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불멸의 이순신>에서 성웅 ‘이순신’으로, 의학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출세욕 가득한 외과의사 ‘장준혁’으로, 음악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결벽증이 심한 마에스트로 ‘강마에’로, 지난해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죽음을 앞둔 루게릭병 환자 ‘종우’로, 모든 작품에서 기대 이상의 연기를 해내 대중을 깜짝 놀라게 한 배우 김명민. 그가 이번엔 변화무쌍한 배역으로 대중을 또다시 놀라게 할 채비를 마쳤다. 7월 초에 개봉되는 영화 <파괴된 사나이>는 유괴된 딸을 둔 아버지와 냉혈한 살인마의 사투를 그린 작품. 이 영화에서 김명민이 맡은 ‘주영수’는 신(神)에 대한 믿음 때문에 촉망받는 의사에서 목사의 길을 선택하지만, 딸이 유괴되자 신을 버리고 밑바닥까지 타락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8년 뒤, 죽었다고 생각한 딸이 유괴범과 함께 나타나자 뜨거운 부성애도 보여준다. “<파괴된 사나이>의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여러 캐릭터가 공존하는 주영수를 내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섰어요. 그러면서도 욕심이 났고요. 한 인간의 처절하면서도 인간적인 모습들이 너무 와 닿았거든요.” (김명민) <파괴된 사나이>의 제작보고회가 6월 7일 오전 11시 서울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취재진의 뜨거운 관심 속에 열렸다. 이날의 스포트라이트는 김명민에게 쏟아졌다. 이곳에서 만난 김명민과 <파괴된 사나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목사 역할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은 뭔가요? “저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어요. 그래서 주영수의 직업 중 가장 친근하고 자신 있는 역할이 바로 목사였습니다. 특별히 준비한 게 있다면, 영화를 촬영하기 전에 설교하는 목사님의 모습을 뚫어지게 본 거죠.” -연기를 위해 3일 동안 잠을 안 잤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주영수가 유괴범을 쫓는 과정에 PC방에서 메일을 조사하는 모습이 나와요. 긴장감 속에서 유괴범을 쫓는 상황이기 때문에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안 되니 잠을 잘 수가 없죠. 하지만 저는 주영수가 아니니까 당연히 졸리잖아요. 잠을 못 잔 얼굴로 분장을 해도 티가 나는 것 같고요. 집에서 잘 자고 와서 주영수를 연기하기가 좀 그랬어요. 그래서 안 자려고 노력했고, 촬영할 때 그런 모습이 사실적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드라마 <하얀 거탑>을 찍고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후유증이 없었나요? “<하얀 거탑>에서 장준혁이 쓸쓸한 죽음을 맞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마치 나도 장준혁과 같이 죽는 듯한 착각이 들었죠. 준혁이 죽고 촬영도 끝났는데 내일부터 뭘 해야 하나 하는 허탈감도 밀려왔고요. 1973년에 일본에서 방영했던 <하얀 거탑>의 남자 배우도 자살했다고 들었는데, 그 심정이 이해가 갔어요. 하지만 스스로 의지가 강하다고 믿기 때문에 잘 딛고 일어선 것 같아요. <파괴된 사나이>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때문에, 영화가 끝나면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망가지고 파괴돼가는 과정에서는 힘들고 지치겠지만, 영화가 끝나면서 주영수도 밝아지고 본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저도 그렇게 될 거라 믿었고, 실제로도 기분이 좋고 큰 짐을 벗었어요.” -실제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영화 후반에 신을 저주하는 모습을 연기하기가 힘들지 않았나요? “제가 집사예요. 그런데 호칭이 익숙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김 집사님’ 하면 못 알아들어요(웃음). 그리고 고모부와 삼촌 두 분이 목사님이고, 아버지는 권사님이세요. 이번에 아들이 목사 역할을 맡았다고 해서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했다던데, 내용에 대해서는 말씀을 안 드렸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내 아들이 목사 역할을 맡았다’고만 알고 계시죠. 