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덕 기자 광주·전남 CNB뉴스 cnbnews@naver.com 전남 담양군 창평에는 슬로시티로 지정된 ‘삼지내마을’이 있다. 아름다운 옛집과 돌담, 전통 방식 그대로의 음식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다. 고풍스러운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 소리가 늦여름 더위까지 식혀주는 이곳에는 현대 문명의 편안함보다 전통 방식의 따뜻함 속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백제 시대(1510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삼지내마을은 2007년 12월 국제슬로시티 연맹에 의해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삼지내라는 마을 이름은 동쪽에 월봉산, 남쪽에 국수봉이 솟아 있고 마을 앞에는 물이 흘러 ‘봉황이 날개를 뻗어 감싸 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삼지내의 행정구역은 삼천리이다. 삼천(三川)이란 월봉산에서 시작한 월봉천(月峰川)·운암천(雲岩川)·유천(柳川)을 말한다. 이들 세 갈래 하천 물이 모인다고 해서 삼지내(천)가 됐다. 주민 459명이 사는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담쟁이 넝쿨이 모자처럼 얹힌 돌담길이 객을 반긴다. 약 3.6km나 이어지는 돌담길은 개성 있는 돌과 흙으로 정갈하게 세워져 세월의 흔적을 보는 듯하다. 이곳에는 1912년 조선 후기 애국 애족 계몽운동가인 고재선의 옛집, 1908년대 창평상회를 건립해 일제의 자본 침탈에 대항하고 이 지역의 일본인 상권을 몰아낸 배일 저항운동가 고재환의 옛집, 한말 민족운동의 근원지 춘강 고정주 고택 등 장흥 고 씨들의 가옥이 속속 나타난다. 한국 최초의 나일론을 개발한 이승기(1905~1996) 박사의 생가, 문화 유 씨의 종가인 유종헌 가옥 등도 옛 모습 그대로 삼지내마을을 지키고 있다. 세월도 쉬어 가는 옛 한옥에서 느끼는 멋과 여유 장흥 고 씨가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임진왜란 전후다. 의병장으로 알려진 제봉 고경명(高敬命:1533~1592년)은 1590년 가을 동래부사가 되었으나, 1591년 여름 파직되어 광주로 돌아와 살고 있었다. 이듬해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경명은 5월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우기 위해 북쪽으로 진군, 7월 금산에 이르렀다. 고경명·고인후 부자는 이곳 와평(臥坪:눈벌)에서 왜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다. 고경명의 시신은 화순현 흑토평에, 고인후의 시신은 창평현 수곡리에 묻혔다. 고경명의 아들인 학봉(鶴峰) 고인후(高因厚: 1561~1592년)가 창평에 묻힌 것은 처가인 함풍 이 씨가 창평에 세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인후는 32세로 죽었지만, 함풍 이 씨와의 사이에 이미 부림·부천·부즙·부량 네 아들이 있었다. 이들이 창평에 터를 잡고 살면서 장흥 고 씨가 퍼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창평 삼지천 마을의 고 씨들은 모두 고인후의 후손이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삼지내마을 돌담길을 걷다 보면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담장 밖까지 들리는 듯하다. 그중 고재선 고택은 사랑마당과 안마당, 식료창고 등을 갖추고 있다. 중문에서 안채로 출입할 때 안채가 직접 노출되지 않게 ㄱ자형으로 설계한 선조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건축 공간이다. 또한 ㅁ자형 한옥으로 안채와 문간채, 사랑채, 곳간 2채, 삼칸채, 뒤채로 이루어진 고재환 고택은 전통 목재 건축의 멋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남도 지방의 여느 양반집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지어지고 보존 상태도 우수하다. 뼈대가 굵고 치목이 잘 돼 있으며 짜임이 건실해 전통 목조 건축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다. 한말 민족운동의 근원지 춘강 고정주 고택은 전남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ㄷ자형 한옥이다. 양반 집의 기본 구성 요소인 문간채, 사랑채, 중문간채, 안채, 곳간 등을 두루 갖춰 부농형 양반 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건물의 뼈대가 굵고 간살이도 넓으며 구조 형식도 우수하다. 솟을대문은 당당한 위용을 자랑한다. 창평면 장화리 장전마을은 전주 이 씨 집성촌이다. 