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사극 <선덕여왕>에서 미실(고현정 분)의 정부 ‘설원공’을 맡아 악역 변신에 성공한 배우 전노민(44ㆍ본명 전재룡)이 이번엔 연극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5월 7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처음 선보인 연극 <추적>에서 전노민은 지적이면서도 냉철함이 요구되는 추리소설 작가 ‘앤드류’로 무대에 올랐다. 이 역할은 2007년 같은 원작의 영화에서 마이클 케인이 연기해 주목받은 바 있다. 남성 2인극 <추적>은 연극 <에쿠우스>와 <고곤의 선물>로 유명한 작가 피터 셰퍼의 쌍둥이 형인 앤서니 셰퍼의 대표작으로, 1970년 영국의 웨스트앤드에서 처음 상연됐으며, 1972년과 2007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2007년에 개봉된 영화 속의 두 주인공 주드 로와 마이클 케인의 연기에 많은 관객이 감탄했다. 개막을 앞두고 <추적>의 연습실을 찾았다. 연극 연습을 하고 각종 매체와 인터뷰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는 전노민은 그래도 긴장을 잃지 않고 인터뷰에 응했다. 그의 근황과 연극에 도전한 사연,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영화 <인플루언스>와 <가족사진>을 촬영했어요. 사실 얼마 쉬지 않았는데, 다들 제가 오랫동안 노는 줄 알고 ‘요즘 뭐 하냐’고 묻더라고요. 출연한 작품 중 대작이 많아서 그런지 조금만 쉬어도 그런 반응이 나오네요.” -<추적>은 첫 연극인데요, 출연을 망설이진 않았나요? “망설였죠. 연극은 늘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나지 않아서 못 했거든요. 그리고 집사람(배우 김보연)이 반대를 많이 했어요. 연극은 모든 걸 끄집어내야 하는데, 저의 모든 걸 무대에서 한 번에 풀고 나면 앞으로 배우 생활에 지장을 줄 거라는 이유 때문이죠. 그렇지만 앤드류는 꼭 하고 싶은 매력적인 역할이었어요. 또 <추적>은 마이클 케인과 주드 로가 출연한 영화의 원작인데다,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는 데에도 매력을 느꼈습니다.” -앤드류는 어떤 인물입니까? “젊을 때는 잘나갔지만, 이제는 한물간 추리소설 작가입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부인마저 젊은 남자한테 빼앗겨 오쟁이를 지게 되죠. 부인을 빼앗길 것을 알지만, 그냥 빼앗기진 않겠다고 최후의 발악을 합니다. 그래서 젊은 남자(마일로)와 고도의 심리전을 펼친 끝에 급기야 살인까지 하죠.” -냉철하고 지적인 앤드류와 자신의 닮은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가만히 있으면 차가워서 말을 못 걸겠다고 하더군요. 그런 모습이 닮지 않았나 싶어요.” -앤드류는 교활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교활하다는 말은 좋은 뜻으로만 보자면 두뇌 회전이 빠르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는데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교활할 때는 언제인가요? “일을 할 때나 중요한 결정을 할 땐 두뇌 회전이 빠릅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선 머리를 잘 안 쓰기 때문에 둔하죠.” -36세 때까지 외국계 항공사에서 근무하셨는데요, 어떤 직장인이었나요? 일을 찾아서 할 것 같은 인상입니다만…. “맞아요. 저랑 같은 직위 중에서 제가 가장 어렸거든요. 모두 저보다 5~6살 많았어요. 그만큼 승진이 빨랐다는 얘기죠(웃음). 회사에 다닐 때는 아침 6시에 출근해서 새벽 1시에도 퇴근하곤 했어요. 하루는 보고서를 만들어 사장님한테 제출했더니, 사장님 말씀이 ‘내 평생 이런 보고서는 처음 받아본다’면서 보너스도 주셨고요. 그리고 후배들 월급 올려줄 때가 되면 사장님을 찾아가 담판 짓는 일도 제 역할이었어요. 다른 부서의 어떤 직원이 영업을 잘 못해서 한동안 제가 그 직원의 옆자리에 출근해 일을 봐준 적도 있고요. 저는 꼭 해야 하는 목표가 있으면 어떻게든 해낸다는 각오를 가진 직장인이었어요. 그 회사를 관둘 땐 저의 부하 직원들이 모두 다 관뒀어요. 저처럼 자기들을 생각해주는 상사가 없는데 회사에 있을 이유가 없다면서요.” -배우가 된 일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사람이 간사한 이유는 힘들 땐 후회하지만 배부르고 좋아지면 잊기 때문이죠. 제가 회사를 관두고 연예인이 된다고 했을 때는 주위에서 저더러 ‘바람 들었다’고 했어요.”
