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4-295호 최영태⁄ 2012.10.05 16:06:33
안철수 후보의 현실 인식 능력이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는 4일 조선대 강연이었다. 그는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지금 수준의 산업화가 가능하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현재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하는 자칭 보수세력들이 틈만 나면 말하는 “우리가 산업화 세력”이라는 주장에 대한 멋진 반론이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산업화는 아무 관련이 없을 것 같은데 안 후보는 왜 이런 소리를 했을까를 한번 생각해 보자. "북한보다만 나으면 된다"는 반공세력이 산업화 이끌 수 있었나? 산업화와 민주화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해석이 나와 있지만,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이 이미 2007년에 펴낸 ‘진보와 보수를 넘어’에 잘 정리돼 있다. 조금 길지만 해당 구절을 인용한다.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근대화 세력의 최대 공적은 일본과 미국의 도움을 받아 기형적이지만 자유주의 시스템을 한국에 깐 것이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자유주의 시스템을 정상화한 것은 민주화 투쟁이었다. 스스로를 근대화세력이라고 외치는 자들은 반공세력은 확실하지만 실은 반자유주의-반근대화 세력이었다. 민주화세력이 자유주의 원칙을 훼손하고 반칙과 특권을 도모하는 존재들을 감시하고 응징하는 쪽으로 갔기에 한국은 짧은 시간에 공정경쟁 체제를 수립했고 정치적 민주화를 가져왔다. 박정희가 80년대 초반에도 건재해 독자 핵개발로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면, 지금의 북-미 갈등처럼 첨단기술 이전이 수반되는 상거래가 크게 제약받았을 것이다.” 그림이 보이시는가? 한국의 자칭 ‘산업화 세력’은 산업화를 이룩하려 노력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반공에 더 치중했다는 진단이다. 반공에 치중하다보니 “북한보다 조금만 더 좋은 사회만 만들면 된다”는 기본원칙에만 충실했고, 그 기본원칙 이외에는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데 거리낌 없었던 것이 이른바 한국의 산업화세력의 정체였다. 그래서, 비록 이승만-박정희를 통해 미국식 시스템이 도입되기는 했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던 것을(이승만 당시의 부정부패와, 박정희 말기의 경제위기), 민주화세력이 피를 쏟는 투쟁으로 그나마 정상 쪽을 향해 작동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광주 피의 투쟁 없었다면 80년대 경제자유화도 없었을 것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자들과, 그래선 안 된다는 세력과의 한판 승부였다. 이런 피흘림이 있었기에 박정희 정권을 물려받은 전두환 정권은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다”며 당시 김재익 경제수석 등에게 경제를 일임했고, 한국 경제는 전두환 집권 때 최고 절정을 맛본다.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정치는 자신이 직접 챙기다가 1987년 6월항쟁이라는 엄청난 반대에 부딪혀 좌절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없었다면, 즉 강력한 국민의 저항이 없었다면, 박정희가 그랬듯 전두환도 정치-경제를 모두 직접 챙기려 들었을 것이고, 결국 김대호 소장이 지적했듯 “80년대에도 박정희 식이 이어졌다면” 한국은 오늘날의 북한 꼴이 됐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목숨까지 불사하는 국민의 저항을 봤기에 총칼을 휘두른 정권이지만 '국민 무서운 줄'을 알게 됐고, 이런 태도가 결국 산업화(경제의 자유주의화-국제화)가 가능하도록 이끌었다는 논리다. 김 소장은 “산업화와 민주화는 상생적 가치인데, 지금은 서로 상극적 가치처럼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즉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80년 광주에서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국민들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끈 것인데도 자칭 산업화세력들은 "우리가 없었다면 한국의 산업화는 없었고, 민주화 세력은 오직 (돈 안 되는) 투쟁만 했을 뿐"이라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