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남서울대학교 애니메이션학과 교수 7월 25일 일요일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중국 장춘공항에 도착했다. 일행과 함께 미니버스에 짐을 옮겨 싣고 서파를 행해 출발했다. 이번에 나와 동행한 일행 아홉 명은 사진작가로 구성되었다. 화가는 나 혼자였다. 장춘에 도착했을 때는 날씨가 쾌청했으나, 백두산을 향해 가는 도중에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서파 근처에서 하루 숙박했다. 7월 26일 월요일 아침에 차를 타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 서파에 먼저 오르기로 한 일정을 바꿔, 남파로 향하였다. 버스는 진종일 빗속을 달렸다. 오후 6시경, 압록강 너머 북한 혜산이 바라보이는, 북한과 중국의 국경도시 장백시에 도착했다. 여름비가 제법 을씨년스러웠다. 전망대에 올라 북한 땅 혜산시를 바라보았다. 혜산시는 거무칙칙해 보이는 모습에 생기가 없었다. 몇몇 북한 주민들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안내를 맡은 맹 선생이 “저기가 예전에 공업 도시로 화려했던 도시였다”고 설명하는 말이 믿겨지지 않았다. 자동차의 모습도 눈에 띄지 않았다. 혜산시 뒤편으로는 산이 연이어 늘어섰으나,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밥 짓는 연기가 나는 집은 몇이 안 되었다. 불 꺼진 공장들이 시커멓게 보였다. 몇몇 빈 공간에 흐릿하게 남아 있는 김정일 찬양 구호가 어슬렁거리는 북한 주민의 처진 어깨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발길을 돌려 숙소로 향했다. 7월 27일 화요일 아침이 되니, 빗줄기가 약해지면서 하늘이 언뜻언뜻 보인다. 일행은 눅눅한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때우고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어제 보았던 혜산시를 오늘은 차창 밖으로 본다. 어제보다는 강가에 사람들이 많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 보인다. 몇몇은 강가에 나와 빨래를 한다. 인민군이 총을 들고 강가에서 조금은 편한 자세로 보초를 서고 있다. 차는 압록강을 따라 북쪽을 향해 달린다. 풍요로운 중국 땅의 짙은 녹음과는 대조적으로 알몸을 드러낸 북한 땅은 압록강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제법 굵은 빗줄기 속에서 남파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버스를 갈아탔다. 안개가 짙어 앞을 보기가 어려웠다. 남파의 정상에 올라 조금 내려가니 천지가 내려다보였다. 짙은 안개와 함께 빗방울이 내리친다. 카메라를 설치하고 얼마 동안을 기다렸다. 잠깐 안개와 구름이 비껴가는 사이로 발 아래 천지가 슬쩍슬쩍 보인다. 환호성이 일기도 전에 백두산은 우리에게 더 이상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7월 28일 수요일 사흘 동안 빗속에 갇혀 지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빗속에도 백두산에 올라야 한다는 오기 같은 것이 일어났다. 서파의 정류장에 도착하니,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산장 대기실은 비에 젖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계단을 향해 오르는데, 안개가 앞을 가리고 빗방울이 얼굴을 때린다. 그 빗속을 어떤 이는 가마를 타고 오른다. 구호에 맞추어 가마를 메고 가는 가마꾼의 힘겨운 숨소리에 왠지 가슴이 아프다. 몇 번이나 쉬면서 천오백여 개가 넘는 계단을 오르니, 이곳이 서파란다. 심한 비바람 때문에 카메라 가방을 열 수조차 없다. 등산화 속으로 빗물이 스며들어 질퍽거린다. 서파 정상에서는 조선족이 텐트를 치고 장사를 하는데, 북한에서 넘어왔다는 작은 체구의 청년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며칠 전에 자신이 찍은 사진을 살짝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천지에 둥근 무지개가 걸려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진이었다. 우리에게 팔겠다는 의사를 보였지만, 우리 일행이 시큰둥하니 겸연쩍게 돌아선다. 빗속을 뚫고 올라온 한국 관광객 일행이 급히 사진을 찍고 내려간다. 한참을 있어도 천지는 짙은 구름에 휩싸여 꿈쩍도 하지 않는다.
