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가수(이하 아이돌)들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TV 가요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은 이미 ‘아이돌 세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돌의 단순한 출연을 넘어, 아이돌의 일상을 소개하고 최강 아이돌을 겨루는 ‘아이돌 전문 프로그램’도 안방극장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케이블 오락 채널 MBC에브리원은 여자 연예인들이 아이돌 그룹의 숙소에서 가사 도우미를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카메라에 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아이돌 메이드>를 지난달 새롭게 편성해 방송 중이며, MBC는 ‘국민 아이돌’이 되기 위한 미션을 수행하는 <꽃다발>을 매주 일요일 오후 4시 10분에 방송하고 있다. TV 프로그램에서 노래와 춤과 끼를 발산하던 아이돌의 영역은 영화와 드라마·뮤지컬 등 연기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점차 아이돌의 출연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와 관련, 9월 1일 첫 방송을 앞둔 MBC 새 수목 드라마 <장난스런 키스>를 연출한 황인뢰 감독은 “캐스팅 과정에서 많이 느꼈는데, 배우 추천 리스트를 보니까 거의 다 아이돌이더라”며 “1년 사이에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최근 연기 분야에 뛰어든 아이돌과 성공적인 연기자로 발돋움한 아이돌의 예를 살펴봤다. 아이돌 출연의 이점과 함께 문제점과 그 해법도 짚어본다. “이제 연기자로 불러다오!” 최근 톱 아이돌 그룹의 멤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와 뮤지컬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먼저 KBS2 월화 드라마 <구미호: 여우누이뎐> 후속으로 8월 30일 첫 방송되는 <성균관 스캔들>은 그룹 동방신기의 믹키유천이 연기자로 데뷔하는 드라마로 화제를 모았다. 믹키유천은 극 중 까칠한 성균관 유생 ‘이선준’ 역할을 맡아 박민영·송중기·유아인·김갑수·서효림 등 기존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다. 하지만 연기 경험이 전무한 믹키유천이 공중파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나선 데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본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MBC 드라마 <장난스런 키스>의 주인공은 아이돌 그룹 SS501의 리더 김현중이다. 믹키유천과 달리 김현중은 지난해 초에 <꽃보다 남자>를 통해 연기 데뷔 신고식을 마쳤다. 하지만 그가 <꽃보다 남자>에서 연기한 윤지후는 구준표(이민호 분)·금잔디(구혜선 분)보다 비중이 적은 조연급 주연이었다. 따라서 <장난스런 키스>는 김현중의 첫 주연작이라고 할 수 있다. 김현중은 “<꽃보다 남자>보다는 인정을 받겠다는 생각으로 출연을 결정했다”는 각오를 밝혔다. 드라마에서 고배를 마셨던 동방신기의 리더 유노윤호는 9월 8일부터 10월 24일까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궁>으로 다시 한 번 자신의 연기자 가능성에 도전한다. 그는 만화와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이 뮤지컬에서 주인공인 황태자 ‘이신’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유노윤호는 “여러 분야에서 열심히 하고 싶은데, 춤과 노래와 연기가 합쳐져 관객에게 희로애락을 전달하는 뮤지컬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올 초 <형제는 용감했다>를 통해 뮤지컬 데뷔에 성공한 그룹 샤이니의 온유는 9월 15일부터 10월 30일까지 서울 우리금융아트홀에서 공연되는 록 뮤지컬 <락 오브 에이지>로 두 번째 뮤지컬에 도전한다. 온유는 록 스타를 꿈꾸지만 현실은 고달픈 남자 주인공 ‘드류’ 역할을 맡았다. 드류 역에는 최근 뮤지컬 무대에서 활약 중인 한류 스타 안재욱과 록 그룹 트랙스의 멤버 제이도 캐스팅됐다. 이 밖에, 2AM 임슬옹(MBC <개인의 취향>), 2PM 택연(KBS2 <신데렐라 언니>), 티아라 지연(KBS2 <공부의 신>), 티아라 효민(SBS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동방신기 시아준수(뮤지컬 <모차르트!>), 소녀시대 제시카(뮤지컬 <금발이 너무해>), 슈퍼주니어 성민-예성(뮤지컬 <홍길동>), 빅뱅 탑(영화 <포화 속으로>), 유키스 수현(뮤지컬 <코러스라인>), 제국의아이들 정희철(뮤지컬 <루나틱 드림팀>) 등이 올해 영화와 드라마·뮤지컬에서 활약한 현역 아이돌이다. 아이돌 캐스팅, 무조건 ‘윈윈’ 부를까 아이돌의 캐스팅은 많은 관심과 빠른 홍보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아이돌을 캐스팅한 영화와 드라마는 방영 전부터 네이버 등 국내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상위 검색어에 오르며 뜨거운 관심을 받고, 뮤지컬 등은 티켓 예매를 시작하기가 무섭게 판매 사이트의 서버까지 마비시키며 순식간에 표를 팔아치운다. 한 공연 관계자는 “아이돌이 티켓을 다 팔아주니 더 이상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돌의 인기가 때론 독(毒)이 되기도 한다. 아이돌의 팬층에 아직 공연문화가 정립되지 않은 10대 청소년의 비중이 많다 보니, 공연 도중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촬영하는 등 일반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는 그들의 관심이 공연이 아니라 아이돌에만 쏠리는 데 따른 문제점 중 하나다. 몰래 촬영한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하는 극성 팬도 문제가 되고 있다.
