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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는 법’ 몰라 벌어지는 문재인 ‘박정희 묘역 거부’와 박근혜 ‘인혁당 사과 지연’

“죄지은 사람이 먼저 내리 세 번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율법을 우리도 좀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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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92호 최영태⁄ 2012.09.18 15:34:00

‘용서의 순서’가 정립된 나라라면 이런 시비가 일어나지 않는다.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의 박정희-이승만 묘역 참배 거부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인혁당 사과 지연에 대한 시비 말이다. 우선 문재인 후보의 박정희-이승만 묘역 방문 거부를 보자. 국립묘지에 갔으면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만 찾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찾지 않은 것에 대해 새누리당은 17일 “대한민국의 건국 역사와 근대화 과정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 아닌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날카로운 비판이다. ‘건국 대통령’과 ‘산업화 대통령’을 외면한 것은 대한민국의 기본을 거부하는 것 아니냐는 힐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면 ‘대한민국의 기본을 거부하고 그래서 적을 이롭게 하는 종북 세력’이라는 비판이 된다. "가해자가 용서 빌지 않는데 어떻게 피해자가 먼저 손 내미나“ 이에 대한 문재인 쪽의 대답이 걸작이다. 문 후보는 17일 트위터에 “나도 박정희 대통령 묘역에 참배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가해자 측의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썼다. 문재인 캠프의 김경수 공보특보 역시 “역사의 화해란 가해자가 자기반성과 함께 피해자를 찾는 것이다. 거꾸로 피해자에게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를 찾아가라고 요구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반박했다. 용서의 순서를 정확히 짚은 응답이다. 제임스 길리건의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에 보면, 유대교 속죄의 날 얘기가 나온다. 이 날 유대인은 자신이 전에 괴롭히거나 죄를 입힌 사람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세 번 내리 용서를 구했는데도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으면 그 순간부터는 용서 않는 피해자가 죄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용서의 공식은 독일과 유대인의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역대 독일 총리들이 이스라엘이나 동유럽 국가를 방문할 때마다 해당 나라들은 “먼저 사과하라” “참전용사 무덤에 가서 무릎을 꿇어라”고 요구했다 잇단 요구에 독일 안에서는 “도대체 이런 사과를 언제까지 계속 해야 하냐?”는 불평도 터져 나왔다. 그러나 독일 정치인들은 이런 요구에 여러 번 응했다. 세 번 내리 먼저 용서를 비는 가해자의 자세였다. 수도 없이 용서를 구한 결과, 이제 ‘나치 독일’에 대한 비난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사과를 했는데도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피해자가 ‘나쁜 놈’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이 용서 빌지 않는데 어떻게 한국이 먼저 손 내미나“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논쟁도 마찬가지다. 일본인들은 한국-중국의 거듭되는 사과 요구에 짜증을 내지만, 문제는 일본이 ‘내리 세 번’ 진심으로 사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마지못해 하는 사과,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화해는 이렇게 안 하느니만 못하다. “가해자가 먼저 용서를 빌어야 화해가 가능하다”는 문법은 박근혜 후보의 인혁당 발언에도 적용된다. 박 후보가 인혁당 사건에 대해 ‘사실과 어긋나는’ 발언을 한 뒤, 박 후보가 ‘먼저 내리 세 번’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순간은 여러 번 있었다. 특히 피해 가족들이 12일 새누리 당사를 찾았을 때 박 후보가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심어린 사과 한 번 들어봤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것은, 종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나, 인혁당 사건 유족이 똑같다. 앞으로는 ‘용서하는 법’을 우리도 좀 지켜보자. 1. 진실을 밝힌다 2. 가해자가 먼저 피해자에게 용서를 빈다. 몇 번이라도. 3. 피해자는 스스로 ‘죄인’이 되기 전에 용서의 손을 내민다는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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