7월 29일 목요일 일출을 찍자는 소리에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일어섰다. 기상대를 나서는데 온통 안개로 덮여 있다. 앞서 가는 일행을 놓치면 길을 잃을까봐 긴장하고 바짝 쫓아갔다. 아주 작은 이슬방울들이 안개가 되어 온몸에 감긴다. 이리 보고 저리 둘러보아도 온통 안개뿐이다. 골짜기로 빗물이 모여 소리를 내며 흐른다. 하늘을 보니 잠깐 달빛 같은 해가 스쳐간다. “저기 여우가 있다!” 일행 중 한 명이 소리쳤다. 희미한 안개 사이로 작은 여우 한 마리가 오락가락한다. 일행은 카메라를 꺼내 여우를 망원으로 잡아당긴다. 작은 흰 꼬리가 귀여운 회색 여우 새끼이다. 여우는 놀라 도망 갈 법도 하련만, 우리 주위를 맴돈다. 일행 중 한 명이 가방을 열어 땅콩과 몇 개의 먹이를 던져주자, 연신 냄새를 맡으며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하나를 물어 몇 미터 가서는 땅에 얼른 묻는다. 야생동물의 본성이란다. 작은 여우는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와 경계심을 풀고 멋진 포즈를 취해주었다. 아침을 먹은 다음, 여전히 안개가 짙은 백두산에 기대감을 가지고 일행은 움직였다. 드디어 구름이 걷혀간다. 그 장엄한 장면이 펼쳐진다. 큰 구름 덩어리가 순식간에 사라지나 싶더니, 이내 천지에 가득하다. 롱기누스가 이 백두산의 숭고함을 보았다면 단지 연설의 숭고함만을 강조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버크나 칸트의 숭고함도 좀 더 심오한 표현으로 나타났으리라.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숭고함인가! 급경사 길을 따라 내려간다. 구름이 잠깐 걷히니, 치솟은 철벽봉이 보인다. 철벽봉 앞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잠깐씩 보석처럼 청명한 천지의 수면이 보이고, 건너편에 장대하게 솟아 있는 차일봉의 허리가 살짝살짝 드러난다. 제법 먼 곳까지 서파와 남파의 봉우리가 보였다가 사라진다. 가슴이 설렌다. 우리 일행 열 명은 점심도 거르고 옥수수 하나씩을 입에 문 채 천문봉 아래로 내려갔다. 45도가 넘는 경사면은 위험하여 포터를 사야 한다고 했다. 내 카메라 가방과 물감, 그리고 한 롤의 캔버스를 포터에게 맡기고 조심조심 내려갔다. 조금만 방심해도 엉덩방아를 찧으며 아래로 쭈욱 미끄러진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면서 식은땀이 흐른다. 1시간 정도 내려오자 우측으로 비루봉이 있고, 그 뒤로 장군봉이 보인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구름은 백두산 위로 올라가 있다. 천지를 둘러싼 모든 봉우리는 청명하게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조금 평평한 곳이 보인다. 캔버스를 펴니, 포터가 그릇에 물을 떠온다. 나는 이미 목말라 있었다. 그리고자 하는 열정과 기대로…. 그리고 실제로 육체의 타는 목마름을 느꼈다. 물병에다 천지의 물을 가득 담아 벌컥벌컥 마시니, 물 한 병이 순식간에 없어졌다. 아크릴 물감을 개고, 독도에서 주운 나무에 묶은 긴 붓을 빼 들었다. 한껏 숨을 들이키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찬찬히 둘러본다. 9미터짜리 내 화폭에 화개봉에서 철벽봉까지 백두산의 봉우리들과 천지의 수면을 담고자 한다. 이렇게 백두산에 와서 대형 화폭에 그림을 그린 자 누구인가? 이제 나에게 그 귀중한 사명이 주어졌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구름은 하늘과 백두산을 더욱 아름답게 연출하고 있다. 물빛은 가깝게는 짙푸른 녹색, 멀게는 짙은 청색을 띠며 그 신비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긴 붓으로 물감 통을 휘익 한 번 젓고는 듬뿍 묻혀서 휙 하고 내리긋는다. 다시 아래로 옆으로, 그리고 위로 쳐 올린다. 물감은 붓과 하나가 되어 나의 가슴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 감동과 환희를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나는 화폭을 한 번 보고, 또 한 번 천지의 봉우리를 본다. 자하봉에서 시작하여 비루봉을 지나 그 뒤에 선 장군봉이 그려지고 있다. 멀리 남파의 풍경이 들어온다. 서파의 능선을 따라 나의 화폭은 오른쪽으로 옮겨간다. 달문이 보인다. 차일봉과 천활봉을 그리고, 천문봉을 그려 넣는다. 