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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잠잘 때 일본은 유럽과 미술교류

일·유럽의 문화교섭 보여주는 서울대미술관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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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21호 박현준⁄ 2011.05.09 14:21:03

현재 서울대미술관에서는 아주 특별한 전시회를 기획하여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근대 일본이 본 서양’이란 전시회로 4월 20일부터 5월 29일까지 열리며 18, 19세기에 일본 미술에 도입된 서양화를 보여준다. 한일 문화교류와 상호이해를 확대하기 위해 기획되었다는 이번 전시회에서 전시물들은 고베(神戶)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총 80점의 회화와 판화, 지도, 서양 서적, 시각 기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는 원근법을 도입한 회화들을 비롯해 초기 우키요에(浮世繪) 작품들과 그림상자(peepshow box) 같은 영상기구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그림상자 기구와 여기에 넣고 보는 그림(메가네에, 眼鏡繪)들은 국내 최초로 소개된다. 일본은 16세기 이후 아시아에서 일찍이 포르투갈ㆍ스페인ㆍ네덜란드와 교역을 하면서 서양 문물을 흡수했으며, 이 과정에서 유럽의 미술과 시각문화도 수용했다. 이런 측면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회는 단지 미술 작품뿐 아니라, 동서양 사이의 문화 접촉을 통해 일어난 미술 변화의 역사문화적 배경까지 말해 준다. 1700년대 후반에 유럽에 등장한 첨단 영상 기구가 거의 시간차 없이 일본에 들어온 점 놀라워. 조선에는 1800년대 중반이 되도록 이런 기구 안 들어왔는데… 그래서 이번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미술관 학예연구팀은 오랫동안 여러 분야의 자료들을 소화해내야 했다고 한다. 오진이 학예연구사는 “미술에 있어서 변화가 미술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미술 외부, 특히 과학과 밀접한 관계에 있어 왔음을 이 번 전시는 보여 준다”며 “미술을 통해 여러 학문 분야를 아울러 살펴볼 수 있는 전시라는 컨셉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회는 그 자체로서 흥미롭거니와, 조선보다 앞서 서양화법과 영상기구를 도입한 일본이 이런 문물을 미술에 어떻게 적용했는지를 살펴보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전시물 옆에는 상세한 설명이 붙어 있어 근대 일본 미술을 처음 접하는 관람객이라도 역사와 문화사적 배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일본 미술에 대한 관심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 전시가 드물었다. 이에 대해 오 연구사는 “18, 19세기 일본 미술의 대표작을 깊이있게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일본 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 앞부분에서는 에도 시대(1603~1868년) 때 외국과 무역이 허락된 유일한 항구도시였던 나가사키(長崎)에 17, 18세기 당시 주재하던 네덜란드 상인들의 숙소(蘭館)와 중국인들의 숙소(唐館)를 그린 파노라마(각각 약 4m 길이) 그림이 있다. 이어서 당시 입수된 서양의 과학 서적과 우주천체 기구, 이 시기에 일본에서 제작된 동북아 지도도 전시된다.(이 지도에도 동해는 ‘일본해/日本海’가 아니라 ‘조선해/朝鮮海’로 표기돼 있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온 서양의 의학과 자연과학ㆍ미술 서적들과 더불어 서양의 미술을 받아들여 작품에 응용한 실례가 보인다. 여기서는 탐구 대상이었던 유럽 작품과 이를 모방한 일본 작품을 나란히 배치해 비교해 가며 볼 수 있게 했다. 이어 18세기 때 서양 회화를 받아들여 일본식으로 재창조한 화가들을 일컫는 양풍 화가(洋風畵家)들의 작품들이 나온다. 우타가와 구니요시(歌川國芳)는 프랑스의 동판화 ‘말과 사자’(1810)에 근거하되 그림 속의 사자를 여성으로 바꾸고 일본 전통 회화 방식으로 그렸다(유화 ‘용감한 여성 오카네’, 1831) 서양화를 일본 회화에 일찌감치 적용해 유명한 시바 고칸(司馬江漢)의 ‘에도 미메구리의 풍경’(1783)은 에도(도쿄의 옛 이름)의 명소를 일본 최초의 동판화로 제작한 작품이다. 이 시대의 새로운 기법으로는 유럽 동판화의 유입이 특징적인데, 동판화 작품들은 그림상자(메가네/眼鏡)에 넣고 보는 용도로 많이 제작되었고, 이들은 메가네에(眼鏡繪)라고 불렸다.

동판화로 제작된 그림들은 유럽 근대에 지배적이던 선원근법을 충실히 반영하고, 역시 유럽의 그림상자용 그림들처럼 여러 곳의 도시 풍경을 보여준다. 판화는 아니지만, 중앙원근법을 받아들여 제작된 채색화들 중 하나는 18세기 중엽 에도에 도착한 조선통신사 일행을 환영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일본의 ‘우키요에’는 유럽의 인상주의에 큰 영향 미쳤고 고흐는 일본 판화들을 수집하면서 우키요에를 베낀 그림을 직접 그리기도 해 전시실의 마지막 부분에는 두 가지 형태의 영상 기구가 전시되어 있다. 하나는 렌즈와 거울이 달린 반사식 시각기구이고(영어 명칭은 조그라스코프/Zograscope), 다른 하나는 렌즈만 통해 암실 상자 속의 그림을 들여다보는 직시식 상자(peepshow box)다. 놀라운 것은 이들은 유럽에서 18세기 후반에 성행하던 영상 기구인데, 시간 차이가 별로 없이 비슷한 시기에 이런 물건들이 일본에 들어와 있었다는 점이다. 이때 조선은 정조 시대에 해당하는데, 19세기 중반까지도 이런 기구들은 국내에서 확인되지 않아 아마 유입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키요에(浮世繪)는 에도 시대의 대표적인 풍속화로, 주로 색목판화로 제작되었다. 우키에(浮繪)도 우키요에의 일종으로 초기에 서양의 선원근법을 받아들인 우키요에 작품들을 일컫는다. 우키요에 작품들은 유럽에 널리 알려져 19세기 후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특히 반 고호는 우키요에를 수집했으며, 그의 작품 가운데에는 우키요에로부터 받은 영향을 직접 표현한 것도 있다. 이번 전시는 미술과 영상 연구자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매우 유익하다. 서울대미술관(서울 신림동)이 시내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있어 일반인에게 접근성이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현재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주말에는 시민들이 가족단위로 많이 찾아오며, 주중에는 서울대 재학생들과 타 대학 학생들도 오고 있다”고 미술관 측은 설명했다. 보아야 할 전시라면 거리가 문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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