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신성민(28). 180cm의 훤칠한 키와 싱그러운 미소가 보는 사람을 흐뭇하게 만드는 그는 ‘이파니의 남자’라고 먼저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이름이 같아 비롯된 오해였다. 속상했을 법도 한데 오히려 “두 분께 죄송했다. 아직 자리를 굳혔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상태에서 더 노력해야 한다고 느꼈다”고 웃으며 말한다. 이러는 그의 모습에서 신인 같은 순수함과 패기, 열정이 보인다. 2010년 뮤지컬 ‘그리스’로 데뷔한 신성민은 2011년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출연했고, 올해 서울 대학로 컬처스페이스 엔유에서 7월 29일까지 공연되는 뮤지컬 ‘풍월주’에서 열연 중이다. ‘풍월주’는 신라 시대에 남자 기생 계급 풍월이 있었다는 가정 아래 최고의 풍월이었던 열과 그를 사랑하는 진성여왕, 열과 각별한 사이인 사담이 서로 가질 수 없는 것을 꿈꾸는 이야기다. 신성민은 극 중 사담 역을 맡았다. 그가 연기하는 사담은 시크하면서도 배려심이 넘친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무심하게 툭툭 내뱉는 말은 실은 모두 열을 위한 것이고, 친구 열을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할 수 있는 의리를 보이는 멋진 인물이다. ‘풍월주’는 막이 오르기 이전부터 남자 기생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꽃미남 배우들의 대거 캐스팅으로 화제가 됐다. 성두섭, 김재범, 김대종, 원종환, 이율 등 여성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남자 배우들이 출연하는 가운데, 신성민도 그 인기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객석은 늘 배우들을 보러 온 여성 관객들로 넘친다. 하지만 정작 이에 대해 신성민은 으쓱하기보다는 소년처럼 쑥스러워한다. “전 제가 꽃미남인 줄 모르겠어요. 그렇게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감사할 따름이죠. 전 형들의 인기에 묻어가는 것 같아요(웃음).” ‘풍월주’가 또 화제가 되는 것은 동성애 코드 때문이기도 하다. 극 중 열과 사담의 관계를 우정으로만 해석하기엔 애매하다는 반응들이 많다. 꽃미남들의 게이 판타지에 열광하는 여성 관객들이 몰리고 있는 것도 사실. 하지만 신성민은 생각이 다르다. “그냥 단지 동성애라고 선을 그어 버리면 거부감이 있을 수 있어요. ‘풍월주’는 성별을 떠나 소중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그것을 사랑 또는 우정이라는 두 단어 중 하나로 정의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보는 관점에 따라 사랑일 수도, 우정일 수도 있죠. 전 사담을 연기할 때 열을 안고 싶다는 개념으로 바라보진 않았어요. 가족 간, 친구 간, 연인 간에도 모두 사랑이 존재하잖아요. 사담도 그런 마음 아닐까요?” 남성 관객들을 위한 팁 또한 잊지 않았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개인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랑에 대한 생각은 동일하다고 봐요. ‘풍월주’는 본질적인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처음 이 작품에 대한 소개를 봤을 때 끼는 색안경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런 시선을 한 번쯤 거두고 공연을 봐주시길 바라요.” 극 중 최고 노래는 ‘부르지 못하는 이름’ 그렇다면 사랑에 대해 나름의 뚜렷한 가치관을 가진 그의 실제 이상형은 어떤 사람일까. 신성민은 극 중 열과의 관계가 부각돼 열과 관련된 질문은 많이 받았지만 정작 이상형에 관한 질문은 처음 받아본다며 당황하면서도 쑥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우선 남자는 아니고요(웃음). 예전엔 솔직히 예쁜 여자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상형이 바뀌었어요. 서로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좋아요.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땐 서로 살아온 환경 등 많은 것들이 달라 트러블이 생길 수 있잖아요. 그래서 배려심 깊은 여자가 이상형이에요. 외모요? 중요하지 않아요.” 이상형보다는 공연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눈이 반짝반짝 빛나던 그는 지금 공연에 푹 빠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선한 소재가 단숨에 마음을 사로잡았고,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 간에 호흡도 환상적이란다. “선배들이 배우로서는 물론이고 인간적으로도 굉장히 좋아 배울 점이 많아요. ‘풍월주’는 어떻게 보면 비극인데 연습할 때 비극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재밌었어요. 특히 함께 호흡을 맞추는 두섭이 형은 경험이 많다보니 이것저것 조언도 많이 해주셔서 도움이 정말 많이 됐고, 진성여왕 역의 유하 누나도 많이 가르쳐주셨어요. 군기 잡는 호랑이 선배요? 전혀 없어요(웃음).” 극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는 열과 붓글씨를 쓰면서 부르는 ‘부르지 못하는 이름’을 꼽았다. 내내 알아서 하겠다면서 아픔을 표현하지 않던 사담이 마침내 속마음을 처음으로 표출하는 장면이다. “‘풍월주’의 모든 캐릭터는 나름대로의 아픔을 지니고 있어요. ‘부르지 못하는 이름’에서 사담의 아픔이 가장 크게 표출되죠. 자신의 존재가 열에게 방해가 된다는 생각에 아파하는 내용을 담은 가사 자체가 슬퍼요.” 현재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만 2010년에 데뷔하고 현재 28살. 요즘 배우들의 데뷔 연령대에 비교하자면 늦은 감이 있다. 지금은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려는 연기 열정을 불태우고 있지만 이 길을 택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있었던 탓이다.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었지만 사춘기 시절 방황이 많았다고.
