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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맹녕 골프 칼럼]황홀한 단풍 속에서 인생과 골프를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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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97호 김맹녕⁄ 2012.10.22 11:33:09

코발트색 하늘 밑 오색찬란한 단풍이 빛을 발하는 이때, 회색도시를 벗어나 교외로 나오니 논에는 황금 노랑 물결이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길가의 목이 긴 코스모스는 상쾌한 바람에 휘청거린다. 골퍼들을 유혹하는 이 계절, 나는 골프를 즐기기 위해 깊은 산 속 골프장으로 달려갔다. 골프장으로 가는 길은 풍성한 늦가을 풍경이 차창으로 들어와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 흰 구름이 한가롭게 떠 있는 높은 티잉그라운드에 서서 발밑을 내려다보니 호수처럼 넓은 연못이 눈 아래 펼쳐진다. 호숫가에는 은색 빛을 발하며 억새밭이 출렁거린다. 눈을 더 멀리 보내 구릉진 산 밑 동네마을을 바라다보니 시골 농촌마을이 모두들 일하러 나가 졸고 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티잉그라운드에서 백구를 단풍 속으로 날렸다. 코스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붉은 단풍나무는 이제 그 아름다움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던지 계절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퇴색돼 초겨울의 찬바람을 타고 단풍잎이 공중을 선회하면서 낙하한다. 그렇게 싱싱함을 자랑하던 녹색 카펫도 계절의 흐름 앞에는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고 조금씩 누렁 색으로 변하고 있다. 코스를 따라 제일 높다는 675m의 산자락에 위치한 티에 도착해 주위를 살펴보니 온 산이 5색의 단풍과 억새와 어우러져 어디가 골프장이고 산인지 모를 정도로 오색찬란하다. 멀리 운악산이 보이고 주금산, 서리산이 지척에 서로 마주보는 이 골프코스에는 벌써 싸늘한 바람이 뺨을 스쳐 초겨울을 예감케 한다.

저 멀리 첩첩이 크고 작은 산등성이가 파도치듯 눈앞에 전개돼 신비감을 줄만큼 경이로운 풍경이다.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 진한 단장을 한 단풍이 물든 코스에서의 라운드는 상쾌한 기분을 맛보게 한다. 운치 있는 야생화 들판의 소로를 따라 페어웨이로 나오니 여인네의 앞치마처럼 넉넉하다. 앞 조를 바라보니 부부인지 연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정답게 이 가을을 즐기고 있다. 그늘집 앞에 심어놓은 맨드라미는 이제 생명을 다해 수탉의 벼슬처럼 진빨강 색을 띄고 있다. 붉은 고추잠자리 떼가 하늘을 선회하고 힘이 빠진 호랑나비가 힘겹게 코스를 날아가는 것을 보니 인생의 노년기에 막 접어든 내가 아닌가 싶어 측은하게도 보인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에서 벗어나 나는 잠시 봇짐을 벗어놓고 시원한 나무 아래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인생무상을 느낀다. 심한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앞 다툼을 하다가 마음을 비우니 삶은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즐겁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지만 나에게 심하게 굴었던 옛 상사나 나에게 심한 상처를 준 그 사람들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들의 이름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 가을 나는 증오의 성을 허물고 그 자리에 사랑의 나무를 싶었다. 오늘 스코어가 좋든 나쁘든 관계없다. 인생과 사랑을 논하면서 깊어가는 이 가을을 오색찬란한 자연 속에서 즐기는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자인지도 모른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흰색을 발한다는 자작나무처럼 인생의 주름이 깊어 가면 갈수록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사랑을 받는 그런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 - 김맹녕 골프칼럼니스트 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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