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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허탕’ 송유현, “아니, 내가 왜 감옥에?”

얼떨결에 감옥에서 수다떠는 연극 ‘허탕’의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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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84호 김금영⁄ 2012.07.23 11:30:04

만약 필요한 것을 말만 하면 바로 준비해주는 등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터무니없이 안락한 감옥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요즘 배우 송유현(30)은 이 감옥에서 매일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9월 2일까지 이어지는 장진 감독의 풍자 수다극 ‘허탕’에 출연 중이다. ‘허탕’은 죄수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안락한 감옥에 갇혔지만 늘 탈출을 시도하는 죄수1 ‘덕배’, 난데없이 끌려와 당황하지만 차차 감옥 생활에 익숙해지는 죄수2 ‘달수’와 기억과 말을 상실한 채 감옥에 던져진 죄수3 ‘화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송유현은 미모를 겸비했지만 말을 더듬고 다소 바보(?)같아 보이기도 하는 화이를 연기한다. ‘허탕’은 요즘 연극 마니아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 이상한 감옥에서 이뤄지는 죄수 3명의 기막힌 동거라는 설정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막상 극은 진지하고 추상적인 대화가 이어진다. 배우들의 행동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답을 내놓지 않는 부조리극 형태로 진행된다. 자극적이고 재밌는 소재에 익숙했던 관객들에게 “지루하다”거나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는 이 극에서 송유현은 어떻게 연기하고 있을까. “전 캐릭터를 분석할 때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이나 극 중 왜 이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생각해요. 화이는 처음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중에 음악을 들으면서 과거의 결혼 생활을 떠올려요. 기형아를 임신했지만 아이를 지키기 위해 가족들과 싸우는 등 강한 화이의 모습이 나오죠. 전 아기를 가져본 적이 없어 공감하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기형아와 관련된 임신 자료도 찾아보고 장진 감독님께도 여러 코치를 받았어요. 처음엔 말을 많이 더듬는 모습으로 접근했는데 장진 감독님이 ‘화이는 정신지체아가 아닌 아주 사랑스러운 사람이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감싸주고 싶은 화이의 모습을 연기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양극단 성격 보이는 화이 역할에 내가 딱” 처음에 화이는 마치 3~5살 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하고 발랄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극이 전개되면서 잊었던 기억을 찾은 뒤 처절하게 울부짖고 소리지르는 등 어두워져 극과극의 모습이 모두 부각되는 반전 캐릭터다. 캐릭터의 성격 변화가 심해 솔직히 연기하기 부담스럽지는 않았냐고 하자 오히려 송유현은 “즐거운 경험”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제가 좀 강하게 생긴 인상이라 이미지는 후자 쪽의 화이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네요(웃음). 화이의 발랄한 모습도 어두운 모습도 다 연기하기 수월하진 않아요. 다만 아기같이 등장하는 모습을 관객들이 더 재밌어 하시긴 해요. 어두운 화이의 모습은 더 집중되는 면이 있고요”라는 그녀는 “제 본래 성격과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하면 더 수월할 수도 있겠지만 완전 다른 스타일을 연기하는 것도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기에 매력적이에요. 화이는 배우로서 도전해보고 싶었던 역할이고 저 또한 이 캐릭터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봐요”라고 설명했다.

그녀를 포함한 출연진의 열연 덕분인지 악평이 더 많았던 ‘허탕’은 요즘 호평을 받고 있는 추세다. 특히 장진 감독의 열혈 팬들과 연극 마니아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공연 초반에는 조는 관객들도 많았다.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다 보여 속상하기도 했다고. “허탕은 물리적인 시간과 대사도 엄청 많아서 일부 관객들은 따라가기 힘들어하세요. 원래 공연하면서 평을 잘 안 찾아보지만 ‘허탕’의 경우 찾아봤는데 안 좋은 글들이 많아서 가슴 아팠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극에서 들어낼 부분은 들어내되 흐름은 여전히 이어져요. 배우들의 행동에 뭔가 다른 메시지가 있는 건가 계속 고민하면서 보다가 지쳐서 내려놓고 조는 관객들도 있는데 그냥 모든 걸 내려놓고 느껴지는 대로 보면 공연을 더 즐겁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허탕’을 보러 오는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웃음).” 현재 연극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송유현은 2011년 드라마 ‘파라다이스 목장’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며 브라운관에도 얼굴을 비춘 바 있다. 그녀는 그 때의 경험을 ‘공부’라고 생각한다. 매체 쪽으로 나갈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로운 도전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던 차 기회가 닿아 출연했지만 고된 경험에 엉엉 울기도 했다. “공연은 순간의 집중력보다는 지구력이 필요해요. 그런데 드라마에선 촬영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을 때가 많아서 순간 집중력이 더 중요하죠. 생각했던 장면이 아닌 다른 장면부터 촬영을 시작하는데 대사가 몇 마디 없는데도 멘붕 상태였어요. 자꾸 앵글 밖으로 나간다고 혼났고요. 또 예쁜 배우들도 정말 많아서 주눅 들기도 했어요.”

호된 경험이었지만 이대로 도전을 접을 생각은 없다고 한다. 굳이 연극에만 연기 폭을 제한하고 싶지는 않다는 이유에서다. “현재는 연극에 폭 빠져 있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노래와 춤이 서툴러 2007년 도전했던 뮤지컬 ‘빨래’ 오디션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이 또한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란다. 앞으로 그녀의 모습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지금 가장 송유현에게 중요한 것은 ‘허탕’이다. 매일 죄수복을 입고 감옥으로 출근하는 그녀에게 안락한 감옥은 어떤 의미일까. 박수를 치고 웃으면서 “좋다”는 답이 돌아온다. “극 중 덕배는 탈출이 목표라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화이가 아닌 송유현이 그런 곳에 갇힌다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요(웃음)? 제가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는 정적인 성격이라 저만의 공간이 주어진다면 그 안에서 계속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웃음).” “마흔 되기 전에 신인상 받는 것이 꿈” 천진난만하게 답하는 송유현의 모습은 어느덧 ‘허탕’의 화이와 많이 닮아 있었다. 이렇게 캐릭터와 동화되며 연기 열정을 불태우지만 연기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많았다.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생이었던 그녀는 소위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식으로 예고를 간 친구를 성당에서 만나고 연기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예술종합학교까지 입학했지만 배우에 대한 꿈을 크게 가지고 있던 터가 아니라 방황하다가 1학년을 마치고 바로 휴학해버리기도 했다. “‘나는 왜 연기를 못할까’ 하는 생각에 좌절하고 있다가 2007년 대구에서 뮤지컬 ‘라이어’ 무대에 오르게 됐어요. 그런데 2주밖에 연습을 못했지만 너무 즐거웠어요. 연기할 때 매순간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만큼 즐거움도 큰 것 같아요. 예전에 자책을 많이 했다면 지금은 그러기보다 더 열심히 하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들도 해보고 있어요.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절대 들지 않아요(웃음).” 과거에 배우의 길을 포기할까 유독 고민도 많이 했던 송유현은 현재 40세 이전에 동아연극상 신인상을 받는 것이 꿈인 열정적인 배우로 살아가고 있다. 허탕 공연도 잘 이끌어가고 싶다. “저 역할은 송유현이 연기할 때가 가장 좋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그녀는 “지금 정말 좋은 선배들과 함께 공연하고 있기에 일단 저만 열심히 더 잘 하면 될 것 같다”고 겸손해하며 활짝 웃어보였다. 오늘도 송유현은 대학로의 안락한 감옥으로 출근한다.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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