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TV를 보면 웃기는 교양물이 가끔 나오기도 한다. 가장 재밌게 본 것으로는 그랜드 캐년이 노아의 방주 때 대홍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그걸 어린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캠프를 줄기차게 현장에서 열고 있는 창조론자들을 다룬 내용이었다. 디스카버리 채널에 나왔던 것 같다. 그랜드 캐년의 절벽 덩어리들이, 노아의 방주 때 대홍수에 산 같은 것이 떠 밀려와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지질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한마디로 ‘개뻥’이다. 이런 과학적 설명에도 그들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아무 상관 않는다. “성경에 써 있잖아?” 한 마디면 끝이다. 무신론자임을 공언한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보면 미국 과학자들의 속내가 드러난다. 미국 과학자들의 대부분이 이른바 창조론을 말도 안 되는 수작으로 여기지만, 종교심 강한 나라인지라 괜히 시비가 붙을까 봐 공언을,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과학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몰아내려 애쓰는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교진추)라는 단체가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미국 역사에서도 이 같은 단체가 있어 연방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종교적인 나라라 해도 법원 입장에서는 과학의 편을 들어줘야지 종교의 편을 들어줄 수는 없어 결국 미국판 교진추는 재판에서 지고 만다. 물론 그래도 미국판 교진추들은 “창조론을 진화론과 동일한 분량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은 여전하다. 영어로는 과학적 ‘론’과 종교적 ‘주장’ 사이에 분명한 차이 있는데… 사실 진화론과 창조론은 한국말로는 비슷하지만, 영어로는 전혀 다르다. 진화론은 theory of evolution으로 과학적인 학설을 뜻하지만, 창조론은 doctrine of creation이다. 여기서 독트린(doctrine)이라 함은 ‘종교적 주장’이란 뜻이다. 과학적 논설이 아니므로 theory를 붙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어 번역이 진화‘론’과 창조‘론’으로 맞먹기 좋게 된 것은 여간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보수당이 집권하면 미국에서도 창조론자들이 힘을 받는 것 같다. 직전 부시 대통령의 경우 그 자신이 종교적 근본주의자였으니 백악관의 힘을 등에 업은 창조론자들이 날뛰었을 법하다. 부시와 근본주의자들이 날뛰더니 미국 경제는 망했다. 과학보다 종교를 앞세우면 나라가 망하는 게 당연하다. 우리도 그 길을 가려나? - 최영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