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아이작슨 저 ‘스티브 잡스’를 읽어봤다. 이 책을 두 번 읽으면서 스티브 잡스에 대해 드는 생각은 “정말 별난 사람이구나” 하는 점이다. 돈, 소비, 대인관계, 가족관계 등에서 그는 상식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다. 우선 돈 얘기. 그는 이미 젊은 시절에 최고 부자 대열에 올랐지만 사치스럽게 살지 않았다. 돈이 많으면 남자는 대개 이상한 짓들을 한다. 애플컴퓨터의 주식 대박으로 백만장자가 된 직원들이 대저택을 사고, 주택관리인을 몇 사람이나 들이고, 또 그 관리인들을 관리할 관리인을 고용하느라 돈을 쓸 때 잡스는 그러지 않았다. 거의 평생을 대저택이 아닌 일반 주택에서 가구도 거의 없이 살았으며, 옷도 딱 몇 가지만 정해 놓고(유명한 이세이 미야케 디자인의 터틀넥 셔츠처럼) 입었다. 평생 경호원도 없었고 집 문도 때로 열어놓고 지낼 정도였다. 물론 그는 ‘일부러 가난하게 산 사람’은 아니다. 넥스트 컴퓨터 등의 사업을 하면서 자기 돈 수십 억을 회사 운영비로 쏟아 붇고, 이탈리아산 최고급 대리석으로 회사의 바닥을 까는 등 ‘멋을 추구하는 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보통 사람은 ‘더 많이 벌면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쓰려 더 바쁘게 일하는’ 쳇바퀴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여기에는 젊어서부터 인도 신비철학에 빠진 그의 철학이 깔려 있다. 좋은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단식을 해야 황홀경에 빠질 수 있다는, 즉 이쪽 극단이 저쪽 극단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이다. 요즘 한국인들은 돈 많은 사람을 우러러보고 존경한다. 그러나 사실 돈이 많을수록 고민도 많다. 우선 있는 돈을 지키는 데 신경을 써야 하고, 돈쓰는 일도 쉽지만은 않다. 이것저것 걱정없이 마구 사면 좋을 것 같지만 막상 사보면 그렇지도 않다. 이것저것을 사는 일 자체가 우선 큰 일이다. 최고급 옷을 사려면 입어보고 사러 가고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모두 시간과 정력을 빼앗는 일이다. 먹을 게 없을 정도로 빈궁한 상태는 괴롭지만 일단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된 다음에는 돈이 많으나 적으나 차이는 크지 않다는 게 많은 행복 연구자들의 결론이다. 돈이란 이런 속성을 가졌는데도 한국인들은 거의 예외없이 ‘있는 놈이 더한’ 현상에 빠져 있으니 참 정신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돈에 대해 그는 “돈을 벌려 사업하는 게 아니다. 우주에 흠집을 낼만한 최고 물건을 만들려 사업한다”고 말했다. 때로 그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금액을 보수로 달라고 애플컴퓨터 이사회에 요구하기도 했지만, 이는 “내 업적을 제대로 인정받기 위한 목적”이지, 자신이 쓰려고 돈을 달라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의 인생을 특이하게 만든 데는 ‘무서울 정도로 무자비한 솔직함’도 있었다. 상대가 누구든 그는 자신의 흑백논리적 판단, 즉 “사람은 천재 아니면 바보이고 그 중간은 없다”는 판단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한국은 인간 사이를 부드럽게 해주는 공치사, 입에 발린 말, 하얀 거짓말이 극도로 발달한 나라다. 예컨대 퇴근 때 상사가 건네는 “날씨가 쌀쌀한데?”를 영어식으로 “It's cold today"로 들으면 안 되고 ‘한잔 하러 갈까?’라는 속뜻까지 읽어낼 줄 알아야 정상인 판정을 받는 게 한국이다. 이러다 보니 겉모습만 번드레레해지고 속은 텅빈 양상도 곧잘 발견된다. 잡스처럼 무자비한 속말을 마구 하는 사람이 한국에도 많아지면 좋겠다. 나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 최영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