이곳 이씨들은 흔히 ‘장전 이 씨’로 불리기 때문에 역사성과 지역성을 살려 문화재 명칭을 ‘창평 장전 이 씨 고택’으로 지었다. 남부 지방의 전형적인 부농형 양반 집으로 문간채, 사랑채, 중문간채, 안채, 곳간 등을 두루 잘 갖췄다. 건물의 구조 형식도 우수하다. 사랑마당에는 방지가 있고, 이승기 박사의 생가라는 점에서 현대사적 의미도 크다. 와송당의 정침 유종헌 가옥은 일명 ‘와송당의 정침’이라고 불리는 문화 유 씨의 종가다. 송강 정철이 문화 유 씨 석헌의 손녀와 결혼해 신방으로 사용하기도 한 이곳은 본래 정침(안채)이 ‘터진 입구자형(ㅁ)’으로, 원래는 대청 8칸(정면 4칸, 측면 2칸)을 중심으로하여 양측 횡각에 부엌과 방이 있었다. 그러나 1919년 정침을 5칸으로 개조하고 2칸 대청과 좌우에 방 2칸과 좌편에 부엌 1칸 구조로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는 양횡각이 없고 대청만 남아 있는, 전남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삼천리 하심천 마을 논 가운데 2층 누각 형태로 세워진 남극루는 1830년대 장흥인 고광일을 비롯 30여 인에 의해 지어졌다. 노인들이 편안한 여생을 기원하고 즐거이 지내라는 의미로 옛 창평 관아 문루를 옮겨 지은 누각이다. 남극루에서는 마을의 전채 풍광과 뜨겁게 타오르는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슬로시티의 진짜 맛은 음식에 있지요” 삼지내마을은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답게 전통 음식문화를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담양의 명물 대나무를 이용해 만든 죽염 장류는 특히 유명하다. 1996년 농림식품부로부터 전통식품으로 지정받았다. 360여 년을 이어온 ‘고 씨 양진제 문중 10대 종가’의 전통을 계승한 기순도 여사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이어져 내려온 죽염을 전통 식품과 접목시켜 죽염된장·죽염고추장·죽염간장을 비롯해 죽염청국장·죽염김부각 및 죽염장아찌류를 생산하고 있다. 조상의 지혜를 현대인의 건강으로 연결시키는 ‘슬로푸드’의 전통이 살아 있는 현장이다. 또 창평 지역 쌀로 만드는 창평쌀엿은 치아에 들러붙지 않기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이 지역에 부임한 현감들이 궁중 대감들에게 선물할 때 사용한 엿으로 유명하다. 창평 쌀엿은 먹을 때 바삭바삭하며 입안에 들러붙지 않고, 먹고 나도 찌꺼기가 남지 않는다.
맛도 독특하다. 엿을 만들 때 사용되는 엿기름은 맥아에 싹을 틔워 만든 것으로, 맥아당을 분해시키는 효소가 들어 있다. 이 엿기름은 식혜를 만들 때 당을 분해시키는 용도로 많이 이용되지만, 위장병·소화불량을 가진 사람이 민간요법으로 엿기름을 끓여 보리차처럼 마시기도 한다. 이 엿기름을 주 원료로 창평에서 생산하는 한과는 만드는 방식도 옛날 그대로이고, 청정 지역에서 생산된 우리 농산물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맛과 향이 일품이다. 그 옛날 어머니가 추운 겨울날 온돌방의 따뜻한 온기를 이용해 만들어주시던 그 맛 그대로의 한과를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으며, 전통 한과 제작 과정에 온 가족이 참여해 직접 만들어보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옛스러운 한옥을 따라 굽이굽이 돌담길을 돌아나가자면 감칠맛 나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솥단지에 푹 끓인 국물에 돼지 내장을 풍성하게 얹어 뚝딱 내주는 창평 국밥의 그윽한 냄새다. 그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에 입소문으로 찾아온 외지 손님으로 북적인다. 이곳 국밥은 누린내가 없고 국물이 맑고 시원한 것이 특징이다. 창평시장 일대에 자리 잡은 국밥거리는 시골 장터에서 느끼는 손맛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곳이다. “직접 해보면 진짜 맛을 느낄 수 있어요” 삼지내마을에는 학생들이 쉬는 이른바 놀토(매월 두 번째 토요일)마다 ‘슬로시티 달팽이 시장’이 열린다. 관광객이 전통 문화와 슬로푸드를 체험할 수 있고, 마을 주민들은 직접 재배한 농산물이나 특산품을 판매하는 장터다. 아나바다 벼룩시장과 물품교환·골동품 장이 선다. 창평 명물 쌀엿과 한과·된장·장아찌 같은 전통 식품들이 관광객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또한 계절에 따라 떡메치기와 보리타작, 작두샘 체험, 투호놀이·왕윷놀이·왕장기·운수대통·널뛰기 등 전통놀이 체험 코너도 운영된다. 특히 현장 방문자가 직접 참여하는 ‘느림보 자전거 경주’에서는 가장 느리게 타는 꼴찌가 일등이 되는 ‘슬로 경주’의 이색적인 재미도 맛볼 수 있다. 다가올 추석에는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고향 사람들, 그리고 외지 관광객을 위해 특별 행사도 펼쳐질 예정이다. 삼지내 고가에서 펼쳐질 송편 만들기 체험을 비롯해 ▲장아찌와 쌀엿 등 슬로푸드 만들기 ▲한옥에서 전통 수제차 맛보기 ▲감을 이용한 천연 염색 ▲전통 민속놀이 ▲장작 패기 ▲가마솥에 송편 찌기 등의 행사가 마을 곳곳에서 열린다. 농경사회의 중요한 봄맞이 행사인 정월대보름 때는 삼지내마을에서 ‘대보름 창평동제’가 열린다. 창평슬로시티위원회 주관으로 슬로시티마을 대동제, 지신밟기, 달집태우기, 대나무 연 만들기, 쥐불놀이 등 민속놀이가 전개돼 느릿느릿 흘러가는 옛 마을에서 펼쳐지는 전통놀이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 “기와 하나에도 옛 손길 담았어요” [인터뷰]창평 ‘슬로시티’ 송희용 추진위원장