아마 예고편을 보셨다면, 이번 영화 이야기는 입 밖에도 안 꺼내실 거예요(웃음). 그런데 영화 속의 인물이 그런 거지, 제가 신을 저주하지 않으니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연기를 잘한다고 네티즌이 붙여준 수식어 ‘명본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상당히 부담됩니다. 언제부터 그 수식어가 생겨났는지 모르지만, 훌륭한 연기를 펼치는 분들이 보면 비웃을 것 같아 손발이 오그라들 때가 많아요. 신문 기사 등 모두가 공개적으로 볼 수 있는 자료에서 그 말(명본좌)이 쓰이면 정말 부담스럽더라고요.” “아뿔싸! 이놈의 입방정” 김명민 외에도 <파괴된 사나이>에는 주목할 만한 배우가 또 있다. 영수의 아내 박민경 역의 박주미와 냉혈한 살인마 최병철 역의 엄기준이다. 두 사람에게는 <파괴된 사나이>가 스크린 데뷔작이라는 공통점이 있는가 하면, 이날 제작발표회에서 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나쁜 남자>의 오연수는 원래 박주미였다?…“무슨 소리! 오연수가 1순위”
<파괴된 사나이>는 박주미가 SBS 사극 <여인천하> 이후 8년 만에 컴백을 알리는 작품이다. 그동안 CF와 드라마에서 단아한 이미지로 사랑받은 박주미는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 활동을 접어 궁금증을 자아낸 배우 가운데 한 사람이다. 때문에 그녀의 복귀작에 많은 관심이 모였다. 박주미는 복귀작으로 <파괴된 사나이>를 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작품 여럿에서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는데, 김명민 씨와 김남길 씨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드라마(SBS <나쁜 남자>)를 보면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 나이에 멋진 연하와 연기하는 게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싶었다”면서도 “지금은 김명민 씨를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주미의 이 말은 화제가 됐고, 박주미는 이날 하루 종일 국내 포털사이트에서 상위 검색순위에 올랐다. 박주미의 말에 따르면, <나쁜 남자>에서 오연수가 연기하는 홍태라 역은 원래 박주미의 것이었고, 박주미가 출연을 마다해 오연수에게 차례가 돌아갔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이에 대해 드라마 <나쁜 남자>의 제작사 (주)굿스토리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굿스토리 측은 8일 보도자료를 내고 “오연수가 태라 역 캐스팅 1순위였으며, 그녀의 스케줄이 안 맞을 때를 대비하여 박주미 씨를 비롯해 몇 명의 여배우들에게 스케줄 확인을 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사이코패스 연기하더니 이상해졌나?”…엄기준의 돌발 발언에 분위기 ‘싸~’
<살인마 잭> <헤드윅> <몬테크리스토> <김종욱 찾기> 등의 뮤지컬에서 이름을 먼저 알린 엄기준은 여러 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기까지 얻은 뮤지컬 출신 스타다. 그는 선하고 지적인 이미지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런 엄기준이 이번 영화에서 냉혈한 살인마로 연기 변신을 꾀한다는 소식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엄기준이 맡은 최병철은 선한 외모로 아이들을 납치하고 살해하는 행동에 일말의 죄의식이 없는 극악무도한 사이코패스다. 이날 공개된 예고편에서 엄기준은 선한 눈빛 뒤에 악마를 감추고 있는 모습으로 소름을 돋웠다. 하지만 이보다 더 취재진을 놀라게 한 것은 엄기준의 돌발 발언이었다. 그는 ‘지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아닌 살인마 역할을 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사람 죽이는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해 분위기를 경직되게 했다. 엄기준은 사회자와 취재진의 싸늘한 반응을 눈치챈 듯 “특별히 젠틀한 이미지에서 변신해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살인마 역할이 평소에 못 해본 거라서 해보고 싶었던 것”이라는 말로 분위기를 수습하려 했지만, 영화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에 “살인 충동을 한 번이라도 느낀 관객이 보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또 돌발 발언을 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