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8호 최영태⁄ 2012.06.14 11:40:08
한국 여자 어린이들의 성조숙증이 급속하게 늘고 있다는 보도가 13일 나왔다. 성조숙증의 원인에 대한 '정통 의학'의 해석은 과다한 영양섭취, 비만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방세포에서 성호르몬이 나오니 지방이 많아지면 성조숙증이 늘어난다는 물리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진화론 차원에서 의학을 보는 진화생물학자들의 의견은 좀 다르다. 이들은 “자연환경이 우호적이어서 충분히 먹이를 구할 수 있고 살을 찌울 수 있을 때, 인류는 보다 빨리 자손을 더 많이 번식하는 게 생존에 유리했으며, 따라서 먹을 것이 넘치는 우호적 환경에서는 성조숙증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성조숙증이 나타나는 것은 ‘더 많은 번식’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유전자 입장에서 진화를 설명하는 ‘이기적 유전자론’이 한때 대유행 한 적이 있지만, 유전자 입장에서는 ‘낡은 기계’(현재의 성인)보다는 ‘새 기계’(어린이)에 올라타는 것이 유전자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낡은 몸을 버리고 새 몸으로 갈아타려는 속성을 갖게 되며, 현대에 들어와 성조숙증이 급증하는 이유는 이 같은 유전자의 특성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여기까지는 진화생물학의 설명이 평화롭지만, 조금 더 진전하면 무서워진다. 빨라 성숙해서 빨리 자손(새 몸)을 퍼뜨리고 나면, 유전자 입장에서 '낡은 몸'은 더 이상 필요 없어 버리게 되므로, 각종 성인병 등에 시달리면서 빨리 죽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풍요로울 때 빨리 낳고 빨리 죽고, 근근이 먹고 살 때 오래 사는 현상에도 많은 의학적 증거가 있다. ‘소식 하면 장수’라는 공식이 나온 근거다. 근근이 먹고 살면 유전자는 “현재는 상황이 험악하니 면역력을 더 키우고 현재의 개체(몸)에 최대한 오래 붙어 생존하면서 다음 풍요한 시기를 기다려야지”라는 식으로 작동하게 된다는 말이다. 많이, 잘 먹으니까 성조숙증…조금 먹으면 장수 한국의 경우만 해도 현재의 40, 50대 이상은 어린 시절 ‘무한정 주전부리’를 경험하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과거에는 달짝지근한 먹을 것이 적었던 반면 어린이들은 집밖에 나가서 뛰어노는 경우가 더 많았다. 반대로 지금은 기름지고 달콤한 간식거리가 넘치고, 학생들은 보충수업을 하느라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다. 성조숙증을 부를만한 조건이 완벽히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현대 의학의 역사는 인류 수명의 지속적인 상승, 즉 나중에 태어난 사람의 수명이 더 길어지는 현상을 경험했다. 그러나 이미 서구의 의학자들은 “비만, 성인병 등 때문에 앞으로는 수명이 더 짧아질 가능성도 있다”는 불길한 예측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풍요하게 자라는 지금의 어린이들이 앞으로 건강적으로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한국인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왔다. 허리띠를 너무 졸라매 이제 허리가 끊어질 지경이다. 하지만 “살기는 힘들어도 그래도 삼겹살은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게 신빈곤 시대를 사는 한국인의 위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삼겹살을 먹을 수 있는 그 환경이 바로 성조숙증 같은 진화적 현상을 발생시키면서 인류의 건강을 위협할 수도 있다니, 최소한 먹는 것에 관해서는, 특히 어린이의 식생활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더 큰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