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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 ⑦]골프에 미치면 일어나는 별의 별 현상들

7번 카데터를 달래야 하는데 “7번 아이언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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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29호 박현준⁄ 2011.07.04 13:28:23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운동은 넓은 장소에서 하는 것일수록 인기가 많고, 하는 사람도 더 재미있다고 한다. 작은 구장에서 하는 운동보다 넓은 야구장, 축구장, 미국의 경우는 미식축구장에서 하는 운동에 관중들은 열광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비싼 운동에 속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이미 일반화된 골프는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인기 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골프에 미친(?) 사람들은 아무 장소에서나 무심코 골프 치는 시늉을 하다가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는 멋쩍어 하는 모습을 가끔 본다. 다른 운동과 달리 골프는 하다가 잠시만 쉬어도 금방 실력이 추락하는 어려운 운동인데 이것이 또한 매력으로 작용한다. 내 친구는 밤에 누워서 잠을 청하다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거실로 나가서 ‘이제 알았다’며 스윙연습을 하더라는 것이다. 매일 ‘알았다’고 하며 ‘이젠 됐다’고 하다가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실망하는 운동이 골프다. 필자가 미국에서 골프 부상방지 클리닉에 있을 때 알아낸 사실이 있다. 골프를 위해 필요한 근육은 연습을 해도 48시간 이상 우리 몸이 기억을 못 한다고 한다. 또 하나, 우리 뇌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못해서 만일 골프장에서 이것저것을 생각하면서 스윙을 하면 반드시 실수가 나온다는 것이다. 가끔 골프장에서 “난 이 홀만 오면 오른쪽으로 간다”고 하면서 공을 치는 사람도 있는데 이 경우 대개 말대로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뇌의 작용이라고 한다. 이처럼 어려운 운동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턴가 프로 선수들의 시합을 중계하면서 ‘즐기면서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미국의 골프 황제로 불리는 잭 니클라우스가 10여 번 우승하고 난 후에도 “지금도 선두로 마지막 날을 맞으면 밀려오는 무서움이 나를 엄습한다. 이것을 이겨내야 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일이 있다. 집중을 해야지, 결코 즐길 수 있는 운동은 아니란 뜻이다. 말도 많고 에피소드도 많은 골프. 필자도 일찍부터 골프에 매진했고 어떤 날은 밤에 누워 있어도 골프공이 눈앞에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심장 검사 중에 심도자 검사라고 하여 수술을 위하여 정밀 검사를 하는 과정이 있다. 이때 심장까지 넣는 도자(가운데 구멍이 있는 긴 줄)를 영어로 ‘카데터’라고 부른다. 심장 검사가 시작되면 혈관을 찾은 후 혈관의 크기에 따라 카데터의 크기를 정해 간호사에게 번호를 말하며 달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7번 카데터 줘요”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간호사에게 “7번 아이언 줘요”라고 말했다. 말한 나 자신도 화들짝 놀라 “7번 카데터라는데 왜 놀라” 하면서 얼버무렸다. 골프에 세뇌가 돼 시도 때도 없이 골프 스윙 흉내를 내는 사람을 보면 가끔 핀잔을 주던 나였지만 7번 아이언을 달라고 말하고 나서야 “미치긴 미쳤구나”라는 혼잣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골프는 컨트롤하는 운동인데… 컨트롤 안되는 골퍼들의 좌충우돌 사건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의 헤드 스피드가 시속 150마일이라고 한다. 우리가 평소 자동차를 타고 달려도 나오지 않는 매우 빠른 속도다. 아마추어 중년 남자 골퍼들의 스피드는 80에서 100마일이다. 골프공이 골프채에 맞으면 그 딱딱한 공이 타원형으로 일그러지면서 날아간다고 한다. 언젠가 야구선수가 던지는 공을 쳐보려고 타자석에 들어섰는데 투수가 공을 던지자 나도 모르게 타자석에서 뒤로 물러섰다. 110마일 정도였다는데,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위협을 느꼈다. 실제 골프장에서 보면 위험천만한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공을 치려는데 앞으로 나서는 사람, 옆 홀과 바로 붙어 있지만 아무런 안전시설이 없는 골프장, 그리고 옆이나 뒷사람을 살피지 않고 하는 연습 스윙 등이 있다.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옆 사람이 휘두른 채에 눈을 맞아 실명한 경우도 있었다. 필자는 다니던 골프장의 환자들을 돌보아준 적이 있어 이런 사고가 난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나는 아니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부른 재앙들이었다. 또 하나, 골프를 너무 심각하게 쳐서 생기는 사고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골프를 즐기지 않고 스코어나 옆 사람에 신경 쓴 나머지 공이 잘 맞지 않으면 캐디에게 화를 내거나 화를 못 이겨 공이나 골프채를 던져 버리는 일을 자주 보게 된다. 보통 때 혈압이 높거나 심장 관상동맥에 이상이 있는 고위험군 사람들 중 너무 긴장을 하고 골프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실려 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드물지만 카트를 타고 가다가 부주의 탓에 사고가 난 경우도 보았다. 몇 년 전 모 골프장에서 다음 홀로 가다가 급커프를 너무 급하게 돌면서 옆 좌석에 탄 사람이 밖으로 튕겨나가면서 사망한 사고, 비오고 천둥 치는 날 번개에 맞아서 사망한 사람 등. 그러나 가장 많은 사고는 역시 신체의 부상이다. 프로 선수들은 주로 손목의 부상이 많지만 아마추어들은 허리 부상이 가장 많다. 테크닉이 좋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준비 운동도 없이 바로 골프를 치는 게 보통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부상이다. 최근에는 골프장에서 도우미를 동원해 시작 전에 준비 운동을 시키지만, 기껏해야 5분 정도에 그친다. 안 하는 것보다야 낫지만 큰 도움은 안 된다. 준비 운동은 적어도 20분 이상 해야 부상 방지 효과가 있다. 충분한 준비 운동은 부상을 막아줄 뿐 아니라 첫 홀에서 부드럽게 공을 칠 수 있게도 해준다. 골프장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매우 바쁘게 움직인다. 가까스로 시간을 맞출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골프장에 오는 사람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좁은 골프장 진입로에서 속도를 높이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생기는 사고도 적지 않다. 좁은 곡선 도로에서 앞차를 추월하다가 일을 마치고 내려오는 골프 도우미 차와 충돌해 도우미는 숨지고 골퍼는 크게 다친 일도 있었다. 필자의 친구는 골프를 친 뒤 맥주를 두어 잔 마시고 운전하다가 졸음이 온다고 느꼈는데 깨어보니 병원이었다고 했다. ‘자신을 컨트롤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면서 여유 있게 골프를 즐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푸른 잔디 위를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끼면서…. 필자가 미국의 골프 부상방지 클리닉에 있을 때 그곳의 책임자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골프는 하루 사이에도 10타 이상 차이가 나는 운동이며, 골프를 잘 친다고 해서 자랑할 것은 못 된다. 자주 쳐야 잘 되며, 몇 달만 안 쳐도 초보자로 되돌아가는 것이 다른 운동과 차이나는 특징이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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