그 힘찬 붓놀림에 나 자신도 신이 들린 듯 일순간의 쾌감으로 더위마저 사라진다. 그림이 마르는 동안 나는 잠시 백두산의 아름다움과 힘찬 풍광을 보면서 작가로서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그 역할을 생각해보았다. 3년 전부터 시작된 독도의 작업이 떠올랐다. 3년 전에 처음 독도에 갔을 때는 독도와 만났다는 감격에도 불구하고 30여 분의 짧은 만남이 주어져 아쉬움만 남는 방문이었다. 작년에 두 번째로 독도를 방문했을 때 동도와 서도를 오르며 괭이갈매기들의 생명의 축제를 보고 얼마나 감격했던가! 그 큰 감격이 가슴에 오롯이 남아 화가의 길에서 민족의 자긍심을 심는 데 노력하고자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내 작품의 정신은 다큐멘터리즘에 기초하고 있다. 모든 미술은 리얼리즘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가 말하는 추상조차도 그 작가의 미감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는 의미에서는 틀림이 없는 말이다. 나는 작가로서 역사성을 지니고 이 시대의 눈으로 우리 민족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진실하게 표현해내는 일을 나의 임무로 정했다. 이번 백두산 작품 기행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대형 캔버스에다 물감으로 백두산의 정기와 나의 감성을 하나로 일체시키는 작업이다. 이는 표현이기 전에 하나의 기록으로서 그 성격을 지닌다. 또 하나는 그림으로 표현될 수 없는 내 안에 있는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이다.
-하늘을 향해 눈을 들어 올려다본다. 땅을 향해 눈을 놓아 내려다본다. 침묵이다. 나는 한순간도 피할 수 없는 하늘 아래에 있다.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는 땅에 이렇게 서 있다. 하늘과 땅은 내가 지은 것이 아니다. 그 근원을 혹자는 자연(진화)이라 말한다. 혹자는 정신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신의 창조물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이 우주는 인간의 창조물은 아님을 증거한다. 오만을 벗어던진 이 우주에 신세를 진 인간이 서 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땅을 내려다 본다. 단지 감사할 따름이다. -신발을 벗는다. 옷을 벗는다. 안경도 모자도 벗는다. 침묵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 문명의 옷을 입히고 마치 세상의 주인인 양 우쭐거린다. 이데올로기의 옷을 입는다. 스스로 정신의 부재를 증명한다. 그래서 불안한 정신은 불완전한 논리 검증을 통해 이데올로기의 권력을 생산해낸다. 그 권력 속에서 질서라는 이름으로 편안해한다. 우리 인간 스스로 진정한 이데올로기의 부재를 증명한다. 남북은 이념의 전쟁을 겪었고, 지금도 그 이유는 계속된다. 이제 이 허구의 이데올로기를 벗는다. 신발을 벗는다. 옷을 벗는다. 안경도 모자도 벗는다. 침묵이다 -양팔을 든다. 십자가를 만든다. 침묵이다. 조용히 알몸을 드러낸다. 이 아름답고 웅대한 백두산 천지에서 옷을 벗는다. 오만의 이데올로기의 옷을 벗는다. 나와 인간의 정신에 대한 속죄이다. 양팔을 든다. 내 앞에 나아오기 전 이웃과 화평하라고 말한다. 이제 하나여야 한다. 불안이 사라지고 분열이 통합되어야 한다. 남북이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지고 하나가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양팔을 벌린다. 이웃과의 소통이고, 용서와 화평을 이룬다. 머리에서 발끝은 근원적 소통을 원한다. -양팔을 든다. 십자가를 만든다. 소리를 외친다. 죽음 앞에 서 있는 양은 침묵한다. 나는 지금 한 마리 나체로 죽음 앞에 서 있는 속죄물이다. 회칠한 무덤에서 나와 서 있다. 속죄를 요구한다. 소원을 말한다. 양팔을 든다. 십자가를 만든다. 소리를 외친다. 독도는 우리 땅! 독도는 우리 땅! 독도는 우리 땅! 추한 야욕을 지닌 일본을 향해 외치는 평화와 소통의 외침이다. 나의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천지의 수면에 퍼지고 능선을 타고 울려 퍼진다. 10여 분 동안 나의 퍼포먼스는 그렇게 진행되었다. 먼발치에서 나의 퍼포먼스를 지켜본 일행은 나에게 손을 흔든다. 숙소로 오니, 어둠이 내렸다. 밤에 휘영청 보름달이 떴다.