스케줄이 바쁜 아이돌의 특성상 예기치 않은 문제를 낳기도 한다. 뮤지컬 <코러스라인>에 출연할 예정이던 걸 그룹 애프터스쿨의 정아는 바쁜 스케줄 때문에 개막 전에 중도 하차했으며, 이 뮤지컬에 캐스팅된 또 다른 아이돌 유키스의 수현도 7월 29일 있었던 첫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새 앨범 준비와 아시아 투어 스케줄, 고정 프로그램 출연 등 빡빡한 일정 때문에 부득이하게 하차했다. 두 아이돌 그룹을 내세워 홍보했다가 연이어 중도 하차하는 모습을 지켜본 <코러스라인>은 ‘빛 좋은 개살구’ 처지가 되고 말았다.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는 아이돌들이 비켜 갈 수 없는 또 하나의 문제는 ‘연기력 논란’이다. 슈가 출신의 황정음과 박수진, 베이비복스 출신 윤은혜, 쥬얼리 출신 박정아, 핑클 출신 성유리 등 연기력 논란은 주로 여성에게 일어나곤 했다. 가수 출신이라는 데 따른 시청자의 따가운 시선은 늘 있어 왔다. 아이돌 출신이 연기자로 성공하려면…
이제는 가수보다 연기자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는 아이돌 출신 연기자는 누가 있을까? 바다(SES)와 옥주현(핑클)은 뛰어난 가창력과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 성실성 등을 인정받은 아이돌 출신 뮤지컬 배우 1세대다. 이들은 대형 뮤지컬의 단골 주인공으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올 초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여주인공으로 열연한 옥주현은 오는 12월 개막하는 뮤지컬 <아이다>에 단독 여자 주인공으로 오른다. 바다는 9월 29일부터 11월 21일까지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지난해 옥주현이 연기해 호평을 받았던 페기 소여 역을 소화할 예정이다. 드라마에서는 단연 윤은혜를 꼽을 수 있다. 2006년에 방영된 드라마 <궁>에서 여주인공 ‘신채경’ 역으로 데뷔한 윤은혜는 이후 <포도밭 그 사나이> <커피프린스 1호점> 등의 작품에서 연기자로 확실히 자리를 굳혔다. 지난해 드라마 <아가씨를 부탁해>로 잠시 주춤한 윤은혜는 올해 중국영화 <첨밀밀>을 리메이크한 드라마 <러브송>(가제)을 통해 비상을 꿈꾼다. <러브송>은 고(故) 박용하가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하기로 했던 작품이다. 현재 50%를 내다보는 시청률을 자랑하며 고공비행 중인 KBS2 수목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김탁구’(윤시윤 분)의 첫사랑 ‘신유경’을 연기하고 있는 SES 출신 유진도 성공적인 연기자로 거듭났다. 그녀는 <러빙 유>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원더풀 라이프> <진짜 진짜 좋아해> <아빠 셋, 엄마 하나> <인연 만들기> <못 말리는 결혼> <그 남자의 책 198쪽> <로맨틱 아일랜드> <요가학원> 등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영화 <토끼와 리저드>로 스크린 데뷔를 마친 성유리도 걸 그룹 핑클 출신 배우다. 드라마 <나쁜 여자들>로 데뷔한 성유리는 이후 <천년지애> <황태자의 첫사랑> <어느 멋진 날> <눈의 여왕> <쾌도 홍길동> <태양을 삼켜라> 등의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을 도맡았다. 이 밖에,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과 SBS 월화 드라마 <자이언트>의 황정음, <선덕여왕> <천만번 사랑해>에 이어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까지 활발하게 활약 중인 박수진이 이들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연기자로 성공한 아이돌의 면면을 살펴보면 가수를 접고 연기자로 전업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뮤지컬 관계자는 “재미삼아 뛰어들었다가 오히려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아이돌이 많다”며 “아이돌 스타라는 위치에서 내려와 연기자가 되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준비, 열정, 겸손함은 성공한 뮤지컬 배우에게 요구되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한편, 황인뢰 감독은 “연기는 카메라 앞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라며 “경험이 없는 것보다는 (아이돌 출신 쪽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면서 아이돌 출신 연기자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