-‘슬로시티’의 유래가 궁금하다. 언제 슬로시티 운동이 시작됐나? “슬로시티는 1999년 이탈리아에서 패스트푸드에 반대하는 슬로푸드 운동을 벌인 데에서 시작됐다. 이탈리아의 작은 네 도시의 시장이 모여 산업화와 대도시화로 인간이 본래 모습을 잃어버리고 물질만 추구하면서 사는 모습을 걱정하여 ‘인간답게 사는 마을’인 슬로시티 운동을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2002년 이탈리아 그레베 시를 공식적으로 첫 슬로시티로 지정하면서 본격화됐다. 슬로시티 운동은 지역이 원래 가진 고유한 자연 환경과 전통 문화를 지키면서 지역민이 주체가 되어 지역 살리기 운동을 벌이자는 게 기본 취지다. 말 그대로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삶에서 벗어나 느리게 살자는 철학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도시를 이르는 말이다. 현재 전 세계 17개국 123개 도시가 가입돼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삼지내마을'이 슬로시티로 지정된 이유는? “담양은 잘 아다시피 가사문학의 산실로 소쇄원, 면앙정, 송강정 죽녹원, 메타세쿼이아길 등 천천히 걸으면서 조상의 지혜와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생태관광도시다. 특히 창평 '삼지내마을'은 슬로푸드로 대변되는 기순도 장류와 한과·쌀엿의 식품명인 세 분이 전통 조리법을 잘 보존하고 있어 슬로시티 실사단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오래된 고택과 등록문화재 265호로 지정된 돌담길 등 전통 문화를 잘 보존한 데서도 높은 점수를 받아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창평 슬로시티가 추구하는 방향과 사업 계획은? “창평 슬로시티는 슬로푸드의 대명사로 불릴 수 있도록 슬로푸드 관련 체험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고 이를 통해 주민 소득 증대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구체적으로는 ▲아스팔트를 걷어낸 친환경 황토길과 실개천 ▲아름다운 돌담길·고택 ▲집집마다 특색 있는 슬로푸드 체험 ▲한옥 민박 ▲상월정 생태탐방로 ▲자전거 도로를 활용한 주변 관광지 탐방 등의 사업이 있다. 도시인들이 창평 슬로시티를 찾아오기만 하면 옛 문화와 생활을 체험하고 휴식하면서 재충전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시간과 함께 숙성되는 우리 전통 음식의 보급도 중요한 과제다. -슬로시티가 관광을 상품화한다는 발상은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우리가 너무 상업성을 띤 것은 아니다. ‘원주민이 행복해야 관광객도 행복하다’는 게 슬로시티의 기본 모토다. 슬로시티로 지정되고 관광객이 하나둘씩 찾아오다 보니 주민들의 자유와 사생활이 방해를 받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가정집에 관광객이 불쑥 들어오는 통에 불편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불편함에는 무언가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서 주민들이 직접 텃밭을 일궈 가꾼 농작물을 판매해 소득을 얻는 정도의 보상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곳의 고택과 돌담길 등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관리에 어려운 점은 없나? “국가의 문화재 관리는 ‘앗, 이거다’라고 할 만한 정답이 없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문화재 관리는 너무 허술하다. 여기 돌담만 하더라도 문화재 등록 뒤 기와 보수공사를 했는데 기와 종류가 세 가지나 된다. 처음에는 시멘트 기와, 나중에는 새 기와로 우리 정서에 안 맞는다. 이런 걸 보고 외부인들이 ‘한국 문화재 관리의 실태’라고 지적한다. 슬로시티 위원회가 그간 해온 일 중 하나가 사찰·문화재 보수 과정에서 나온 옛 기와를 구해 돌담 기와를 바꾸는 작업이다. 앞으로 보수하는 돌담은 모두 옛날 기와로 할 것이다. 정부에서도 문화재 관리 때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