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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성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우여곡절 끝에 개봉한 영화 <악마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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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83호 이우인⁄ 2010.08.16 14:15:05

연기력과 티켓 파워를 동시에 지닌 배우 최민식과 이병헌이 출연하고, 김지운 감독, 이모개 촬영감독 등 스태프 대부분이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의 드림팀으로 구성된 점, 국내 3대 배급사 중 하나인 쇼박스가 배급을 맡은 점 등 흥행의 성공 요건을 모두 갖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그 베일을 벗었다. 그러나 하마터면 이 영화를 보지 못할 뻔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지난달 27일과 8월 4일 두 차례에 걸쳐 “도입부에서 시신 일부를 바구니에 던지는 장면, 절단된 신체를 냉장고에 넣어 둔 장면 등은 인간의 가치를 현저히 훼손시킨다”는 이유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영화는 현재 국내 개봉이 어렵다. 하지만 개봉일을 이틀 앞두고 제작사는 이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시간 넘게 관객을 롤러코스터에 앉혔다 내려놓는 영화 8월 11일 오후 4시50분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개봉일을 하루 앞두고 언론·배급시사회를 가졌다. 영화와 배우에 대한 관심은 취재진의 숫자로 어림짐작할 수 있는데, 이날 영화관 로비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영화 시작은 예정된 시각보다 40~50분 늦춰졌다. 평소라면 취재진이 거세게 항의를 하거나 보이콧을 해도 시원찮을 엄청난 무례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화를 꾹꾹 누르고 앉아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영화길래, 어디 두고 보자’와 같은 표정들이었다. 그 표정에는 ‘소문난 잔칫상에 먹을 것 없다’는 푸념보다는 영화의 내용과 완성도가 이날 기다린 노력과 시간을 배신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깔려 있는 듯했다. 약 두 시간 동안 상영된 <악마를 보았다>를 감상한 느낌은 숨을 조였다 풀기를 반복하는, 롤러코스터를 탈 때의 기분과 닮았다. 롤러코스터가 올라갈 때의 안도감, 그리고 내려갈 때의 흥분과 기대감, 또 롤러코스터가 속도를 높여 아래로 떨어질 때의 긴박감과 짜릿함·공포 등이 <악마를 보았다>에 적절하게 섞여 있었다. 그 기분이 롤러코스터의 운행 시간인 3~5분을 넘어 두 시간 내내 이어지니 기진맥진할 수밖에. 내용은 단순하다. 약혼녀를 연쇄살인범 경철(최민식 분)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국정원 경호요원 수현(이병헌 분)의 복수극이다. 경철은 살인을 벌레 잡듯이 하는 파렴치한 인물로, 수현의 약혼녀를 토막살인해 유기한다. 뛰어난 무술 실력과 냉혈한 카리스마를 지닌 수현은 용의자를 찾는 과정에서 경철이 범인임을 확신하고 경철을 쫓는다.

그런데 영화의 전반부에서 범인 경철을 찾아내기 때문에 ‘설마, 이게 끝?’이라는 허탈감이 먼저 느껴진다. 하지만 극 중 이병헌의 대사처럼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영화 초반에 범인을 찾는 대목은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와 닮았다. 다만 <추격자>는 경찰을 전직 형사인 주인공(김윤석 분)과 연쇄살인범(하정우 분) 사이에 끼우고 ‘숨었다 나타났다’하는 숨 막히고 약오르는 추격을 그렸다면, <악마를 보았다>에서 경찰은 배경에서 바라만 볼 뿐 카메라의 초점은 온통 이병헌과 최민식에게 쏠려 있다. 또한 추격과 복수를 하는 모습이 격하지 않고 고요한 점도 <추격자>와 다른 점이다. 하지만 한시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점은 <추격자>나 <악마를 보았다>나 마찬가지다. 또 하나의 즐거움은 이병헌의 시원시원한 액션에 있다. 경철을 잡았다 풀어주기를 반복하여 약혼녀의 복수를 하는데, 무술 실력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막힘이 없다. 조마조마하다가도 경찰까지 제압하는 실력은 외화 <테이큰>의 리암 니슨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복수 뒤에는 수현의 고통이 이병헌의 눈빛에서 느껴지기 때문에, 통쾌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관객도 함께한다. 제한상영가를 받았던 영화인 만큼 수위도 높다. 심장과 비위가 약한 사람은 심사숙고하여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영화에서 폭력은 도구일 뿐’이라는 이병헌의 설명이 공감된다는 사실이다. 영화가 끝난 뒤, 잔인한 장면보다는 높낮이를 따질 수 없는 이병헌과 최민식의 연기력, 김지운 감독의 깔끔하고 절제된 연출, 마지막에 남긴 복수의 여운 등이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보다 더 많이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따라서 폭력과 살인·강간 등 선정성이 있는 장면에서 눈을 감아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악마를 보았다>의 제목에 담긴 심오한 의미 <악마를 보았다>의 원래 제목은 <아열대의 밤>이었다고 한다. 김지운 감독은 “당시 배경이 여름이어서 그렇게 지었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아열대의 밤>이 <악마를 보았다>가 됐을까? 김지운 감독은 “니체의 <선악의 피안>에 나오는 구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선악의 피안>에는 ‘괴물을 쫓는 자는 자신이 괴물이 될 것을 주의해야 한다’ ‘심연(深淵)을 오래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당신을 오래 들여다볼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악마를 보았다>의 주인공 수현의 상태와 겹쳐진다. 김 감독은 “경철이라는 괴물을 보고 복수하면서 수현 또한 괴물이 되어가는 아이러니와 부조리 등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만나지 말았어야 될, 태어나지 말았어야 될 ‘악마를 보았다’는 말이 가장 적합한 제목이라 생각했다”고 제목의 유래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악마를 상대할 때 그 자신이 악마가 된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는 사실, 짐승을 잡기 위해 짐승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뼈저리고 실감 나게 만들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악마를 보았다>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이병헌은 해석한다. 그는 “많은 사람이 제목만 보고 내가 악마인지 최민식 선배가 악마인지를 물어보는데, 이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악마성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그 악마성은 꼭 잔인한 살인이나 폭력에만 나오는 게 아니고 인터넷 문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네티즌의 악플(악성 댓글) 등 인터넷 문화의 안 좋은 면에 대해 다들 말을 많이 하지만, 정작 악플을 달면서도 자신의 행동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병헌은 “이 영화에는 다른 복수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 복수의 통쾌함보다는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피곤해하는 수현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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