“18살, 19살 때 무엇이 될 것인가 고민할 때 배우가 1순위는 아니었어요. 그 나이 때는 생각도 고민도 많잖아요. 과연 제가 배우가 될 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어요. 그런데 정말 운이 좋게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그리고 군대를 갔다 오고나선 뒤도 안 돌아보고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솔직히 대학교 1학년 때는 기대했던 생활과 달리 힘들다고 느꼈는데 군대에 가서 생각해보니 그 힘든 과정 속에서 느꼈던 재미가 가슴 속에 와 닿았어요.” 그는 이 말을 하면서도 아주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혹시나 건방져 보일까봐 걱정된다는 것. 10대 시절 방황하기는 했으나 결코 이 일을 재미삼아 쉽게 택한 것이 아니라, 정말 좋아하고, 늦은 만큼 더욱 열심히 연기하고 싶은 것이 현재의 심경이다. “힘든 부분이 있지만 어느 직업이든 같다고 생각해요. 이 길을 택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아요. 그리고 후회할 정도로 아직 뭔가를 많이 보여드리지도 못했죠(웃음). 지금 한 단계씩 성장해가는 과정이에요.” “신인 배우로 돌아가겠다”고 했다가 별명 돼 이런 배우로서의 열정이 전해진 것일까. 신성민은 ‘풍월주’ 멤버들 사이에서 ‘신인 배우’라고 불린다. 처음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신인 배우의 자세로 돌아가겠다’고 말한 이후로 붙은 별명이다. 장난을 치다가 붙은 별명이지만 그에겐 배우의 길을 택했을 때의 의지와 다짐을 다시 다져주게 하는 따끔한 채찍질이기도 하다. 그런데 스스로에게 가하는 채찍질이 아주 가혹(?)한 것도 같다. 닮고 싶은 롤모델에 대해 묻자 “감히 말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아직 자신이 누군가를 언급할만한 역량이 되지 않는데 함부로 꼽을 수 없다는 이유다. “존경하는 배우들이 정말 많아요. 하지만 그 분들을 닮고 싶다 해서 제가 그 길을 똑같이 갈 수는 없죠. 전 지금 점을 하나하나 찍으면서 저만의 선을 만들어가려고 노력 중이에요. 하고 싶은 연기요? 지금은 먼저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 하고 싶은 작품을 꼽기보다는 한 단계씩 발전하면서 그 작품에 제가 선택받을 수 있게끔 되고 싶어요.” 꿈을 이루고자 노력 중인 신성민에게 아직 최고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아직 만족하지 못하는 그에겐 앞으로 보다 거침없는 채찍질이 이어질 듯하다. “정말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저 배우 최고야’ 라는 말도 좋겠지만 ‘저 배우가 연기하는 작품은 믿고 볼 수 있다’는 그런 신뢰감을 주고 싶어요. 결혼은 글쎄요. 지금은 작품 활동을 열심히 하고 제대로 된 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강하네요(웃음).” 현재 뮤지컬에 출연하고 있지만 연기의 폭을 좁힐 생각은 없다. 가수들도 뮤지컬에 참여하고, 뮤지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배우들이 영화에 출연하는 것처럼 다양하게 연기를 하고 싶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만 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연기 자체에 목적이 있죠. 굳이 뮤지컬과 영화, 드라마 등 장르를 구분하고 싶진 않아요. 저도 기회가 된다면 폭넓게 연기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일단 지금은 출연하고 있는 ‘풍월주’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여태까지 본 작품들 중 슬픔의 정서를 가장 잘 녹여내고 있는 작품이에요. 곁에 소중한 분들이 계시다면 함께 와서 즐겁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웃음).” 이 배우, 아직 숨겨져 있는 모습이 많은 것 같다. 누차 “제가 어찌 감히” “아직도 멀었다” “꽃미남이 아니다”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며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해한다. 인터뷰 말미에 장난끼가 발동해 스스로의 매력을 꼽아달라고 하자 그는 한참동안 얼굴을 붉히고 쑥스러워하다가 ‘겸손한 것’이라고 멋쩍게 말하는 엉뚱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풋풋한 모습에서 매력이 느껴졌다. 무대 밖에선 소탈한 모습을 보이다가 무대에 올라서면 순식간에 극 중 캐릭터로 변신하는 모습에서 왜 관객들이 그를 찾는지 알 것 같았다.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