는 불상 사진도 찍는다. 성공한 한국 남자들이 몸을 상해가면서까지 공을 들이는 3가지 취미, 즉 골프·술·사교와 그는 거리가 멀다. 단, 6년 전까지만 해도 유일한 취미로 담배를 피웠었다. 하루에 한 갑 정도로 꽤 애연가였고, 스스로도 “다른 모든 건 끊어도 담배만은 못 끊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2004년 설날 때 불교 성지순례를 갔었는데, 거기서까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구차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그날로 딱 담배를 끊었다. 여느 금연가처럼 다시 피우고 싶은 욕심도 많이 들었지만, “부처님과 한 약속인데 지켜야지”라는 생각에 완전 금연에 성공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병원의 가장 유명한 의사 중 한 명이면서도, 세속에서 한 걸음 비켜 선듯한 초연한 자세로 사는 비결을 그는 종교에서, 그리고 스승들에게서 배웠다. 우선 고교 시절부터 믿어온 불교가 그의 삶을 이끄는 기본 원리다. 게다가 서울의대에서 그에게 갑상선학을 가르친 이문호 교수, 고창순 교수 두 분 모두 한국 교수로서는 특이하게도 권위주의와는 상관없는 분들이었다. 유명한 의사·교수·박사지만 목에 힘 줄 일 없어 환자 돌볼 뿐…골프·사교·술은 “나랑 상관없는 일” 서울대 의대를 거쳐 하버드대학 의대 부속 베스이스라엘병원에서 수학할 때 조 교수가 만난 은사 시드니 잉바(Sidney Ingbar) 교수 역시 세계적 권위자면서도 권위주의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제자에게 필요한 연구 자료나 실험 재료를 구하기 위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동료나 제자 의사에게 연락하고 직접 찾아가면서까지 도와주는 잉바 교수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느꼈다”고 조 교수는 말했다. 환자가 많다는 사실은 의사에게나 병원에게나 자랑거리지만, 조 교수에게는 그렇지도 않다. 하루 250명의 환자를 진료·치료하는 그는 환자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것에 대해 “창피한 일”이라고 했다. 서울대병원이라는 이름과 ‘명의’라는 명성에 점점 더 많은 환자가 몰리지만, 환자와 정말 초 단위 대화밖에 나누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자랑하느냐는 반문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건강보험 수가가 너무 값싸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옮겨 다니며 의사의 다른 의견(second opinion)을 구하는 것도 환자가 많은 원인”이라며 “의사와 환자가 만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변함없는 태도로 환자를 맞는 비결에 대해 그는 “의사는 원래 참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거의 똑같은 말과 당부를 하루에 수백 번씩 해야 하지만, 그게 바로 의사의 일이고, “상대(환자)는 전문가가 아니니까”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의학지식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의사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돌부처 같은 그를 화나게 만드는 환자도 물론 있다. 특히 다른 병원 또는 인터넷 섭렵을 마친 뒤 병원을 찾아와 ‘수술하지 않고 약만 복용해도 낫는다’는 처방에 “왜 수술을 해주지 않느냐. 당신 엉터리 아니냐”며 시비조로 나오는 환자들이다. 그러면 조 교수도 맞대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참으려고 노력한다. “의사와 성직자는 기본적으로 비슷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