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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특집]“한옥의 생명이요? 마당에 있죠”

한옥촌 570회 답사한 조정구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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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8-269호 왕진오⁄ 2012.04.09 17:46:09

2001년 서울 가회동 북촌한옥마을 가꾸기에 참여하면서 한옥과 인연을 맺은 조정구 건축가는 살림집으로부터 호텔에 이르는 다양한 공간을 한옥으로 설계했다. 그의 한옥 건축들은 전통 한옥의 성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대도시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을 창조해냈다. 그는 11년 동안 발품을 팔면서 서울의 골목을 관찰했다. 그가 이끌어온 ‘수요답사 프로그램’은 따로 떨어진 한 채의 한옥이 아니라 주변 한옥들, 주위 환경과 관계를 맺는 한옥마을의 공간구조, 그리고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하는 한옥마을 골목의 정취까지도 살려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한옥마을 골목에 애착을 가진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나고 자란 곳이 서울 보광동입니다. 이태원에서 언덕 하나를 넘으면 한강을 향해 아래로 펼쳐진 동네죠. 한옥은 드물었지만 크고 작은 집들이 골짜기와 언덕을 가득 메웠고, 골목과 길들이 그 속으로 깊게 뻗어 있었죠. 한참 길을 오르다 계단 위에 작은 철제 대문이 있었고, 문을 열면 마당이 나오고 ㄱ자로 집이 둘러 있었습니다. 주인집 식구들을 포함해 우리 가족까지 모두 여섯 식구가 살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앞에 조그만 부엌이 달린 단칸방에 세들어 살았는데, 방은 어둡고 낮았죠. 나가 놀지 않으면 마당 한 켠의 화단에 않아 눈부신 마당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릴 때 일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모든 것이 따스하고 편안했다는 기억은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 유별난 건물을 짓기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들, 즉 ‘우리 삶과 가까운 건축’을 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건축가로서 2000년에 사무소를 열고 특별하고 유별난 건축을 하기보다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집들, 단독주택, 다세대, 다가구, 근린생활 빌딩처럼 우리 삶과 가까운 건축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한 번 서울을 답사했지요. 주로 수요일에 했으므로 수요답사라 불렀습니다. 다른 답사와 다른 점이라면 한 곳을 답사한 뒤 다음 번에는 바로 옆 동네로 답사를 이어가는 ‘이어하기 답사’였다는 점입니다. 천천히 스캐닝을 하는 것처럼 도시의 환경과 사는 모습을 정해진 의도나 편견 없이 바라봤습니다. 수요답사는 지금까지 570여 회를 진행했는데, 답사와 함께 서울 체부동, 왕십리, 북아현동, 창신동 지역의 골목과 집들을 다니고 기록했습니다. 덕분에 건축가로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죠. 포도송이처럼 동네와 동네들이 모여 서울이란 도시를 이루고, 오랜 시간 집과 사람이 관계를 맺으며 실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 실제로 한옥 디자인을 시작한 때는? “우연한 기회에 한옥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서울 북촌의 한옥에서였습니다. 모양도 다르고, 크기도 다른, 둘러싼 골목이나 안팎의 풍경도 서로 다른 집들이었습니다. 집들은 제각각이지만 되도록 그 집이 가진 고유한 정취를 살리고, 현대적인 삶의 내용을 담으려고 애썼습니다. 처음에는 서울 북촌이나 인사동의 크고 작은 한옥들을 많이 고치다가, 점점 더 새로운 모양이나 집합의 형태로 경주, 부여, 대구 등 여러 지역에 걸쳐 새로운 한옥을 지었습니다. 처음엔 주거 한옥이 중심이었지만 레스토랑, 마을회관, 호텔, 사무실, 도서관, 병원 등 큰 건물들을 한옥 방식으로 짓는 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공간이 풍부해지고 보다 많은 사람이 찾게 된 것도 커다란 변화로 생각합니다. 동분서주했던 지난 10년의 작업 속에 현대 한옥의 진화 과정이 보여 흥미로웠습니다. 아마 새롭게 누릴 수 없다면 한옥의 진화는 멈추고 말 것입니다. 낡고 어두운 한옥들이 새롭게 태어나 아담한 마당을 지닌 작은 한옥이 되고, 밝은 햇살이 비치는 아트리움을 갖춘 레스토랑이 되거나, 아니면 오래된 향나무와 누마루 그리고 담장과 굴뚝이 어우러지는 그윽한 사랑채가 됐죠. 한 채 한 채의 한옥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들이 골목을 밝히고 동네를 변화시켜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 한옥에서 구현하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제가 한옥을 디자인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마당입니다. 크고 작은 마당을 어떻게 정하느냐, 즉 대청이나 부엌, 방 같은 한옥의 공간들을 마당을 통해 어떻게 서로 소통하도록 만드느냐가 설계의 커다란 줄거리가 됩니다. 한옥의 마당은 그저 비워두거나, 보기만 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빨래를 널고 시래기를 말리고 잔치를 벌이는 ‘쓰는 마당’이자, 햇빛과 바람이 통하는 ‘삶과 공존하는 자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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