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4-295호 최영태⁄ 2012.10.11 12:59:26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담쟁이 시민캠프 카페에서 열린 '경제민주화위원회 1차 회의'에 참석해 경제민주화-재벌개혁 방안을 밝히면서, 모두발언 말미에 “참여정부의 재벌개혁 실패를 인정한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민주당 쇄신이 먼저”라는 주문에 일정 부분 화답하는 성격을 가진 발언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 약속 가지고 국민들이 “야, 정말 민주당이 바뀌었구나. 고난의 길을 걷기로 했구나”라고 생각할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수없이 말에 속아온 유권자들은, 이번에야 정말로 말에 더 이상 속고 싶지 않고, 뭔가 분명한 행동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안철수에게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말고, 이미지 정치라도 좀 하라 안철수가 요구한 “당 쇄신”에 대해 민주당 쪽 인사들은 “두루뭉실하게 말고, 뭘 바꿔야 하는지 안 후보가 구체적으로 꼭 찝어 말해주면 좋겠다”고들 불평한다. 물론, 그렇다. 당 쇄신이니, 정당 개혁이라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기에 이런 불평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복잡한 정치공학 생각 말고, 아주 간단하게, 시장통의 서민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자. 개방경제의 칼바람이 10%의 행복한 성 안 사람(대기업-공기업 직원, 공무원, ‘사’자 딸린 전문직들)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나머지 90%에만 죽어라고 몰아치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참여정부의 행태를 보고 “아, 저 사람들은 우리 편이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른바 ‘친노’로 지칭되는 사람들의 노무현 집권 뒤 자리욕심, 친재벌 행태, 민생을 무시한 정치과잉 등이었을 것이다. 이런 큰 그림 말고도, 그냥 친노 인사들이 소주 대신 폭탄주를 마시고, 책 읽던 사람들이 골프채를 잡고 희희락락하는 모습에서 노무현 지지자들은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책 대신 골프채 들어서 망했다는데… 경제학자 우석훈은 책 ‘1인분 인생’에서 이렇게 썼다. “무서움을 아는 공인들이 골프채 대신 책을 손에 드는 날, 그 날이 우리가 선진국이 되는 첫길이 열리는 것 아니겠는가. 소주는 폭탄주로, 책은 골프채로 바뀐 것, 이것이 노무현 정권이 진짜로 붕괴한 이유인 것 같다”고. 안철수 후보가 내놓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를 현재의 10분의 1로 줄이겠다’든지, ‘청와대를 좀더 대중적인 장소로 옮기겠다’든지 하는 개혁방안들은, 듣기에는 좋지만 그 구체적 실행 단계에 들어가면 여러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당장 ‘청와대 임명직’을 10분의 1로 줄이면, 선출직 정치권의 관료 사회에 대한 감시 기능마저 10분의 1로 줄어들어 “관료 마피아들만 아주 살판 나게 된다”는 반론이 나오지 않는가. 이렇게 개혁-쇄신이란 어려운 거지만,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하라고?"라면서 어깨만 들썩거려서는 곤란하다. 김영삼 때의 ‘청와대 칼국수’ 효과를 잊었나? 지금 안철수로 대표되는 ‘시민의 힘’이 민주당에게 요구하는 것은, ‘청와대 이전’ 같은 복잡한 정치적 방안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민주당의 중진들 또는 캠프에 들어간 사람들이 “나는 한 자리 차지하려고 문재인 캠프에 들어온 게 아니다.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일하는 거다. 그러니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된다고 하더라도 개국공신으로서의 논공행상을 원하지 않겠다”는 선서를 전원이 한다든지, 아니면 하다못해 “앞으로 5년 동안 골프를 안 치겠다”는 고통이 따를 약속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 초기 지지율이 90%를 넘는 초절정 인기를 보였고, 그 바탕에는 “공직자 골프 금지, 청와대 점심은 칼국수” 같은 김 전 대통령의 선언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제발 이런 거라도 당장 좀 하는 성의를 보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