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1호 최영태⁄ 2012.09.11 11:25:32
요즘 방송 또는 팟캐스트를 듣다보면 묘한 괴리감을 느낀다. 장준하 선생의 아들 장호권 씨는 팟캐스트 방송에 나와 항상 부친을 “장준하 선생은…”이라고 호칭하는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항상 "아버지는…"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선생’이라는 객관적 표현으로 지칭하는 이유에 대해 장호권 씨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른 적이 없을 정도로 따뜻한 부자의 정을 나눈 적이 없어서” “아버지를 추종하는 젊은이들과 함께 행동하다 보니 ‘장준하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입에 익어서”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앞으로는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겠다”고 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또는 않는 자녀들 공식석상에서 부친을 “아버지는…”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문성근 민주통합당 상임고문도 마찬가지다. 그는 항상 “문 목사는…”이라고 호칭한다. 장준하-문익환의 아들들 태도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후보와는 대척점에 있다. 그간 박근혜 캠프의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등이 공석에서 “박 후보가 고 박정희 대통령을 아버지가 아니라, 전직 대통령으로, 즉 객관적으로 보길 원한다”고 여러 번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박 후보는 “아버지는…”이라는 호칭을 바꾸지 않고 있다. 호칭이 인식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영어로 대화해 보면 안다. 미국에서도 “미스터 프레지던트(대통령님 또는 사장님)”이라는 객관적 호칭 또는 존대어가 있지만, 사석에서 상대방이 “존이라고 불러도 돼” 하면 그 다음부터는 사장님이든, 대통령이든 퍼스트 네임으로 친근하게 부를 수 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로 부를 때와 “존”이라고 부를 때의 차이점은 하늘과 땅이다. 그 사람의 직위를 존중하며 부를 때(즉, 권력관계로 생각할 때)와, 개인의 이름으로 부를 때(즉, “당신이나 나나 신 앞에선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할 때)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박 후보가 적어도 공식석상에서라도 “아버지는…”이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은…”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대통령직을 잇겠다는 공인으로서 전직 대통령을 아버지가 아니라 공인으로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된다. 대선에서 이기려면 “아버지는…”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부를 때, 박정희의 공과 과를 모두 보는 인식의 전환을 이룰 수 있다. 내가 같은 입장에 빠졌을 경우를 한 번 생각해 본다. 아버지에 대한 비난과 찬사가 엇갈리는 가운데 나는 과연 “제 아버지는…”이 아니라 “고 모모모 씨는…”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런 입장에 처한다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파파 보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앞으로 100일도 남지 않은 대선 기간 동안 박 후보의 아버지에 대한 호칭이 달라지느냐 않느냐 여부는, 대선 결과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