-<추적>의 배우 중에서 전노민 씨가 가장 대중에게 알려진 배우입니다. 그만큼 배우 전노민만 보고 이 연극을 찾는 관객도 있을 텐데요, 이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영화 <추적>을 볼 때 잠깐 졸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연기할 때 관객이 졸면 어쩌지?’하는 걱정을 하기도 해요. 어제는 지인이 연습실로 간식을 갖고 오셨는데요, 우리가 연습하는 모습을 잠깐 보시더군요. 그런데 10분쯤 있다가 간다면서 ‘연극이 너무 어렵다’고 하시는 거예요. ‘어렵다’는 말은 안 좋게 말하면 ‘지루하다’는 의미거든요(웃음). 티켓 판매는 예술의전당의 고정 회원이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진 않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여서 아는 사람들한테 사 달라고 조르고 있어요. 제작자 입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 어떤 사람한테는 ‘100장만 사줘요’라고 말했는데, 매니저가 저더러 ‘100장이 얼만 줄 아느냐’고 묻는 거예요. 50만 원이라고 생각했는데, 매니저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보니 티켓 한 장에 5만 원이니까 500만 원이란 계산이 나오는 거예요(웃음). 그리고 연극 연습할 시간도 모자라는데 인터뷰도 해야 하고요. 오늘도 아침에 라디오 출연, 지금 인터뷰, 오후에 인터뷰가 또 있어요. 하루에 인터뷰가 3건이나 되죠. 내일은 전주국제영화제 레드 카펫 행사에도 집사람이랑 가야 해요. 시간이 너무 없어서 집사람만 가라고 했는데, 어제 저녁에 조직위원장님한테서 전화가 온 거예요. 아무래도 가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도 연극에 계속 출연할 생각이신가요? “못 할 것 같아요.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니까요. 공연 기간도 그렇지만, 연습 때는 하루 종일 해야 하거든요. 집사람도 못하게 말리고요.” -전노민 씨 인터뷰가 대개 부인 김보연 씨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부인에 대한 질문이 거북하진 않으세요? “그렇진 않습니다. 처음부터 저는 ‘김보연의 어린 남편’으로 알려졌으니까요. 우리가 잊히지 않는 한 그런 질문은 계속될 것 같아요.” -최근 김가연·임요환 등 나이 차이가 많은 연상연하 커플이 화제입니다. 모범적인 연상연하 부부의 본보기로 회자되는데요, 비결이 궁금합니다. “저는 별로 어렵지 않은데, 제 이야길 들은 사람들은 모두 어렵다고 하더군요. 방법은 간단해요. 서로에게 싫은 말, 싫은 행동을 안 하면 돼요. 집사람을 만나기 전에 저는 주로 한식만 먹었는데, 아내는 중식이랑 양식을 좋아해요. 저는 아내의 입맛에 맞춰주려고 노력해요. 식당에 가면 먼저 아내에게 메뉴판을 양보하죠. 그리고 집을 나설 때 제 복장이 집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땐 바로 바꿔 입고요. 이럴 때 남편들은 대개 뭘 그러냐면서 귀찮아할 테죠. 나갈 때 기분 좋게 나가야 하루가 더 즐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아내의 의견을 따르는 거죠. 그런 것들을 지키니까 부부 사이가 좋은 것 같아요.” -일본에서 ‘꽃중남’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최근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과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얼마 전에 일본에도 다녀왔고요. 일본에 갈 때 집사람이 함께 간다고 해서 ‘내가 오는 줄 누가 알기나 하겠냐’며 혼자 갔는데, 공항에 많이 나온 일본 팬들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음식점에서는 제 사진이 실린 잡지를 가져와 사인을 부탁한 팬도 있고요. 이 사람들이 과연 날 진짜로 좋아해서 그러나 하고 생각해보는 단계입니다.” -끝으로, 연극 <추적>을 통해서 전노민의 어떤 면을 부각시키고 싶은가요? “<사랑과 야망>과 <선덕여왕>에서처럼 전노민은 준비하는 배우란 사실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 아마 <추적>으로 제 연기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인터뷰 후기>… 질문을 하기 미안할 정도로 인터뷰를 시작할 때의 전노민은 몹시 피곤해 보였다. 그러나 자신보다 상대를 더 챙기는 그의 모습에서 ‘성실하고 젠틀한 남자’라는 이미지를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첫 연극이지만 방송에서 보여준 노련함과 카리스마가 무대에서도 발휘돼 ‘연극배우 전노민’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팔방미인 배우가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