7월 30일 금요일 천문봉을 향해 서둘러 올라갔다. 벌써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캔버스 롤 하나를 펴드는 순간 바람이 불어와 캔버스가 바람에 펄럭이며 날아간다. 가까스로 부여잡고 바닥에 펴는데, 중국 관리요원이 와서 잡아준다. 준비한 못을 들고 망치로 캔버스 가장자리에 박았다. 검정 물감을 개서 화개봉부터 그려 나갔다. 자하봉·비루봉, 그리고 장군봉까지 단숨에 그렸다. 멀리 보이는 남파를 그려 넣었다. 어제는 천지 바로 옆에서 그렸었다. 오늘은 천문봉 정상에서 하이앵글로 구도를 잡아가니, 한순간 흑풍이 불어와 그림을 완성해놓은 듯 마지막으로 천문봉을 오른쪽에 그려 넣었다. 많은 이들이 몰려와 감탄사를 연발한다. 중국 관리요원이 마지막까지 옆에 서서 안전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내가 그를 볼 때마다 그는 엄지를 들어 최고라고 말하며 입가에 미소를 띤다. 그림이 말라 캔버스를 말려고 하는데, 다시금 중국 관리요원이 와서 그림을 잡고 도와준다.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캔버스를 메고는 서둘러 내려왔다. 산장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과 라면 하나씩을 먹은 우리 일행은 철벽봉을 지나 급경사 길을 내려간다. 멀리 달문이 보인다. 달문에 도착하자, 비가 내리고 구름이 가득 피어오른다. 아차 하는 생각이 일어난다. 망설인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왜 그렇게 주저하느냐는 질책이 솟는다.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캔버스를 편다. 물감을 이제는 버밀리언으로 정했다. 물감을 개는데 한국인 관광객 한 무리가 다가오더니 나를 천문봉에서 보았다며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건넨다. 붓을 잡으니, 기적처럼 수면의 물안개가 걷히기 시작한다. 그러나 구름은 여전히 백두산 천지의 봉우리마다 걸려 있어 봉우리를 볼 수가 없다. 보이는 곳부터 그리기 시작한다. 잠깐씩 보이는 봉우리를 그때마다 재빠르게 그려 넣는다. 어느새 그림은 거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조금은 거친 그러나 참으로 맑은 천지의 수면은 계속 출렁거린다. 7월 31일 토요일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데 다시금 비가 내린다. 이틀 간 백두산과의 화려한 만남은 신의 축복처럼 느껴졌다. 백두산 북파 입구에 오니 아차, 잊어버린 게 있었다. 그림을 놓고 왔다. 일행에게 참으로 미안했다. 다시금 가이드와 함께 숙소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올라갔다 돌아오는 데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입구에 오니, 빗줄기가 거세진다. 일정의 피로를 빗속을 달리는 차 안에서 잠으로 달랬다. 이도백하를 지나 안도에서 숙소를 정했다. 아침부터 온종일 달려왔다. 호텔에 짐을 푸는데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를 않는다. 홍수 때문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8월 1일 일요일 아침에 중국 재래시장에 갔다. 이른 아침인데도 시장은 북적거린다. 수레에 진열된 냉동하지 않은 돼지고기를 젊은 처자가 썩둑썩둑 자르며 팔고 있다. 경쾌해 보인다. 사진을 찍은 후 한 곳에 우리 일행은 모여 밀크와 튀김을 먹었다. 차는 장춘공항을 향해 달린다. 백두산에서 멀어지니, 하늘이 조금씩 맑아진다. 이곳저곳에 홍수의 흔적이 보인다. 장춘이다. 비행기는 잠깐 하늘로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인천공항이다. 이렇게 짧은 거리를 우리는 분단으로 직접 가지를 못하고 중국을 경유해 가야 하니 가슴 아픈 일이다. 오늘도 희망한다. 남북의 통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